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보카트 감독은 7일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우리의 평가전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토고에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놓은 뒤 야인 생활을 하던 본프레레는 한국이 최근 치른 두 차례 평가전에 모두 모습을 드러내며 사실상 토고의 정보원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토고의 코칭 스태프도 본프레레가 한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줬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그렇다면 본프레레는 왜 토고를 돕는 걸까? 기본적으로 한국의 전임 감독인 본프레레는 토고에는 최고의 정보원이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본프레레와 토고의 오토 피스터 감독이 비슷한 길을 걸어 온 닮은꼴이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본프레레와 피스터는 모두 '축구계의 방랑자'다. 아프리카, 중동의 대표팀 등을 전전하며 지도자 생활을 했다. 아프리카의 축구협회는 대표팀에 대한 지원이 열악하기 때문에 두 감독은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다른 사람과 타협하기 보다는 독선을 부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두 감독은 여러 팀을 옮겨 다니면서 부침을 거듭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나이지리아 축구를 우승으로 이끌며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3류 감독으로 전락했다. 피스터 감독은 1991년 가나를 17세 이하 세계축구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려 놓으며 유명세를 탔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사표를 던진 감독 중 최고령인 피스터 감독(68)에게 최악의 순간은 1998년 월드컵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령탑이던 피스터는 팀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 놓았지만 경질됐다.
한국을 독일 월드컵 본선 무대로 이끌기는 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바통을 넘겨야 했던 본프레레와 비슷한 경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조금 다르다.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이 '무능력' 떄문이었다면 피스터의 중도하차는 축구 대표팀에 참견하기를 즐기는 사우디 왕자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사우디 왕실은 축구 대표팀 선수 선발권을 감독과 나눠서 행사하기를 바랬지만 피스터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사우디 왕가는 피스터 대신에 파레이라 감독(현 브라질 대표팀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하지만 사우디는 1998년 월드컵에서 예선탈락 했고, 피스터가 다시 감독으로 부임하는 해프닝이 연출됐다. 당시 외신에서는 이 일을 두고 '유랑극단의 서커스'라는 표현까지 썼을 정도였다.
피스터 감독은 록 냐싱베 토고 축구협회장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곧장 토고로 날아가 간단한 면접을 거친 뒤에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스터 감독은 "중동에서도 다른 제의가 있었지만 월드컵에 나가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피스터와 본프레레는 월드컵 본선에 나가 본 경험이 없다.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운명의 장난이었던지 두 사람 모두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잘렸다.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백발의 광인' 피스터 감독과 토고는 모두 월드컵 처녀 출전이다. 피스터 감독은 토고를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올려 놓은 스티븐 케시 감독의 자리를 꿰찼다. 피스터 감독으로서는 30여 년의 지도자 생활 끝에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본프레레도 독일 월드컵 본선에 한국을 이끌고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에게도 첫 월드컵 본선이 될 수 있었기 때문. 본프레레가 토고를 돕는 것도 결국 피스터 감독을 통해 이번 월드컵에서 '대리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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