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야당에서는 집단지도체제나 단일체제나 사실 주류와 비주류가 당직이나 공천을 배분한다. 언론에서는 ‘나눠먹기’라고 많이 비난했지만, 세상은 나눠먹고 사는 것이다.
혼자 먹는 것보다 나눠먹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 사회가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해서 그런지 그 당시에는 나눠먹는 것을 매도하고 그랬는데 사실은 독식의 폐해가 더 큰 것이다.
지금 재벌개혁이나 언론사주들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사실 회장 독식체제의 문제 아닌가. 정치판도 군사정권이나 3김정치나 지금 이회창씨도 닮아간다고 하는데 다 독식이 문제다.
통합민주당은 DJ가 정계은퇴했을 때 9인 최고위원이 표결하는 집단지도체제였다. 당시 은퇴했지만 DJ와 소액주주인 이기택씨가 주류연대를 했기 때문에 동교동과 북아현동이 협의해서 최고회의에서 조율하는 식이었다. 비주류는 김상현, 정대철씨 그리고 재야의 이부영, 노무현씨 등이었다.
그 당시에 국회부의장 후보로 DJ가 김봉호씨를 내세웠는데 최고위원 회의에서 표결 결과 비주류가 5:4로 뒤집어 홍영기씨를 국회부의장 후보로 지명했다.
조세형, 김원기씨가 반란을 일으켰고, 김상현씨의 대리인격인 신순범, 그리고 재야 출신 이부영, 노무현씨 5명이 밀어서 그렇게 됐다. 동교동쪽 권노갑, 한광옥, 유준상, 그리고 이기택씨 4인은 김봉호씨를 밀었다.
그 당시 주요 당직은 DJ 독식이었는데 국회부의장이라는 큰 요직을 이렇게 뒤집는다는 것은 DJ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국회부의장, 원내총무 경선에서 뒤집기**
그 다음에 원내총무 경선이 있었는데 똑같은 일이 생겼다. 주류는 김태식씨를 지지했고 비주류에서는 김상현씨의 계보라 할 수 있는 신기하씨가 도전했는데 신기하씨가 한표 차로 당선됐다.
원내총무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국회부의장 추천의 경우 조세형, 김원기씨가 왜 반란을 일으켰겠는가. 국회부의장감으로 손색이 없는 분을 추천했는데도 반란을 일으켰겠는가. 적어도 부의장감으로는 적합지 않다고 해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도 그런 것 아니겠는가.
또 허경만 전남지사의 경우, DJ가 은퇴했을 때 내외문제연구소라고 계보를 만들었는데 그곳의 이사장으로 동교동 계보 관리대행을 몇 년간 맡았다.
그런데 전남지사를 나가겠다고 하니, 적어도 핵심인 사람인데 뭐가 못 미더웠는지, 재야학자를 영입해서 김옥두씨가 진두지휘해서 막았다.
그 당시 허경만씨의 말을 들어보면 DJ계보를 관리하는 동안 가까웠던 위원장들에게 식사 한번 하자고 했더니 학자출신이라서 좀 순진한 조순승의원만 왔더라고 한다. 같은 시간에 김옥두씨가 식사약속을 해서 다 그리로 갔다는 것이다. 동고동락해온 의원들이 그럴 수 있나 해서 이를 악물고 악전고투하면서 어렵사리 대의원 경선에서 눌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DJ로서는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분당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기택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본다. 워낙 독식체질인데 이미 나눠먹기에 익숙해진 당을 가지고 건사하기 어려우니까 군기를 잡기위해 신당을 만든 것으로 나는 보았다. 위기의식 때문에 지역주의를 부추기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나눠먹기 용납 못해 분당 강행**
그때 노무현씨는 부산시장 선거에서 한참 여론조사에서 인기가 올라가고 있었는데 DJ가 전라도에서 지역등권론 한마디 하니 당장 내려 꽂히더라는 것 아닌가.
부산에서 노무현씨 지지도가 떨어지든 말든 ‘내가 살고 봐야겠다’는 위기감에서 다시 지역주의를 부추기면서 지방선거에서 정계복귀를 하고 바로 분당을 강행한 것이 아닌가.
분당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그때 적어도 자기 판단을 할 줄 아는 많은 호남 출신 의원들이 나에게도 와서 ‘꼭 말려야 된다’고 말했다.
그때 DJ가 분당에 대한 중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스위스그랜드 호텔에 10여명을 모았을 때 거기 모인 거의 대부분의 중진들이 분당에 반대했다.
김병오 국회 사무총장(당시 당정책위의장)의 경우 메모를 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안된다고 했다. 박상천 의원도 첫째, 둘째하면서 반대이유를 말하다가 넷째번인가 하는데 DJ가 “그만해” 하고 짜증을 내시는 통에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여튼 그때 당내 분위기는 분당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호남출신 의원들은 자기들이 앞장서기 곤란하다면서 나같은 사람에게 꼭 막아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당 소속 절대 다수 의원이 분당만은 막아야 한다고 하는데도 DJ는 안중에 없었다. 다시 지역주의에만 불을 붙이면 ‘내 고정표는 나를 변함없이 지지할 것이니 니들이 뭐라고 떠들던 간다’며 분당을 강행했다. 철저한 독식구조를 확인하기 위한 분당이 아닌가.
***도전하면 처절한 보복**
DJ의 독식구조를 입증하는 사례가 또 있다.
지난 1997년 봄 김상현씨와 정대철씨가 전당대회에서 총재와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한 적이 있다. 그때 누구나 다들 알다시피 이 두 사람이 정말 총재나 후보가 되려고 나간 건 아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장기적 포석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 이 당이 DJ 혼자만의 당이 아니라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당이든지 여러 사람이 경선해서 총재 뽑고, 대통령 후보 뽑고 그런 모습이 단독 출마해서 만장일치 박수 받는 당보다는 좋은 모습 아닌가. 그런 측면도 분명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DJ는 이런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했다.
김상현씨와 정대철씨 본인들은 물론이고 그 진영에서 뛰었던 사람들에게도 나중에 철저한 보복을 가했다.
김학민, 고영하, 이준형, 박우섭 등이 그후 공천에서 다 떨어졌다. 이호웅 의원의 경우 공천 마지막까지 대안을 찾다 못 찾아 겨우 공천을 받고 당선이 되었다.
특히 노원갑 고영하위원장의 경우 총재와의 조찬간담회 도중 총재 면전에서 "총재님께서 나가시면 당선이 어려우니 제3의 후보를 내세우는게 정권교체의 지름길"이라는 진언을 했다가 집권 후 바로 사고지구당으로 찍혀 위원장직마저도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이처럼 DJ체제는 철저한 독식구조, 그리고 여기 도전하면 처절하게 보복하는 체제다. 그러다보니 DJ 당에 소속된 사람들은 반대를 못한다.
게다가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대로 극히 입조심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가신들과 그 휘하의 당직자들을 통해 소속원들의 동향이 체크되고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 찍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한번 찍히면 엄청난 보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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