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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는 간데 없고 '이미지'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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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는 간데 없고 '이미지'만 남아

[기고]고구려 사극 열풍에 대한 우려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을 소재로 한 MBC 드라마 <주몽>이 지난 6일 시청률 51.9%(TNS미디어)를 기록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60회로 예정돼 있던 이 드라마는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20회 연장 방영되면서 평균 시청률 40.4%, 시청률 35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MBC는 이런 <주몽>의 종영이 못내 아쉬운 듯 12일과 13일 <주몽, 끝나지 않은 신화>라는 타이틀로 '스페셜 방송'까지 내보낼 계획이다. 또 MBC는 오는 5월 광개토대왕 시대를 다룬 <태왕사신기>도 방영할 계획이다.

KBS의 <대조영>, SBS의 <연개소문> 모두 고구려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사극들로 <주몽>만큼은 아니지만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고구려 사극의 인기에 정작 고구려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반가움보다는 오히려 우려가 앞선다고 한다. '고구려사'는 없고, 고구려 '이미지'만 두드러지고 있으며, 이들 드라마가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가 이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글을 최근 발간된 <신문과 방송>에 기고했다. 필자와 <신문과 방송> 측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 지난 6일 종영한 드라마 <주몽> ⓒMBC

고구려, 그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인가?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2003년 이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불거진 한중간의 역사분쟁으로 인해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대중들의 지대한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이러한 물음은 역사학자들에게만 던져지는 것도 아니고, 또 그에 대한 답 역시 역사학자들만의 몫은 아니다.

반가움보다 우려가 더 큰 것은

실제로 요즘 고구려사에 대한 대중의 눈길을 3편의 TV 드라마에 쏠려 있다. MBC의 '주몽', SBS의 '연개소문', KBS의 '대조영'이 그것이다.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주몽, 고구려 최후의 집권자로서 극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연개소문, 그리고 고구려 유민으로 발해 건국의 시조인 대조영이 그 주인공인 셈이다. 게다가 올해에는 고구려의 전성기를 장식한 광개토대왕의 시대를 다룬 '태왕사신기'가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고구려사에서 가장 영웅적인 인물들을 다룬 이들 네 편의 드라마를 연결하면 고구려사 전체를 큰 줄거리로 꿸 수 있을 정도가 될 듯싶다.

그런데 고구려사를 평생의 업으로 연구하는 필자에게 이러한 고구려 사극 붐이 반드시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개의 경우 '고구려사'는 간 데 없고, 고구려 '이미지'만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대형 사극이 끼치는 대중적 영향력이 우리 같은 연구자들이 쓰는 한 줄 글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으니, 반가움보다는 오히려 우려가 앞서게 된다.

사실 필자는 방송계가 돌아가는 사정은 잘 알지 못하지만, 방송사마다 모두 고구려사 관련 사극을 거의 동시에 기획하고 방영하고 있는 현실이 그리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각 방송사가 제작 배경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들 고구려 사극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 결과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전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고구려사에 다들 '올인'하는 분위기는 그리 진지하게만 읽히지는 않는다. 그 어떤 말로 포장하든지 결국은 고구려사가 갖는 '상품성'이 무엇보다 두드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상품성' 추구를 비난할 생각은 추후도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 대중과의 만남이란 '상품성'을 매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을' 상품화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방송하고 있는 세 편의 고구려 사극은 바로 여기에서 적잖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고구려 사극은 성격이 서로 다르고 고구려사를 바라보는 제작자들이 시각 역시 제각각이기 때문에, 짧은 이 지면에서는 배경이 되는 역사관이나 태도의 문제만 간단히 짚으려고 한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사극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하면-아니 대개의 경우는 조언보다는 비판이 되기 십상이지만-대체로 드라마 제작자들은 '픽션'과 '재미'라는 두 단어로 대응한다. 즉 사극은 '역사'가 아니라 '픽션'이기 때문에 굳이 역사적 사실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으며, 고리타분하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역사가 아니라 시청자의 눈길을 모으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번 옳은 이야기다. 필자도 역사학자이지만, 사극이 픽션이며 또한 재미있어야 한다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지금보다 더욱 풍부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과 픽션의 영역 간 긴장이 필요한데

그러나 문제는 그 '픽션'을 적용하는 '영역'에 있다. 고대사, 특히 고구려사는 관련 자료가 적어 역사적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때문에 제작자들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부분도 '역사적 사실'의 공백을 연결하는 상상력이어야 한다. 즉, 역사학이 세운 골격을 이용해 여기에 피와 살을 붙여 생동하는 인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역사소설이나 역사드라마의 '픽션'일 것이다. 그런데 통상 사극 제작자들의 상상력은 이런 '픽션'의 한계를 훨씬 넘어선다.

