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전쟁은 '사람'이 아닌 '정부'가 하는 것"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전쟁은 '사람'이 아닌 '정부'가 하는 것"

[뉴스메이커] 이스라엘 다큐 영화인들의 소망

중동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연일 레바논에 폭격을 퍼붓고 있다. 표면적인 명분은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을 납치한 헤즈볼라에 보복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팔레스타인의 집권세력이자 무장단체이기도 한 하마스를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 무려 40여 곳의 거점을 두고 하마스를 지원해왔다. 하마스와 함께 헤즈볼라도 전면전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의 해안도시 티베리아스에 로켓 공격을 감행하는 등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시리아와 이란까지 지원의 뜻을 보이고 있어 바야흐로 중동은 지금 전쟁의 기운에 휩싸여 있다. 이번에 전쟁이 발발하면 제5차 중동전이 된다. <프레시안>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공격한 다음 날인 7월 14일, 이스라엘에서 온 영화인 세 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다큐멘터리 감독 두키 드로르와 달릿 키모르, 그리고 <아들의 유산>이란 다큐멘터리에서 나레이터 역을 맡은 아미르 골딘 씨. 세 사람 모두 제3회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달릿 키모르(왼쪽), 아미르 골딘, 두키 드로르(오른쪽)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인터뷰하기 30분 전에야 알았다는 이들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긴 침묵 끝에 아미르 골딘 씨가 입을 열었다. "이스라엘처럼 작은 나라에서는 형제의 이야기가 큰 이슈가 되는 법이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다 같이 뭉쳐 싸운다. 국경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이스라엘 군인이 납치됐다. 이에 대응하지 않으면 그들이 이긴 것처럼 보일 테니 이스라엘이 공격을 가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슬람 무장단체에 대응하는 방법은 무력밖에 없다. 이런 방식으로는 테러행위가 계속 늘어날 뿐이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사태에 대해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아미르 골딘 씨는 이슬람 쪽의 자살폭탄 테러로 아들 옴리 골딘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요구하는 운동을 펼쳐왔다. 이번 EBS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방영된 <아들의 유산>은 테러로 아들을 잃은 후 증오 대신 평화를 선택한 아미르 골딘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프레시안 무비 김정민 기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미션' 뉴스를 통해 우리가 접하는 이스라엘은 항상 전쟁 중이다. 상대방이 팔레스타인일 때도 있고, 다른 주변국일 때도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밥을 먹고, 사랑을 하고, 세상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잘 느끼지 못한다. 이스라엘 안에도 평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스라엘 펑크 락 그룹의 리드 싱어였던 옴리 골딘은 버스 자살폭탄 테러 공격으로 스무살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사랑하는 아들 옴리 골딘을 테러로 잃은 아버지 아미르 골딘은 아들의 죽음 이후 새삼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랍인 친구들과 유대인 가족들 모두가 끊이지 않는 극한대립 속에서 정체성 상실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미르 골딘이 다큐멘터리 <아들의 유산>을 찍기로 결심한 건,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 사회 내에 팔레스타인과 화해와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그 과정엔 어려움도 많았다. "사실 <아들의 유산> 촬영은 아주 힘들었다. 사생활이 그대로 드러난 것도 힘들었지만,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거부감을 극복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내게 <아들의 유산>은 평화를 위한 하나의 '미션'과 같았다."
아들의 유산 ⓒ프레시안 무비

물론 힘겨움 뒤에는 보람이 따랐다. 많은 이들이 아미르 골딘의 생각에 지지를 보내왔고,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말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려면 감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들의 유산>이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덕분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평화를 원하는 나의 생각에 더 이상 반대하지 않게 되었다." 아미르 골딘은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아들을 잃은 자신의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 것을 느꼈다. 다큐로 세상과 소통한다 두키 드로르의 다큐멘터리 <반 누엔의 여정>은 이스라엘 사회 내의 또 다른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다룬다. 1979년 베트남을 떠나 망망대해를 떠돌던 일련의 보트피플들이 이스라엘에 와 정착한다. 반 누엔은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베트남 2세. 아버지와 함께 베트남 여행 길에 오른 반 누엔에게 그곳은 이스라엘처럼 또 하나의 '낯선 곳'일 뿐이었다. 베트남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인 두키 드로르에게 결코 낯선 소재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인들의 역사가 바로 디아스포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의 생생한 이야기였던 까닭에 <반 누엔의 여정>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은 컸다. <반 누엔의 여정>은 무엇보다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베트남 커뮤니티'를 이스라엘 및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 사회 안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혼재돼 있다. 내 다큐멘터리 작업은 여러 문제들을 논의의 중심으로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두키 드로르는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성공시켰다. 이스라엘 안에 베트남 보트피플의 역사가 배어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반 누엔의 여정 ⓒ프레시안무비

정치 이전에 '사람 이야기' 또 한 명의 다큐 작가 달릿 키모르는 개인의 작은 투쟁과 실제 삶의 모습을 통해 이스라엘의 진면목을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이스라엘을 둘러싼 전쟁 문제는 더 이상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다. 그녀의 작품 <피클스>는 남편을 잃고 이스라엘 남서부 탐르아에 사는 8명의 아랍여성들이 피클 공장을 운영해가며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내용이다. 달릿 키모르는 "세상 누구와도 다를 것 없는 사람의 이야기, 우리 주변 아랍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8명의 아랍여성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힘겨운 일들로 인해 결국 피클 공장은 문을 닫게 되고, 그녀들은 각기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힘겨운 삶의 여정을 묵묵히 견디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념과 사회체제를 넘어 '인간'의 이야기에 집중함으로써 달릿 키모르는 역설적으로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현 상태에 대해 달릿 키모르는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들은 모두 평화를 원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싸움들은 '사람'들이 아닌 정부가 만들어낸 것이다. 과거에 역사적이고 지역적이었던 문제들이 지금은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로 변질돼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과거에는 정부와 정부가 대립했지만 지금은 갖가지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서로 싸운다는 점이 다르다"면서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 이들의 싸움에 끊임없이 희생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피클스 ⓒ프레시안무비

달릿 키모르의 다큐멘터리는 이스라엘이 정치, 군사적인 이슈가 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보다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모습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 평화로운 삶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녀는 <피클스> 한 작품만으로 암스테르담, 유고슬라비아, 트라이베카 등 세계 7개 영화제를 방문했다. 다큐멘터리 한 편이 세상을 바꾼다. 아미르 골딘, 두키 드로르, 달릿 키모르의 다큐멘터리는 이스라엘 안에 평화의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것은 이 지역의 평화,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가져오는 작은 불씨가 될 수 있다. 한 알의 불씨가 대지를 태우는 법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