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뉴라이트의 '좌파 소재 개그', 이젠 지겹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뉴라이트의 '좌파 소재 개그', 이젠 지겹다"

<기고>"현존하는 뉴레프트는 왜 못 보나"

'뉴라이트(New Right) 전국연대'의 출범에 즈음해 그 성격과 위상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국무총리가 한 대학의 특강에서 '뉴라이트'를 사회의 발전에 의식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지체 현상'의 표현이라고 비판하자, 뉴라이트 단체의 한 대표는 "뉴라이트로 개혁하면, 갈등이 더 심해지고 역사적으로 후퇴한다"는 총리의 강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총리의 "정신지체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사실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삶에 쫓겨 하루를 살아가기조차 팍팍한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런 논란에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이런 비생산적 논란에 대해 "배가 부르니 꽤나 할 일들이 없나 보다"라는 반응이다. 다른 한편 내년 지자체 선거 등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니 무언가 정치적 쟁점을 만들어 튀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때가 되면 구사하는 선거용 이벤트쯤으로 생각하며 넘겨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히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뉴라이트'를 둘러싼 논란이 현실을 왜곡하고, 나아가 그들의 논쟁과는 무관한 좌파의 현존 자체를 부정하고 그들을 희화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뉴라이트' 단체의 대표는 "뉴라이트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좌파, 뉴레프트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며 "뉴라이트와 뉴레프트가 각각 우파 진영과 좌파 진영의 대표선수가 되면 한국의 이념‧정치구도는 올드라이트와 올드레프트 사이의 '적대적 의존관계'에서 '경쟁적 보완관계'로 바뀌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총리를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가 행한 발언 내용의 진실성이다. '뉴라이트'가 좌파를 그들 사이에 전개되는 논쟁의 소품, 더 심하게는 '노리개 감' 정도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집권세력이 좌파인가**

첫째, 총리로 상징되는 현 집권세력이 과연 '좌파', 그것도 '구좌파'인가. 좌파에 대한 상이한 규범적 판단 혹은 선호, 나아가 좌파 내부에 미래 사회에 대한 상이한 발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좌파의 핵심은 이 사회의 지배적인 사회관계, 특히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문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이윤추구를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으며 그것을 유일척도로 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강제하고자 하는 자본의 지배를 넘어 나아가고자 하는 게 좌파의 지향이며 또 풀어야 할 핵심과제다.

이런 맥락에서 시장절대주의를 추구해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그리하여 '종속적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현신이라고까지 비판받는 현 집권세력을 좌파라고 호명하는 것은 그로부터 삶의 고통을 받고 있는 이 사회의 다수 대중들과 이주노동자들을,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양식 있는 지식인들, 사회정치세력들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것밖에 안된다.

만일 제도 안의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을 좌파로 호명한다면, 전적으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좌파라는 이름을 기꺼이 수용하고 대중들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좌파는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아무에게나 붙여줄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근대 이후 세계사적으로 전개된 사회진보를 위한 오랜 대중운동의 경험 속에서 '노동자 계급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관계를 추구하는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구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과거지향이라기보다 현재, 나아가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개념이고 그렇기 때문에 고정(fixed)될 수 없는 열린 개념이다.

그런데 지금 비정규직노동자 등 대중을 삶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글로벌 신자유주의를 자신의 모토로 삼고 있는 정치세력을 좌파로 호명하니, 그것도 '구좌파'라고 하니, 진정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좌파들은 당황해하지 않을 수 없다. '뉴라이트' 자신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담론이 좌파세력들에게 "저들에게조차 우리가 이렇게 노리개 감이 되어야 할 정도의 존재인가"라는 반성의 계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혹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비합리적 주장을 하기 때문에 "'뉴라이트'는 과거 극우세력과 무늬만 다른 변종"이라는 비판을 받고, 그들이 그렇게 혐오해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한 리더에게 '문화지체세력'이라는 훈계를 받는 것이다. 상표에는 분명 새로운(New)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데, 그 내용은 과거와 다름없으니 이런 비판을 받는 것은 누구를 탓할 수 없는, 그들의 자업자득이다.