물론 여기서 역사드라마가 가져야 할 '역사성'에 대하여 굳이 다시 논할 겨를은 없겠지만, 적어도 사극 제작자들이 이런 측면에서는 별로 고민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세 편 모두 '역사'가 아니라 '픽션'이기 때문에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드라마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허다하게 발견되기 때문에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다.

다만 각 드라마가 핵심 코드로 잡고 있는 부분만 지적하자면, '주몽'에서 '철기문화'를 콘셉트로 잡은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절치 않았다. '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의 일대기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역사적 상황이다. 이는 무책임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다. 혹 '근거자료'를 제시할지 모르겠지만 그 자료에 대한 검토와 판단도 결국 제작자의 몫일 뿐이다.

또 '주몽'처럼 아예 퓨전사극으로서 역사 판타지를 자처하고 나서면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러나 결국은 주몽도 '역사'로 보이기를 원하고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좀 우스운 사례를 하나 든다면, 세 편의 사극에서 모두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 등장하는 인물-겨우 이름만 전하는 인물까지-의 이름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참으로 제작자들이 갖는 상상력의 빈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름 석 자는, 스스로 부인하고는 있지만 이 드라마가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안타까운 노력으로 읽힐 뿐이다.

당시엔 없던 '민족의식'을 강조하다니

혹 자유로운 상상은 드라마 제작자의 권리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역사의식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소위 고조선 계승의식이다. '주몽'은 다루고 있는 시대가 그러하기 때문인지 아예 고구려의 건국이 고조선의 계승이라는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다. '연개소문'과 '대조영'에서도 고구려와 고조선의 계승의식을 깊숙이 깔고 있다. 특히 '연개소문'에서 수시로 거론하고 있는 "고구려의 선조 치우천황"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과연 주장대로 정통 사극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사극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당시에는 결코 형성되지 않은 '민족의식'으로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들을 정신무장 시키고 있는 대목에서는 역사드라마가 가져야 할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가벼움에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필자가 역사적 사실의 '고증'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어차피 모든 것을 고증할 수는 없고, 또 고증할 수 있는 것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사판타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려면 최대한 '있을 법한 일'로 구성하고 상상력도 그 범주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사 연구는 사료의 빈곤으로 다른 시대사에 비하여 많은 상상력이 요구된다. 물론 개개 사실(사료)과 사실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사의 상상력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의 기준에서 엄격하게 심사받아야 한다. 그러나 고대사는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인지, 자유로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쉽게들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현실에 대해 무책임한 드라마적 상상력은 고구려사를 현대판 신화의 소재로 만들어 가고 있다.

고구려 드라마는 "대륙의 민족 기상 고구려사의 복권"을 말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구려사의 '복원'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대륙'의 '복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역사연구에는 '복원'해야 할 것도 있고, '복권'해야 할 것도 있다. 그리고 복권은 복원이 전제된 정치의식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복원'보다는 '복권'을 서두르는 주장은 지극히 위험하다. 고대사의 경우 요즈음은 고구려사가 그 대상이 된 셈이다. 그래서 고구려사의 '복원'을 위한 역사적 상상력보다는 '복권'을 기도하는 허구의 상상력이 고구려 사극을 가득 메우고 있다.

경계해야 할 신화 만들기

한중 간의 역사 분쟁이 민족주의 혹은 자국 중심의 사고로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고구려사의 상품화는 손쉽게 국수주의적 내용으로 포장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런 우려는 세 편의 고구려 사극에서 정도 차이는 있지만 모두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개중에는 재야사학자의 국수주의적 견해들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광대한 제국의 역사'를 구성하려는 의도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그 문제점들을 일일이 거론할 여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만주 대륙으로 표상되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거대한 제국이라는 고구려의 이미지가 대중의 환상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상업적 기획의 희생물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오늘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보상받기 위해 만들어지는 이와 같은 고대사에 대한 신화는 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드라마 제작자들의 자성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드라마 제작자들이 갖기 쉬운 이중적 태도에 그들 스스로가 솔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눈길이 궁극에는 드라마의 '상업성'에 쏠려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감히 역사를 복권하고 있다는 식의 오만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극이 갖는 진정성에는 무엇보다 역사의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 모든 책임을 드라마 제작자에게만 돌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드라마 제작의 핵심에 서 있는 그들의 자기 성찰이 없으면 더 이상 사극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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