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회계 146조. 특별회계 및 기금 106조. 총 252조에 달하는 2006년 예산안과 기금 계획안에 대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가 한창이다. 국민 세금을 얼마나 거둬서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두고 상임위 예비심사에서부터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 심지어 개별 의원들 사이에 치열한 실랑이는 예년에 보아온 그 모습 그대로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정부예산은 국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해 고스란히 사용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자신이 납부하는 세금을 대해 아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정부가 자신을 위해 해 주는 것이 별로 없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의식한 듯 누구든지 입만 열면 민생을 얘기한다. 심지어 한나라당조차 고소득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자신의 감세안에 대해사회양극화 해소와 복지 확충을 그 명분으로 내거는 웃지 못할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양극화는 온존하고 있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미흡하기만 하다. 2006년 정부 예산에도 민생에 대한 배려, 양극화 해결에 대한 의지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는 양극화가 정부 예산에도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산 내에 존재하는 심각한 부익부 빈익빈의 몇 가지 단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례 1 : 무기 구입에는 '펑펑', 장병 건강관리는 '나 몰라라'**
군에서 제대한지 13일 만에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끝내 숨진 노충국 예비역 병장 사건은 군 당국의 인권 경시 풍조와 열악한 군 의료체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더군다나 국방부가 진료기록부를 조작한 사실까지 밝혀져 자녀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걱정과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불행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국방예산을 보면 정부가 장병에 대한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미흡한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국방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향후 15년간 총 620조 원이 넘는 국방비, 272조 원의 무기구입계획을 발표한 국방부이지만 장병들의 생명과 건강을 돌보기 위한 예산에는 인색하기 이를 데 없다. 2006년 예산안은 보더라도 총액 7조9671억 원의 전력투자비 중 열악한 군 의료장비를 개선하는데 책정된 예산은 '의무장비 현대화 사업'이라는 명목의 129억 원에 불과하다. 60만 대군의 생명과 건강을 돌보기 위한 1년 예산이 전력투자비 총액에 0.16%, F15 전투기 한대 값에 1/10에 불과한 그야말로 한심한 수준인 것이다.
심지어 근무 중 부상을 당해 입원한 장병에게 환자식이라고 추가 지급되는 급식비가 하루 380 원, 한끼에 130 원 정도라는 사실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1인당 GNP 1만5000 달러 시대에 장병 건강관리는 50~60년대 보릿고개 수준인 것이다.
정부는 아무런 대가없이 2년 이상을 조국에 봉사하고 있는 우리 아들딸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데에는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한해에 23조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국방부가 예산타령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F15 전투기 한대, 아니 40대 모두를 사지 않는 한이 있어도 우리 아들딸들의 건강을 돌보는 데에는 결코 인색함이 없어야 한다.
국방부는 군 장병의 개인질병 조기발견과 질병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군 장병 정기검진 의무화 방안'을 마련하여 년 1회 장병 정기검진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 또한 군 의료 인력 확충과 시설 현대화를 위해서도 보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진정한 군 전력증강은 무기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이뤄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표 1>
***#사례 2 : '놀고 먹는' 대공수사, 민생치안은 '뒷전'**
경찰은 각종 범죄로부터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기본임무다. 하지만 경찰은 국민의 파수꾼이라기보다는 정권의 파수꾼 노릇을 해 왔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이런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경찰청 내 대공보안 부서가 다른 부서에 비해 인력과 예산 면에서 항상 우월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화의 진전과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대공보안 부서의 역할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 상황에도 경찰청 보안관련 부서의 우월적 지위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 5년 내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현격히 줄어들었고 올해에는 7월까지 17명(그것도 대부분이 스스로 자수한 한총련 학생들)에 불과한 상황에도 각 지방 경찰청 보안국의 인원과 예산은 그대로다.
스스로 자수한 십수 명의 한총련 학생들이 2500여 명의 인력과 4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허비되는 유일한 이유인 것이다. 한총련 학생 1명당 수사비가 25억 원에 달하고 있고 셈이다. 경찰청은 자신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각 지방경찰청 보안부서를 폐지하고 관련인력과 예산을 민생치안에 집중해야 한다.
<표 2> <표 3>
***#사례 3 : 교수들에겐 476억 성과급, 시간강사는 최저생계비도 못 받아**
시간강사들에 대한 처우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처우개선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 되풀이하고 있다. 현재 1만4000여 명이 넘은 시간강사들은 수업 시간당 3만5000원의 강사료를 지급받으면서 학생들의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강사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연간 소득은 663만 원 정도[3만5000원(시간당 강사료)×5.41시간(시간강사 평균 주당수업시간)× 35주(개학중인 기간)]이고 부족한 기본 강사료를 보완하기 위해 수업시간당 5000원의 연구보조비를 추가 지급하고 있지만 이 금액을 합치더라도 시간강사의 평균소득은 최저생계비(2004년 4인 기준 최저생계비 1363만 원)의 55%에 불과한 수준이다.
