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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메이저리거는 왜 이렇게 좋은 구장에서 에러를 하지"

[기고]KBO 직원의 눈에 비친 'WBC 3월의 전설'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에 오르며 한 달 동안 국민들에게 야구의 묘미를 전해줬던 한국 야구 대표팀. 한국 야구사에 큰 획을 그은 대표팀이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게 된 원동력에는 따뜻한 '인간미'와 마치 몇 년을 같이 뛰었던 것 같은 선수들간의 '끈끈함'이 중심에 있었다.

WBC 대회 기간 중 한국 팀의 스태프로 선수들과 동고동락 했던 KBOP(한국야구위원회의 수익사업 전담 자회사)의 김재형 대리가 보고 느낀 5가지의 대회 뒷 얘기를 통해 한국 야구의 4강 신화를 되짚어 본다. <편집자>

***# 1. "직구만 잔뜩 노리길래 나는 변화구만 던졌죠"**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했던 손민한. 지난 시즌 다승과 방어율 부문 1위를 차지하며 부산 사직구장에서 다시 우렁찬 '부산 갈매기' 응원가를 들을 수 있게 해준 손민한은 WBC 2라운드 미국 전에 선발 출격 명령을 받았다. 한국은 이미 2라운드 첫 경기에서 멕시코를 이긴 상황. 이 때문에 최강 팀인 미국과의 경기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2라운드 마지막 경기인 일본 전에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한국의 주장 이종범은 미국과의 경기 전 "메이저리그 투수도 똑같은 사람인데 충분히 우리도 칠 수 있다"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마치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홍명보와 같이 한국 팀의 든든한 '맏형' 역할을 해낸 이종범의 자신감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깊숙이 침투됐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손민한은 "나는 져도 되는 부담없는 경기에만 출전하네"라며 밉지 않은 불만을 표출했다. 사실 미국 전 선발 등판은 패전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손민한은 미국 전에 선발 등판에 1회부터 흔들렸다. 하지만 1회 2사 만루의 위기를 넘겼다. 2대0으로 한국이 앞서고 있던 3회초 손민한은 켄 그리피 주니어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미국의 거센 반격이 시작되는 듯 했다. 다음 타석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야구 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 손민한은 직구는 단 하나도 던지지 않은 채 똑같은 변화구 세 개를 던졌고, 로드리게스는 세 번 모두 헛방망이질을 했다.

손민한은 더그아웃에 들어 오며 한 마디 던졌다. "로드리게스가 직구만 잔뜩 노리고 있는 게 뻔히 보여 변화구로 승부했다." 사실 직구는 던지지 않고 똑 같은 구질의 변화구를 던지는 것은 메이저리그에서는 자주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힘'이 아닌 '머리'로 승부한 손민한의 투구는 한국이 '야구 종가' 미국을 잡는 데에 적지 않은 힘이 됐다.

***# 2. "야! 동갑인데 무슨 존대말을 해?"**

사실 WBC 대회에 참가할 대표팀이 소집됐을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해외파'와 '국내파' 간의 단합이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 왔던 해외파들은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해외파'들과 뛸 기회가 없었던 '국내파' 선수들은 '해외파'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국내파'와 '해외파' 간의 서먹함은 이종범의 한 마디로 완전히 깨졌다. 연습 도중 대표팀의 송지만은 메이저리거 가운데 맏형인 박찬호를 "찬호씨, 찬호씨"라고 불렀다. 이종범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종범은 두 선수에게 "야 너희 둘이 동갑인데 무슨 존대말을 해. 이제부터는 반말로 얘기해"라고 말했다. 한국 팀에서 최고 타율을 기록한 이종범은 이처럼 경기장 밖에서도 주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WBC에 출전하느라 소속 팀의 스프링캠프에 빠져 팀내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흔쾌히 대표팀 합류를 자청했던 '해외파'들과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해 선발된 '국내파'들은 이 일을 계기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일본과의 2라운드에서 승리한 뒤 대형 태극기를 마운드에 꽂는 즉석 퍼포먼스를 연출한 서재응의 쾌활한 성격도 한국 팀의 단합에 큰 도움이 됐다. 서재응은 매 경기마다 더그아웃에서 큰 소리로 선수들을 격려하고 박수를 치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청했다.

대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숙소에서 버스에 오르기 전에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있던 '해외파' 선수들의 아쉬워하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다.

***#3. "메이저리거들은 왜 이렇게 좋은 구장에서 에러를 하지?"**

한국 대표팀은 이번 WBC 대회에 참가한 팀 가운데 유일한 무실책의 팀이다. '수비에는 슬럼프가 없다'는 말처럼 한국의 수비는 빈 틈이 없었다. 오죽하면 미국 언론에서도 한국의 수비를 '밀폐수비(airtight defence)'라고 칭찬했을까.