***'뉴레프트'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둘째, 신좌파는 이미 현존하고 있다. 신좌파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중심에 놓지 않지만, 그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가려져 있던 여타 사회적 관계들, 즉 생태, 환경, 여성, 소수자, 평화 문제 등에 더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이들 영역에서 재생산되는 비대칭적이고 억압적인 관계들을 해소, 극복하고자 하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둔다는 점에서 구좌파와 차이가 있다.

물론 운동의 방식 등 여러 면에서 양자 사이에는 상이성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과거를 성찰하는 '구좌파'가 신좌파의 주장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신좌파의 상상력은 꼭 구좌파가 아니더라도 이 사회의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많은 부분 수용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현 집권세력이 신좌파가 아니라는 '뉴라이트'의 비판은 본의 아니게 핵심을 찌르고 있다. 현 집권세력은 환경‧생태문제,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 문제, 평화문제 등에서 '뉴라이트'가 존경해 마지않는 과거 독재세력, 이른바 성장과 개발지상주의를 내건 수구정치세력과 큰 차이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건 각종 환경정책을 대부분 백지화하고, 평화에 반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찬성해 파병을 강행함으로써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집중적인 저항과 비판에 직면한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문제의 핵심은 현 집권세력의 신좌파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뉴라이트'의 주장 그 자체에 있다. 위에서 인용했듯이 '뉴라이트'가 '신좌파'의 등장을 그렇게 바란다면, 지금 이 사회에 현존하는 신좌파들의 상상력과 행태를 왜 보지 못하는가. 그리하여 자신들이 그렇게 바라는 남한을 넘어선 북한의 인권 문제는 물론 생태, 환경, 여성, 소수자, 평화 문제 등을 놓고 진지하게 논의하고, 진정 그 영역에서 재생산되는 억압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를 해소, 극복해 나가기 위해 왜 함께 협력하지 못하는가. 현존하는 신좌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새로운 사회운동들에는 아예 눈을 감아버리고 그와는 무관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올드레프트'라고 비판하며 '신좌파'로 거듭나라고 비판하니 참으로 기괴하지(grotesque)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유수의 대학에서 이 시대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과 같이 호흡한다는 교수 등 '지식인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단체의 대표가 이런 주장을 하니, 그 수준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신좌파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좌파와 무관한, 이제는 보수화돼 민주화운동세력으로서의 그 시대적 역할이 마감되었다고까지 평가받기도 하는 집권 정치세력을 '좌파'라고 부르니 당연히 색깔론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무늬만 뉴라이트'라는 혐의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보다 왼쪽이면 무조건 '좌파'…'올드라이트'와 차이점이 뭔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뉴라이트'는 정확한 용어와 개념의 체득을 위해 좀 더 많은 학습과 훈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왼쪽에 있는 모든 존재를 좌파라고 한다면 그들과의 더 이상의 생산적 논의는 불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올드라이트'라고 부르는, 즉 그들의 뿌리인 수구 파시스트들의 인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데도 경쟁자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위해 '좌파'라는 개념을 계속 남용하는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의 존재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기제가 될 뿐이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양식 있는 대중은 과거처럼 선동적인 어휘와 주장에 휘둘리는 그런 지배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용어의 수정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뉴라이트'가 사용하는 '올드레프트'라는 개념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자신의 뿌리이기도 한 '올드라이트'는 '비합리적인 보수세력', 즉 '수구세력'으로 대체하면 된다. 그리고 이에 근거해 자신들의 주장을 재해석하면 오히려 그 의미를 더욱 쉽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즉 이 두 세력이 과거 '적대적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이제 '뉴레프트'가 출현해 기존의 '뉴라이트'와 함께 '경쟁적 의존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한국사회는 잘 되어 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거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수구 정치세력 혹은 파시스트적인 정치세력들이 권력을 놓고 긴장 속에서 경쟁해 왔다는 점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집권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시대적 요구, 국민대중의 소망과는 무관하게 극복의 대상인 수구세력들과 협력해 왔다. '6.29선언'에 동의한 그들의 행태, 8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비등한 대중의 후보단일화 요구에 대한 그들의 철저한 외면과 무시, 그 뒤 신군부 파시스트 세력과의 3당합당, 유신의 본당임을 자처하는 수구세력들과의 DJP연합 등은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집권을 위해서라면 외견상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수구세력과의 '타협과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중은 이들의 권력욕의 뒤안길에서 희생자가 돼 흘리지 않아도 될 많은 눈물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뉴라이트'='물리적으로 젋은 수구세력'?**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 당의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받아 비교한 최근의 정책비교조사에서 보이듯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열린우리당과 이른바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한나라당 사이에는 남북한문제나 외교문제에서의 차이를 제외하면, 대중들의 삶의 문제 등이 핵심을 이루는 경제 및 민생, 사회복지, 환경, 교육 등의 영역, 즉 신자유주의가 압도하는 부문에서는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집권 이후 이들 양자 사이에 이미 '경쟁적 의존관계'가 조성,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실에서 '뉴라이트'가 바라는 미래에 대한 소망은 이미 진행 중이다. 이미 살펴본 대로 '뉴라이트'의 발상과 행태가 그들 자신이 도상(圖上)에 그려 넣은 지향, 목표 등과 무관하게 '무늬만의 뉴라이트'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실제 그들의 발상과 행태는 그들이 비판하는 '올드라이트'와 커다란 차이가 없다. 따라서 '뉴라이트'의 주장은 이미 실행중인 '경쟁적 의존관계'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확보하고자 하는, '물리적으로 젊은 연배의 수구세력들'이 행하는 몽니라고 해석되고 비판받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뉴라이트'는 시쳇말로 '봉창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연유로 시대착오적이다. 지금 이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은 과거 파시스트적인 '개발독재'의 시대로 회귀하거나 현재의 비대칭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관계들을 유지하는 것에 있지 않다. 시장절대주의의 상징인 글로벌 신자유주의와 그것이 강제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그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자본의 가공할 힘 앞에 노출되어 있는 생태, 환경, 여성, 평화, 소수자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그리하여 '더불어 사는 삶'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실감케 하는 그런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이른바 '진정한 의미의 좌파세력들'이 필요한 시기다.

