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출범을 맞아 '국가의 민사상 시효이익 포기 등을 위한 특별법'을 추진키로 했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인혁당 사건이나 최종길 서울대교수 의문사 등 손해배상 청구시효 만료로 법원에서 손배청구가 기각된 국가범죄 사건의 피해자나 유가족들이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특별법에는 또 권위주의 통치시대의 반인도적 국가범죄 피해자에 대한 재심청구 사유를 확대하고 형사상 공소시효(최장 15년)가 끝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시효를 배제 또는 연장하는 방안도 포함될 전망이다.
하지만 특별법안을 둘러싼 논란과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국가 배상이 개인적 금전보상에 치중될 경우 국가재정에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피해자 간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은 공소시효 배제 등은 소급입법의 성격인데다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최근 과거사위의 위원 구성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규명 작업에 대한 정치적 의구심 등과 맞물려 위원회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추진되는 이 특별법도 또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당정 공동특위' 간사인 열린우리당 강창일 의원은 2일 〈프레시안〉 기고문을 통해 현재 각 기관에서 진행 중인 과거사 진상규명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이번 특별법에 쏟아지고 있는 의혹의 시선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편집자〉
***과거의 굴레 벗고 올바른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하여**
올바른 과거청산은 우리가 당면한 민족적 역사적 과제다. 8·15해방, 4·19혁명, 1980년 서울의 봄 등 과거청산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 때마다 냉전체제와 군사쿠데타 및 신군부의 등장 등으로 과거청산의 대상은 오히려 늘어만 갔다.
민족을 팔아먹은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반민특위 해체로 와해되고 민족정기 확립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 전쟁 전후 무고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은 진실규명은커녕 희생자들의 유골 수습도 제대로 못한 채 유족들로 하여금 숨 죽이고 한을 안으로만 삭히게 만들었다. 국가공권력이 자행한 음습한 인권유린 행위와 의문의 죽음들, 그리고 조작간첩 사건들은 X파일이 되어 아직까지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 그리고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우리가 내버려 두었던 진실이 이제 더 이상 은폐되고 왜곡된 채로 남아 있기를 거부하고 있다. 권위주의 통치가 끝나고 민주화가 뿌리내린 이후 10여 년 간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과거청산 작업은 이제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과 '과거사정리기본법' 등의 시행에 따라 큰 매듭을 짓게 되었다.
과거청산의 내용 및 절차는 진실규명,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상/보상 및 국가권력의 신뢰 회복과 재발방지 시스템 구축 등을 포함해야 한다.
우선 진실규명은 과거청산의 첫 걸음이다. 현재 진실규명은 특별법에 의한 위원회가 가동되어 국가의 권위를 가지고 국가의 이름으로 그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동시에 가해자인 정부도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자 여러 기관에서 자발적으로 진상규명 작업을 하고 있다.
둘째로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은 진실규명에서 1차로 이루어진다. '공산폭도 가족' 또는 '부역자'의 누명을 벗고 민간인 희생자로 인정되거나 좌익분자에서 항일독립운동유공자로 자리매김 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에는 사면, 복권, 전과기록 말소, 호적 정정 등이 일반적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특히 재심을 통한 완전한 명예회복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명백한 사법살인'이라고 하는 조봉암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등이 대표적 경우다. 최근 대법원에서도 권위주의 통치 시절 사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된 시기가 있음을 인정하고 법조계에서 재심사유를 완화해야 된다는 논의가 일고 있음은 다행스런 일이다.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국가공권력이 자행한 인권유린 등은 사법부 독립성이 저해된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 대부분이므로 현행 형사소송법상의 재심청구 사유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동안 국가권력에 의해 증거가 철저히 인멸되었거나 재판 자체가 올바른 증거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사건 유형들에 대해서 재심요건을 완화하는 법률이 필요하다.
특히 국가기구인 각종 위원회가 진실규명을 한 결과, 조작된 간첩사건으로 결론이 나거나 국가공권력이 저지른 살인 고문 폭행 사건이라고 결론 내린 경우는 당연히 재심사유가 된다는 내용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경우 가해자인 국가는 당연히 보상 혹은 배상해야 한다. 국가적 의무를 채권소멸시효를 이유로 회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개인적 금전적 보상에 치중할 경우 국가재정 문제뿐만 아니라 피해자 간의 형평성 문제나 갈등을 초래하므로 '집단적 보상' 또는 '정신적 보상'이나 '생활/의료 지원' 등 적절한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특히 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의 경우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고 진실규명이 우선이라는 명제에 충실하여 국가공권력의 인권유린 행위와는 구분 처리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불거진 최종길 교수 사건의 경우처럼 국가폭력이 증명된 경우 민사상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으므로 국가공권력에 의한 반인도적인 인권유린행위에 대해서는 민사상의 소멸시효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넷째로 국가권력의 신뢰 회복과 재발방지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기념일 지정, 기념관․사료관 건립 운영, 재단 또는 기금 운영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거청산의 내용과 절차를 전제로 최근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국가공권력의 인권유린행위에 대한 형사상 공소시효 배제' 문제를 살펴보자. 특정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정지 또는 배제는 드문 일이긴 하지만 국내외적으로 선례가 있다.
국제적으로는 1968년 유엔 총회가 채택한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시효부적용에 관한 협약'과 1998년 채택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 등이 있으며 국내적으로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서 공소시효의 정지를 규정하고 있다.
재발방지시스템 구축을 위하여 공소시효가 남아 있으면 공소시효를 중단하고 향후 발생할 국가공권력의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입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공소시효의 배제나 정지를 주장하면 소급입법에 해당하고 형벌불소급 원칙 등에 위배된다는 비난이나 오해가 많다.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다음 소급적으로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정지하는 진정소급효를 주장한다면 위헌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1996년에 이미 헌법재판소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정지하는 소위 부진정소급효는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더 큰 오해나 비난은 '과거사정리기본법'이 마치 소급적 형사처벌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과거사정리기본법'의 기본 정신은 형사적 소급처벌이 아니라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화해와 국민통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법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이라도 새롭게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여 올바른 역사적 심판을 내리고 이를 통해 잘못된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올바른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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