요즘 '이용호 게이트'를 두고 여야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토해 내는 정보를 보면서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부실공화국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그만큼 불안과 불만으로 팽배한 위기의 국면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캐도 캐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부정부패와 비리의 먹이사슬을 따라 가노라면 마치 장편 무협소설을 보는 기분이다. 1999년에 이른바 '옷 로비 사건'에서 시작된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직도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YS정권에서 시작된 부정부패와 개혁이 DJ정부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니 그 끝이 어딘지 막막하기 조차 하다.
국정 최고위층에서부터 국회의원, 금감원, 국정원, 검찰, 경찰, 재계에서 호형호제하는 '친구'까지 등장하는 'XXX 게이트' 시리즈에서 온통 '개판'이구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어찌 불안하지 않은 국민이 있겠는가.
여기서 경전에 나오는 '스님의 옷 청문회'가 생각난다. 오늘 우리가 사는 모습과 좋은 대비가 될 것이다.
석가모니 당시 사마파제 왕비가 있어 5백 벌이나 되는 옷을 석가의 제자 아난존자에게 바쳤다. 그리고 아난은 이것을 교단의 대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우전왕은 크게 놀란 나머지 아난을 찾아가 출가자로서 너무 많이 받는 게 아니냐며 '옷 청문회'를 열었다.
왕이 크게 의심스런 눈빛으로 아난에게 물었다. “대덕은 그토록 많은 옷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대왕이시여, 나는 옷이 헤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럼, 그 헤진 옷들은 어떻게 했지요?” “헤진 옷으로는 이부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럼, 헤진 이부자리는 어떻게 합니까?” “베갯잇을 만듭니다.” “그럼, 낡은 베갯잇은 어떻게 합니까?” “깔개를 만듭니다.” “그럼, 낡은 깔개는 어떻게 합니까?” “발바닥 수건으로 씁니다.” “그럼, 발 닦는 낡은 수건은 어떻게 합니까?” “걸레로 씁니다.” “그럼, 낡은 걸레는 어떻게 합니까?” “대왕이시여, 우리들은 그 걸레를 잘게 찢어서 진흙에 섞어 벽을 바를 때 사용합니다.” 비로소 왕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덕이여, 참으로 좋습니다. 불가의 제자들은 물건을 잘 이용할 줄 아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숨긴 것도 없고 명명백백하니 누가 묻든 즉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 지도자나 공직자, 비즈니스맨이 저 승단의 사문들 반만큼이라도 예산과 세금과 물품을 아낀다면 부정부패다 비리다 하는 말조차 없을 것 같다. 오늘 국감장, 청문회, 특검에 나오는 이들은 저마다 '모릅니다'란 말 밖에 할 줄 모르니 석가모니 시절의 인간과는 별종의 인류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소개한 이야기다.
***제 자리를 지키는 일꾼 부재의 사회**
조선 중엽, 왕실의 살림을 맡아보던 김수팽이라는 청렴한 관리가 있었다. 그가 세 살 되던 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며 어려움 살림을 꾸려 나갔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마루의 기둥을 고치려고 호미로 마루 밑을 파다가, 그 속에 항아리 하나가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항아리에는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오래 전에 그 집에 살던 사람이 난리통에 피난을 가면서 숨겨 둔 것으로 보이는데, 그 많은 돈이면 당장 고생을 면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돈 항아리를 얼른 그 자리에 묻어 버리고 서둘러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아들이 장성하여 처음 벼슬자리에 나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그 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그 때 그 돈이면 너와 내가 편히 살 수는 있었겠지만, 너를 위해 그 항아리에 손을 대지 않았단다.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식이 요행이나 바라고 게을러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후에 김수팽은 요즘의 조달청과 같은 호조에서 물품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하루는 창고에서 재고조사를 하고 있는데 한 지체 높은 대신이 들어와 곳간에 보관되어 있는 은으로 만든 바둑알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것 참 예쁘구나. 우리 딸 노리개를 만들어 주면 딱 좋겠군.” 그러더니 은 바둑알 몇 개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이를 본 김수팽이 얼른 자기도 한 웅큼 집으며 말했다. “대감께서는 따님이 한 분 뿐이지만 저는 딸이 다섯이나 된답니다. 그러니 저는 대감보다 더 많이 가져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대신은 얼굴이 벌게지면서 집었던 바둑알을 슬그머니 제 자리에 놓고 나갔다.
요즘 우리의 공직자나 일꾼들이 저 김수팽처럼 자기가 맡은 소임을 해낸다면 오늘 우리 사회는 훨씬 건전하고 깨끗할 것이다. 역시 어진 어머니 밑에서 바른 훈육을 받은 덕에 훌륭한 인재가 나올 수 있었다 하겠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저마다 분에 넘치는 사리사욕을 찾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TV를 켜면 멀쩡한 교수가 나와서 개그맨 뺨 치는 솜씨로 사람을 웃긴다. 채널을 돌려 본다. 핸섬하게 생긴 법조인이 나와서 청산유수로 똑똑한 소리를 한다. 다시 채널을 돌렸다. 웃기는 개그맨이 어려운 한자 몇 개 그려놓고 사뭇 근엄한 교수 흉내를 낸다.