이것이 지금 이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새로움'의 내용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사회에서 '뉴라이트'가 아닌 좌파에게 "당신들이 진보에 걸맞게,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느냐"는 수많은 문제제기와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뉴라이트'의 집 앞은 조용하기만 하다.

***뉴라이트, 합리적 세력이라면 좌파를 제자리로 돌려보내야**

지금 '좌파'는 위기에 처해 있다. 좌파는 이미 존재하는 비대칭적 현실을 추수하는 보수세력, 혹은 그것을 되돌리고자 하는 수구세력과 달리 기존의 불합리한 현실을 바람직한 사회관계로 재구성하고자 하기에 항상 '위기'를 달고 산다. 아직 실현되지 못한 다가올 미래는 온통 불투명, 불안정으로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과의 대결은 회피할 수 없는 좌파의 숙명이다. 다만 지금 그 불투명성이 극대화되며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이 사회의 좌파가, 좌파라는 개념이 '뉴라이트'의 시대착오적 논리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동원될 수 있는 그런 사사롭고 가벼운 대상은 아니다. 이 사회에는 자유주의 세력, 수구 혹은 파시스트 세력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진정 그들이 '뉴라이트'이기 이전에 공론장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지식인들이라면 더 이상 좌파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이른바 외곽을 때리는 수법으로 자신들의 천박한 발상과 행태를 합리화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래도 최소한 이성을 신뢰하는 '합리적 세력'이고자 한다면, 좌파라는 개념을 자기 자리로 돌려보내 줄 수 있는 소양을 보여주길 희망한다. 그리고 정말로 뉴레프트의 출현을 기다린다면, 그냥 지금 존재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것을 다시 한번 조언한다. 뉴레프트는 이미 이 사회에 현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것을 볼 수 없다면, 아니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올드라이트'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세력으로서의 '새로운 라이트'가 아님을 그들 스스로 다시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