시간강사의 열악한 근무여건은 시간강사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국립대학교 전체 수업의 30% 정도는 시간강사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생활고로 인해 다른 생계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시간강사들의 객관적 처지는 곧 수업 질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때문에 양질의 대학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이들 시간강사에 대한 보다 적절한 수준의 처우 개선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더군다나 전임강사 이상의 교원들에 대해서는 급여 외에 별도로 476억 원에 달하는 교원성과급을 지급하면서 시간강사에 대해서만 상식적인 수준의 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와 연구 활동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다. 일단 현재 시간당 5000원으로 되어 있는 연구보조비를 내년에는 1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고(추가 예산 133억 원) 이후에도 최저생계라도 영위할 수 있도록 연차적으로 강사비 현실화를 추진해야 한다.
***#사례 4 : 문화도시 사업에 '예산 퍼붓기', 문화복지 예산은 '대폭 삭감'**
문화예술은 최저임금, 음식, 주거지처럼 인간 생존에 필요한 '밥'의 또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리로서 문화권이 보장되고 모든 국민들이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예산을 마련하고 지원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기본 책무인 것이다. 특히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 증대, 주5일 근무제 도입 등으로 인해 문화예술의 사회적 중요성이 보다 강조되고 있어 정부의 지원 또한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다.
그러나 2006년 문화관광부 예산을 분석해본 결과 전체예산은 7.1% 증액됐지만 문화복지 예산은 오히려 전년에 비해 크게 감소해 정부가 오히려 문화복지를 후퇴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복지 예산은 문화기반시설 및 문화프로그램 지원비를 말하며, 이의 감소는 문화불평등의 확대를 의미한다.
문화복지비가 감소하면 문예회관, 도서관, 미디어센터 등 문화기반시설을 통해 지역주민이 공공적 형태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이럴 경우 주민은 영화, 대중공연 관람 등 상품구매의 형태로 문화예술을 접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는 경제력에 접근기회가 종속돼 경제적 약자 및 장애인, 이주노동자, 노인 등 문화소수자의 문화권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주5일 근무제 실시 이후 소득 최상위 10%와 하위 10% 계층간 교양․오락비 격차가 10배 가까이 벌어졌다는 통계청 발표를 감안하면 계층간 문화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는 문화복지비를 보다 확대해야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인 상황이다. 즉 통계와 대책이 따로 노는 형국이다.
특히 내년 문화예산에 있어 청소년들의 인성교육과 창의력 증진 을 목적으로 전문 문화 예술 인력들이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의 경우 올해 예산에 비해 22억 원이나 삭감됐으며,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문화향수 프로그램지원예산 87억5000만 원 삭감 등 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예산이 작년에 비해 무려 149억 원이나 줄어들었다. 그나마 특수소외계층에 대한 문화 바우처 예산도 1억 원 미만의 증액으로 생색내기에 그쳤으며, 아시아문화동반자사업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내년에 신규 착수되는 25억 원 규모의 사업에도 진작 우리 이웃으로 이 나라의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35만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는 1.1억짜리 외국인근로자 문화가이드 라인 운영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복지 예산이 크게 감소한 이유는 노무현 정부가 대통령 공약으로 제시한 문화도시 사업에 문화예산을 집중적으로 배정했기 때문이다. 광주문화중심도시 추진 등 문화도시 예산은 광주, 부산, 경주, 전주에 지원되는 예산으로서 2270억3100만 원이 책정됐으며, 이는 문화복지비 전체금액보다도 많은 액수다. 그중 광주문화중심도시 사업으로 추진되는 아시아문화전당 건립비만 1926억7700만 원에 달하고 있어 대다수 서민들의 문화향유권이 문화중심도시건설사업에 빼앗기는 이해할 수 없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는 꼴이다.
<표 4>
***#사례 5 : R&D 예산 '산업진흥' 분야에 60%, '공익' 분야에는 5%**
우리나라의 연구개발투자액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으나, 정부 연구개발투자는 선진국 수준에 여전히 못 미치고 있다. 그 규모 이외에 정부연구개발투자에 더욱 큰 문제는 기업에서의 연구개발투자와 동일하게 지나치게 산업진흥 분야에 편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삶의 질․건강․안전․환경 등의 공익연구개발 분야는 지나치게 홀대받고 있는 실정이다.
<표 5>
정부예산을 분석한 결과 산업․국방․목적기초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국방부, 정통부 4개 부처가 투자하는 연구개발예산은 총 정부연구개발비 중 59.9%를 차지하는 반면, 국민의 삶․건강․안전․환경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보건복지부, 환경부, 기상청, 소방방재청,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연구개발비는 3819억 원으로 총 정부연구개발투자의 4.94%에 불과한 실정이다.
<표 6>
수많은 아이들이 아토피로 고통 받고 있으며, 해마다 수십, 수백의 생명이 각종 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고 재산상의 피해도 엄청나게 발생하고 있다. 또한 희귀 난치성 질환과 신체장애로 인해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수백만의 국민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감안하면 결국 국민 개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이러한 문제들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들의 삶의 질․건강․안전․환경 등의 <공익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특히 보건복지부, 환경부, 기상청, 소방방재청, 식품의약품안전청 등의 <공익연구개발부처>의 연구개발투자비를 2009년까지 최소 10%까지 증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 보다 나은 삶의 질과 직결된 소방방제·식품안전·산업안전·환경보건·재생가능에너지·희귀난치성치료와 장애인 재활과 같은 공익연구개발과제와 연구에 대한 중장기적 계획을 포함하는 '(가칭)공익연구개발 중장기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연구개발비의 일정비율을 의무적으로 공익연구개발과제에 배정하는 연구개발비 쿼터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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