신문을 본다. 그 TV에 나왔던 의사, 법조인이 정치판에 데뷔를 한다고 한다. 잘 나가는 인재가 옆길로 새는 순간이다. 그 잘 웃기던 개그맨은 어느 대학교수로 간다고 한다. 잘 나가던 연예인이 또한 옆길로 새는 순간이다. 웃기는 개그맨은 TV가 바보상자라고 기를 쓰고 빠져나가려 하는데,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은 기를 쓰고 TV 속으로 기어들어 가려 하니 이 무슨 트렌드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제 몫을 다 해내는 리더도 일꾼도 없으니, 리더십 부재요 장인 정신 부재의 사회가 되고 말았다.
어제는 이른바 '닷컴 세대'로 일컬어지던 유명 벤처 회사 CEO가 실적부진을 책임지고 퇴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사장은 하도 자주 TV에 나와서 ‘인터넷 전도사’란 애칭을 얻기도 했는데 이제 그 닉네임이 무색하게 되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사장이 자리를 비워도 그렇게 잘 나가는 회사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는데 과연 탈이 나고 만 것이다. 전문화와 생산성으로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을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우리 일꾼들은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케이스라 하겠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와 '상수원' 관리**
어떤 공개석상에서 들은 얘기인데 한 여성이 친구에게 "야, 너 상류층의 기준이 뭔지 아니."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것도 모르니. 루이뷔똥(LOUIS VUITTON)을 한눈에 알아보면 상류층이야."
당신은 어떤가? 나는 그들의 대화에서 우리 사회의 상류층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진국은 전체 인구에서 건전한 상류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5%를 상회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1~2% 사이를 오간다고 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자기 스스로 모범적인 상류층으로 생각하는 비중은 그 보다 훨씬 적다고 한다. 그만큼 서구사회에 비해 정당한 부의 축적과 도덕적 무장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수많은 범법행위를 하고도,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개선장군이나 민주투사라도 되는 양 카메라 앞에서 실실 웃기까지 한다. 고스톱 치다 쇠고랑 찬 주부도박단 아줌마들이 쥐구멍이라도 찾겠다고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이제 '촌티 포즈'가 된지 오래다.
이런 풍조가 만연되게 된 주된 요인은 이른바 상류층에서 수치심을 모르는 도덕 불감증이라는 구정물을 자꾸 흘려버려서 하류층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화려한 의상과 언변으로 '바담 풍'을 외치니 누가 알아서 '바람 풍'하고 따르겠는가.
그런 그들에게서 어떻게 아무도 안 보는 비공식 만남이나 조직에서 부당한 일이나 지시에 맞닥뜨렸을 때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뜯지 않는다' 같은 지킴이 노릇을 해낼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상류층'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더 이상 애꿎은 하류층에서 더럽고 오염된 물을 먹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기득권층이 됐든 상류층이 됐든 그들에게서 본받을 만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할 수 있고 나아가 보통 사람들에게도 긍지와 희망을 갖고 노력하기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맑은 물 붓기’로 이 사회의 물줄기를 정화해야**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이 사회를 깨끗이 정화하지 않으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더러운 사회, 더러운 나라'란 오명으로 낙인찍힌다면 누가 이 나라로 관광을 오겠으며 깨끗한 돈을 투자하겠는가. 국경 없는 개방경제 체제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지금이라도 '맑은 물 붓기'라는 도덕성 회복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깨끗한 사회도 되고 깨끗한 나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상류층은 상류층대로 하류층은 하류층대로 제 소임만 충실히 하면 된다. 그 길은 각자 처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면 된다.
사람이 사는 모습이 가지가지 많지만 나는 간단히 '오대'로 분류해서 얘기하는 편이다. 설명하면 이렇다.
(1) 멋대로 : ‘멋대로 살기’는 철없는 청소년처럼 생각 없이 개념 없이 그냥 대책 없이 사는 일차 소비형 사람이다.
(2) 맘대로 : ‘맘대로 살기’는 자기 고집과 배짱대로 사는 사람으로 고지식하므로 부하나 상사가 괴롭게 된다.
(3) 돈대로 : ‘돈대로 살기’는 소위 ‘폼생폼사’로 만사를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졸부 근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4) 법대로 : ‘법대로 살기’는 보통 상류층이나 기득권층으로 이들에게 따라 다니는 말이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이다.
(5) 제대로 : ‘제대로 살기’는 매사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으로 가장 바람직한 유형이라 하겠다.
당신은 여기 ‘오대로’ 인생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가?
클린 사회 건설을 위한 '맑은 물 붓기'는 다름 아닌 제(5)의 ‘제대로 살기’를 택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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