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중진의원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DJ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도구로 본다. 그것이 그 양반의 제일 큰 문제다'라고 말이다.
나는 지금도 김대중 대통령에게 진정한 친구나 동지가 과연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난 1980년 ‘서울의 봄’ 시절 일이다. DJ가 1세대 인권변호사라고 하는 분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홍성우, 황인철, 조준희, 강신옥 이런 1세대 인권변호사분들은 유신 때 DJ와 동고동락하면서 3.1사건(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DJ를 비롯한 당시 재야인사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민주구국선언’을 한 사건. 이 사건으로 DJ는 2년여 동안 수감되었다)을 변호했던 분들이다.
그런 인연으로 정치권에서 그래도 가깝다면 DJ와 가까운 편이었다. 그렇지만 괜히 정치인들과 어울린다는 오해받기 싫어서 안 갈려고 하는 참에 한승헌 변호사가 그래도 같이 고생한 동지들이니 밥이나 한번 하자는 데 거절할 것 무엇 있냐고 해서 갔다고 한다.
그분들은 DJ가 어려울 때 DJ는 물론 민주화운동의 변호를 맡아 고초를 겪었던 자신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존중하고, 자문을 얻을 일이 있으면 정중하게 자문하리라 최소한 그렇게 예상하고 갔을 것이 아닌가.
***법조계, 학계 인사들 들러리로만 여겨**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가보니 민주화운동엔 전혀 참여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한자리 하려는 것이 역력한 변호사들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경력이나 성향 모든 면에서 격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한 자리에 있게 된 것이 불쾌해서 ‘저런 사람들하고 어떻게 함께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나’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고 했으나 겨우 참고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DJ가 신당을 창당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바로 그 변호사들이 신당 창당해야 한다고 쌍수 들고 나섰다고 한다.
1세대 인권변호사분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심정이라 아무 말 않고 그냥 있었더니, DJ가 “왜 이렇게 말이 없느냐”고 말을 권했고, 그래서 마지못해 “군부의 동정도 심상치 않고 하니 양김 두 분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등 상식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예의 그 변호사들이 쌍수 들고 나서서 군부는 이제 끝났고 어쩌고 저쩌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들이 그래서 그때부터 DJ와 담을 싼 것으로 알고 있다.
또 한 예가 있다. 학계에서 꽤 인품과 덕망을 갖춘 한 분도 DJ가 보자고 해서 갔다가 똑같은 일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하게 하니 ‘저런 사람하고 함께 부르다니..’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격이 있을텐데 꼭 들러리로 생각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너도 들어봐라, 이런 칭송하는 목소리를 듣고 너도 감흥을 받아라’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분당 때도 ‘다들 들러리’라는 생각으로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데도 강행한 것이라고 본다. 80년 봄에도 신당 만들어서 대선 출마하려고 한 거고 87년도 마찬가지다.
***‘맹목적 충성’만이 동교동 법칙**
동교동 가신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94년 이기택씨가 12.12 쿠테타 문제로 국회 보이코트하고 싸운 일 있는데, 그때 DJ가 어느 주간지에서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라고 그랬다. 처음에는 동교동도 당연히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가 DJ가 이 한마디 하니까 확 돌아섰다.
그때 제정구의원이 당 의원총회에서 (당의 DJ 숭배 분위기를 잘 아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이번에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실수를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이라고 강조해서 말했는데 그 순간 가신들이 “뭔 소리야 집어쳐”라고 나섰다.
국회의원이 ‘처음으로 실수’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조심했거늘 그 정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정당이 민주정당이고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싶었다. 과거 자기들은 의총에서 당 총재를 사쿠라라고 몰아세우던 사람들이 말이다.
결국 박광태 의원이 제정구 의원 멱살잡이까지 벌어졌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들 그룹에서 는 “이 사람아 왜 그렇게까지 해서 선생님 욕을 뵈느냐”고 핀잔을 주는 것이 상식적인 것인데, 오히려 ‘잘했어’ 하고 칭송받는 것이 그들의 문화다.
