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혹독한 진통의 시기를 겪고 있다. 단순한 10.26 재선거 패배로 인한 후유증만은 아닌 듯싶다. 원내진출 1년6개월 간 누려온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로 누적돼온 각종 시행착오의 결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당면한 화두는 "반성과 쇄신". 어떤 식으로건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최규엽 전 최고위원은 민노당이 지나온 길을 "'거대한 소수' 전략의 실패"로 규정했다. "당이 서서히 의정활동에 편하게 의존돼" 가면서 "대중운동의 힘으로 제대로 뭐 하나 성사시켜 내지 못해 겨우 현상유지에 머물렀다"는 평가다. 그는 또 당 지도부의 "봉합형 지도력은 허구"라며 "통합보다 몇백배 중요한 것은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
***민주노동당은 혁신에 실패했다**
10월 26일 재선거 패배로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전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당에 관하여 글을 쓴다는 것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당원들과 국민들을 향해서 석고대죄하면서 자숙해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성찰하고 반성하는 입장에서 책상 앞에 앉았다.
역사상 초유의 진보적 대중정당 원내 진입 10석의 시대를 맞아 민주노동당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의정활동과 대중적 사회운동을 올바르게 결합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이른바 '거대한 소수 전략'의 성공 여부야말로 민주노동당 발전에 관건적 문제였다. 그러나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당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회는 이에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올바른 정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총선 시기에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부유세를 통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통한 줏대 있는 나라를'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비정규직 철폐, 이라크 파병 반대, 쌀 수입개방 저지 등을 내걸고 어쨌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공약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했는가? 극심한 빈부격차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 서민들에게 조그마한 생활상의 개선이라도 해주었는가? 구호는 거창했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는 거의 없었다. 이라크 파병 반대, 비정규직 개악법 반대, 국가보안법 철폐, 쌀 수입개방 반대 등 몸부림도 쳐보았고 지금도 투쟁 중에 있지만 뭐 하나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 10명이 민주노동당이 국민들에게 내건 공약에 대해 입법발의를 통해 문제제기와 사회의제화를 할 수 있지만 목적대로 쟁취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민중을 믿고 민중의 힘에 의거해서 대중적으로 싸워나갈 때만 '거대한 소수' 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당내 합의사항이고 상식이다.
이라크 파병 반대로 모든 지도부가 단식을 하고 있을 때, 삼성에 대해 전면전을 선언하고 원내외에서 치열하게 싸울 때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대중운동의 힘으로 제대로 뭐 하나 성사시켜 내지 못함으로 인하여 겨우 현상유지에 머물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위력이, 대중운동의 힘이 날로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해 갔다. 당은 서서히 의정활동에 편하게 의존되어 갔다. 의원들의 각자 활동은 우수했으나 함께 모여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의정활동을 돌파하는 데는 소홀히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쌀 수입개방 반대 등 닥쳐서 막는 싸움은 허덕이며 해내고 있으나 중장기적 전망이 없다. 승리에 대한 신심이 없이 임기응변식 대처만 하고 있다. 의원들이 외롭게 국회에서 몸으로 막고 있을 때 국회의사당 앞에 당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최고위원들은 무엇을 했는가?
***현상유지에 안주하다가 지역강화에 실패했다**
재선거 패배 후 일부 여론조사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6%대를 보인 것도 있지만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의뢰한 10월 31일자 TNS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나라당 37.4%, 열린우리당 16.2%, 민주노동당 9.7%, 민주당 5.1%의 지지율 분포를 보이고 있다. 선거시기에도 민주노동당은 지속적으로 10%대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울산의 경우는 초기에는 한나라당을 압도했다.
이번 재선의 실패의 결정적 원인은 당 지지율 하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조직 강화 실패에 있다. 울산 북구의 경우는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도, 구청장도, 구의회도 장악하고 있는 명실공한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에, 지역행정에 실패했다.
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쥐어짜기 식으로 읍소해서 조합원들의 높은 정치의식으로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이 선거후반에 대거 투표에 참여했고, 정규직 노조에 대해 불만이 폭발하고 있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성숙한 의식으로 적어도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진 않았다. 예년 같았으면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했다.
그러나 농소2동을 중심으로 한 울산 북구 주민들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반감은 강한 적대감을 보였다. 선거운동 자체를 포기할 지경이었다. 농소2동의 음식물 쓰레기장 설치 문제로 주민대표가 두 명 구속되었는데 모두가 당원이었다. 싸우는 사람도 구속시킨 구청장도 당원이었다. 조승수 전 의원은 구청장의 입장과 달리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음식물 쓰레기장 설치를 막겠다고 주민들 앞에서 서약했다. 똑같이 민주노동당 당원인데 구청장은 설치한다 하고 국회의원은 막겠다고 했다. 결국 막지 못했고 구청장 계획대로 되었다.
선거초기 조승수 전의원에 대한 동정여론은 중문동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동당 8년 집권에 대한 주민들의 심판여론에 의해 곧 함몰되었다. '울산리서치 연구소'가 선거직후인 10월 28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 후보의 가장 중요한 승리요인이 '지역발전 공약'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서도 이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지방자치에 성공해서 당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민주노동당은 그 반대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계급투표만 믿고 그동안 당 지역조직을 정체시키고 무사안일하게 지역행정을 해온 민주노동당의 과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울산북구의 이러한 실태에 대해서 중앙당은 정보도 부족했고 지도할 수 있는 시스템조차도 갖추지 못했다. 중앙당의 지역행정에 대한 지도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시군구로 지역조직을 무리하게 개편함으로써 지역조직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후보들의 한계로 인해서 수도권과 대구지역의 후보들은 당지지율에도 크게 못 미쳤다. 당 지지율 만 믿고 무사안일하게 대응한 결과다.
***철학과 과학적 노선에 입각한 리더쉽이 절실히 필요한 때**
봉합형 지도력이 그동안 민주노동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자신의 철학과 노선이 분명한 지도력이 절실히 요구돼왔다. 책임소재도 평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책정당을 표방하는 진보정당임에도 당대표 선거에는 정책대결이 없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봉합과 균형만 강조되었다. 그러나 그 봉합과 균형도 이제 허구임이 드러났다. 당에게 필요한 것은 통합도 중요하지만 몇 백배 중요한 것은 혁신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조직에 대한 지도력도 지역행정에 대한 지도력도 봉합형 지도력으로는 이제 불가능하다.
중산층은 이미 붕괴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850여만 명이고, 신용불량자는 400만 명이며, 매월 수입 100만 원 이하 영세자영업자도 400만 명이다. 350만 농민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통일시대가 가까이 오고 있는 정세에서 이들 민중을 주인으로 세우고 이들의 힘으로 민주노동당이 '거대한 소수 전략'을 성공시켜 나갈 때 비로소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밝다 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