한국 내야 수비의 핵인 유격수 박진만은 대만 전에서 환상적인 수비를 펼쳤고, 우익수 이진영은 두 차례 일본 전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다이빙 캐치와 완벽한 홈송구로 한국을 구해냈다. 결정적 호수비를 보여준 이진영은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특히 한국 내외야진이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보인 수비력은 '수비 만큼은 우리가 최고'라고 자신했던 일본 야구의 콧대를 꺾었다는 점에서 기분 좋았다.

하지만 2라운드 경기가 펼쳐질 애너하임 구장에 도착했을 때 한 선수가 던진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이런 (훌륭한) 구장에서 왜 에러를 하는 거지"라는 한 마디는 가볍게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우리 나라의 프로야구 구장은 세계 10위 권이라는 경제대국에서 한 해 300만 이상이 관람하는 최고의 인기 프로스포츠라는 명성에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치지 않은가. 최고의 구장이 무려 10개나 지어진 축구와는 굳이 비교를 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 나라의 프로야구가 열리는 각 도시의 구장은 선수에게도, 구장을 찾은 팬들에게도, 이제는 거의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는 대한민국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기장 인프라가 미국이나 일본 만큼 좋았다면 '한국 선수들이 WBC 대회 처럼 국내 프로야구 경기에서도 지금보다 훨씬 수준 높은 야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4. 그 누구보다 진지했던 박찬호와 김태균**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팀 답게 이번 대회 기간 중 선수들이 보여준 집중력은 참 대단했다. 선수들이 너무 긴장해서 가장 어려운 경기였다고 밝힌 첫번째 대만 전부터 마지막 4강 전까지 선수들의 경기에 임하는 자세는 다른 어떤 참가 팀보다 진지했고, 적극적이었다. 경기 중 고비마다 연출된 파인플레이와 적시타는 선수 한 명 한 명의 집중력이 없이는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박찬호의 진지함과 집중력은 돋보였다. 박찬호는 등판이 예견될 때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클럽하우스와 트레이닝 룸을 쉴새 없이 오가며 스트레칭과 마인드 컨트롤을 반복했다. 다른 국가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농담을 주고 받으며 경기를 즐기고 있을 때 박찬호는 자신을 모질게 다그쳤다. 그가 어떻게 메이저리그 100승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증거였다.

김태균도 마찬가지였다. 오른손 대타 요원인 김태균은 출장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매 경기마다 덕아웃 뒤 연습실에서 진지한 자세로 끊임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단 한 차례의 기회가 와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방망이로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던 김태균은 미국 전에서 자신의 임무를 했고, 그의 성실함은 WBC 4강 신화의 작은 원동력이었다.

***#5. 스태프로서 느낀 김인식 감독의 '인간미'**

사실 이번 대회의 참가를 준비하면서 당면한 커다란 걱정거리 중의 하나는 선수단과 함께 현장을 누빌 KBO 스텝들이 기록원 한 명을 제외하면 전원 사무직 인원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었다. 부족한 현장경험을 보완하기 위해선 더 철저히 준비하고 더 부지런히 뛰어 다녀야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많이 점검하고 준비했지만 역시 현장에서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연습장비를 구하기 위해 어느 스태프는 숙소 주변을 누벼야 했고, 호텔에서나 연습장에서나 행여 선수들이 불편한 점이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서울에서 후쿠오카, 동경, 그리고 미국의 피닉스와 애너하임, 샌디에고를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총 6번의 이동 중에 매번 4톤 트럭 2대 분량의 짐이 옮겨졌으며, 옮길 때마다 항상 바뀔 수밖에 없는 선수들의 방 배정부터 시작해 개인 짐 및 공용장비 보관, 대회본부 및 트레이너실 설치 및 운영, 식사메뉴 및 시간, 장소확정, 유니폼을 비롯한 각종 세탁물 관리, 야식준비, 전화사용법 안내 등 늘 새롭게 반복되는 업무를 포함해서 매일매일 바뀌는 스케줄 관리와 선수단 이동 동선, 연습장소 확인 등의 많은 일들은 우리 스태프들에게 다소 피곤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패배를 모르는 우리 선수들의 연이은 승전보는 우리에게 그 어느 것보다 효과가 좋은 피로회복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태프들에게 큰 힘이 된 것은 김인식 감독의 따스함이었다. 김인식 감독은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하고 작전 계획을 세우느라 늘 분주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KBO 스태프들을 볼 때마다 항상 "수고하십니다. 쉬면서 하세요"라는 격려의 말을 빼놓지 않았다. 김인식 감독의 이런 덕담을 들을 때마다 나를 포함한 KBO 스태프들은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됐다.

'감독은 선수가 만드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깊이 새기고, 선수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김인식 감독의 '인간미'는 선수들뿐 아니라 스태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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