또 어떤 의원이 DJ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을 했다 하면 가신이 꼭 나서서 "너 왜 까불어" 이렇게 겁을 주었다. 김옥두씨가 이부영씨한테 “너 까불래” 이런 식이었다. 선생님을 대신해서 옐로우 카드 준다는 것 아닌가.
또 가신들은 판단은 ‘선생님’이 다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스스로 판단능력이 없는, 판단을 해오지 않고 산 사람들이 아닌가 싶었다. 선생님의 판단에 의존만하고 자기들은 그냥 몸으로 뛰면 되니까.
너무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 자기 판단으로 모든 사물에 대해 판단하려고 하는 사람은 대개 ‘선생님’ 밑에서 오래 못 있었다. ‘판단은 선생님께서 하시고 뒤쫓아가면 되는데’ 자꾸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디선가 한번 부딪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날로 ‘불충(不忠)’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분류법을 사용하자면 수평적 인간형, 그러니까 주변에 신망도 두텁고 두루 평판이 좋은 사람보다는 수직적 인간형들이 동교동엔 많다. 이것도 역시 ‘판단은 선생님이, 나는 행동만’이라는 원리에서 나온 것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말해서 ‘맹목적 충성’ 이것만이 동교동의 법칙이다. 다른 것은 인정을 안 한다.
이들 사고의 근저에는 과거 민주화운동도 DJ가 한 것만 본류이자 핵심이지 나머지 학생운동이라든가 재야운동 등등은 그저 주변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최근 권노갑씨가 김근태 의원을 비판하는 이른바 ‘수혈논리’도 바로 그런 것 아닌가.
대통령의 독선과 무오류성,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시스템, 바로 이런 것들이 ‘맹목적 충성’이라는 동교동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바로 이것이 국정을 혼란스럽게 하는 핵심 문제인 것이다.
***동교동 인적 네트워크의 한계**
마지막으로 정말 조언하고 싶은 것은 악화되어 가는 지역감정 문제이다.
지난 대선에서 DJ를 지지하면서 정권교체가 되면 지역주의는 많이 완화될 줄 알았다. 만델라 만큼은 못 되어도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DJ가 지혜롭게 대처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이지 않은가. 암울했던 오랜 세월 군사정권이 저질러 놓은 잘못을 시정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꼬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동교동의 인적 네트워크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논공행상도 좋지만 그래도 상식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경기도 정무부지사는 연청 몫이라는 말들이 있다. 그러나 그 자리의 인사에 대해 경기도지역 지구당위원장들마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외 공기업을 비롯 모든 인사의 기준이 능력보다는 충성 내지는 연줄 위주로 되다보니 적재적소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닌지.
정말 능력 있는 호남 출신들이 지금 큰 걱정을 하고 있다. 과거부터 받아왔던 차별이지만 이 정권 들어 아무 득 본 것도 없이 이러다가 정권이나 바뀌면 더 암담하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보기에 호남출신 중에도 유능한 인재들이 아주 많은데 하필이면 어떻게 그런 ‘문제인물’들만 족집게처럼 발탁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호남출신이 적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조직이든 능력 있는 호남출신들이 몇 명은 있게 마련인데, 정작 그런 사람들이 발탁되었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제 몫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본디 연줄엔 약한 법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맺으며 진심으로 대통령께 진언드리고 싶다.
김대통령께서 훌륭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이 대통령 자신은 물론이고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애써온 모든 동지들은 물론 이 나라 국민들을 위해서도 절박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이 나라 역사의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아갈 것이요 그것은 모두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국정에만 전념하고 국내 정치의 문제는 후진들을 믿고 맡기는 길만이 모두를 구하는 길이라는 점을 헤아려주시기를 빌며 앞서의 여러 ‘결례’에 대해서는 너그러이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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