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 후보단일화 협상이 중대고비를 맞은 19일 오후 프레시안 편집국에 한 독자의 기고문이 날아들었다.
민주당과 국민통합 21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핵심쟁점, 즉 여론조사 방식의 사전공개,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 우려에 대한 내용이었다.
후보단일화가 된다면 이번 대선에서 단일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힌 독자는 자신을 광고회사 경력자로 소개하고, "여론조사방법의 비공개 약속은 애초 지켜질 수 없었다", "'역선택'을 우려했다면 우려한 사실 자체를 밝히지 말았어야 했다"는 전문가적 견해를 밝혔다.
양측 막판 협상의 속사정과 관련, 독자들께 유의미한 한 시각이 될 듯 해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기고문을 전재한다. 필자와의 약속에 따라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편집자
***여론조사 비밀은 지켜질 수 없다**
필자는 모 광고회사에서 A.E(광고기획자)로서 다년간 재직한 경험이 있다. 소비자의 심리를 미리 파악하여 광고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리서치(조사)가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조사업무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한 부분까지 경험하였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후보단일화 합의 뉴스를 접하고 신선한 감동을 느꼈으며 두 후보의 합리적인 결단에 새로운 정치혁명의 가능성을 기대하였다.
개인적으로 누구에게 표를 행사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단일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국민경선과 여론조사를 사이에 두고 후보단일화 방식에 대한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 즈음 필자는 설사 여론조사 방식으로 양당이 합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조사방식과 문구를 가지고 첨예한 대립을 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것은 민주당과 국민통합 21 모두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있고, 그 전문가들은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론조사에 대한 양당의 합의 내용이 언론에 유출되어 단일화 작업이 좌초 위기를 겪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 지지자에 의한 '역선택'이란 말이 유통되고 있으며 실제로 한나라당의 홈페이지에서는 이를 부추키는 말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이 두가지 부분이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 합의안을 깨야만 하는 근본원인이라고 한다. 두가지 팩트이지만 근본은 한가지다.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론조사방식을 공표하지 말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협상단이 여론조사방식을 언론에 흘리지 않았다면 과연 이 조사방식은 여론조사를 실시하기 전까지 비밀이 유지되어 언론에서 포착하지 못할까?
조사를 조금이라고 아는 사람이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양당의 합의안에 따르면 3개의 조사기관에 의뢰를 해서 5천6백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비밀유지의 전제조건은 최소한의 사람만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실시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비밀을 지켜야만 양당의 합의가 끝까지 이루어 질 수 있는지 셈을 해보기로 하자.
양당의 협상단 10명. 3개 여론조사기관의 대표이사 3명, 임원 3명 이상, 실무자 각 3명으로 9명…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6천여명의 신속한 여론조사를 위해서는 최소 1백50여명의 조사요원(아르바이트)이 필요하다. 실제 조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들에게 조사방식에 대한 사전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수백개의 설문지도 사전에 인쇄되어야만 한다. 단순한 셈으로도 2백여명이 발설을 하지 않아야만 여론조사는 무사히 끝날 수 있다.
비밀이 지켜질 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한 셈이다. 여론조사 실시와 동시에 설문이 공개된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을 통한 유포는 클릭 하나로 순식간에 전국을 커버하게 된다.
비밀이 끝까지 지켜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합의를 깨는 것은 이미 지켜질 수 없는 합의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문제점의 시작인 '역선택'이라는 말의 유통경로를 추적해 보자.
이것은 아마도 조사전문가의 작품일 것이다.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전문가다.
그러나 그 전문가가 '역선택'을 극복한 제대로 된 여론조사결과를 원했더라면 그것을 염두에 두고 방지방안을 협상하되 역선택 가능성을 언론에 유포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이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다루어짐으써 여론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사대상의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역선택'에 대한 교육을 시킨 결과가 되고 말았다. 전문가의 예리한 지적이 낳은 결과이다.
조사는 불특정 다수에게 실행되므로 이러한 사전교육이 없었더라면 극소수를 제외한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지지자를 밝혔을 것이고 통계에서 제외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비밀을 지켰어야 할 대상은 조사방식보다도 오히려 '역선택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던 셈이다. 바둑에서의 수순과 비슷한 이야기다. 똑같이 두어도 순서에 따라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통합21의 발표처럼 합의사항을 언론에 유출한 것이 민주당 측이라면 이 또한 통렬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조사방식의 사전 노출은 미리 예상을 했어야만 했다. 따라서 이 때문에 단일화 협상을 깬다는 것은 명분이 허약하다.
필자는 아직까지 꺼지지 않은 후보단일화 협상에 기대를 걸고 있다. 두 후보가 결단을 내린만큼 참모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협상주체들은 역사적인 결단을 위해 소명감을 가지고 단일화 협상에 임해 주길 바란다. 개개인의 전문성보다는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