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헌법개정촉진지원단은 3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의 '원 포인트(one-point)' 개헌안 시안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시안이라기보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논의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필자는 노대통령의 개헌에 대해 반대하지만, 이에 앞서 이번 시안 자체가 갖고 있는 논리적ㆍ현실 정치적 문제점을 사항별로 지적하려 한다.
'궐위'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도 간단한 문제 아니다
우선, 대통령의 궐위 판단에 대한 절차와 과정상의 문제다.
권위주의 시대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59년에 걸친 헌정 경험에서 우리는 9명의 국정 최고 책임자 중, 1960년 이승만 대통령, 1961년 장면 정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1980년 최규하 대통령,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각기 다른 사유로 임기를 중단하는 사태를 겪었다. 이렇게 현직 대통령 또는 의원내각제 하의 총리가 공식적으로 임기를 중단한 일 외에도, 노태우 대통령 재임 중 '중간평가' 약속 이행 여부,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건강 등과 관련된 문제로 인한 입원,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단축 논란 등 국정 중단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그러므로 대통령 궐위 시 후임자의 승계문제는 성공적인 헌정 운영을 위해 매우 중요한 정치적ㆍ헌법적 고려 사항이다.
이번 정부 시안의 '대통령 궐위' 확인 절차는 어떠한가? 이번에 정부 시안 5항에서 대통령의 사고나 질병, 기타의 사유로 인한 궐위 확인 절차를 헌법 사항으로 좀 더 구체화한 것은 진일보한 제안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좀 더 고려해야 할 사항은 '대통령 스스로' 의사를 문서로 표현할 수 있는 경우와 대통령이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없는 경우로 나누어 주의 깊게 다루어야 한다. 정밀한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최악의 경우, 어떤 국무총리가 국무위원들과 단합하여 대통령을 몰아내고자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 절차가 제시되었지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임기 수행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고 엄격하게 궐위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두어야 한다.
'잔여임기 대통령'은 한 번만 더 대통령 할 수 있나
둘째, 임기 문제 가운데 대통령의 궐위에 따른 후임자의 연임에 대한 문제다. 노 대통령은 '원 포인트' 개헌의 당위성과 필요성으로서 5년 단임제로 인한 책임정치의 어려움과 국정운영의 일관성을 들고 있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개헌 사유는 대통령 궐위 시 후임 대통령의 선출 및 임기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발표된 정부 시안은 대통령이 궐위될 때,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채워 근본적으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4년 동시 선거주기를 유지하도록 꾀했다. 이 경우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1회 연임까지 할 경우를 고려하면 최장 7년 364일, 최소 4년 10개월짜리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전임자의 잔여임기를 채우고 1회에 한해 더 선출될 수 있도록 하면, 최악의 경우 두 번 국민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지만 그 사람의 임기는 현재의 단임제 5년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즉 이 사람에게는 노대통령이 개헌의 당위성으로 제기한 '국정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또 대통령 궐위 시 '자투리 임기'를 채우기 위해 시행된 이 보궐선거는 결국 '국정의 계속성'도 담보하지 못하고 선거비용만 곱으로 들고 만다. 이러한 문제점을 제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정ㆍ부통령제이지만, 노대통령은 올해 대선 국면 때문에 이러한 개헌 가능성을 배제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인가 국무총리인가
셋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미만 남았을 때 국무총리가 수행하는 '대통령 대행'과 관련된 사항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미만인 상태에서 대통령이 궐위될 때, 후임 대통령을 따로 선출하지 않고 국무총리가 잔여 임기를 수행한다는 조항은 유신헌법에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국무총리(또는 서리)와 달리, 최근 국무총리는 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후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함으로써 국무총리의 민주적 절차성은 상당히 강화되었다. 그러므로 정부 시안처럼, 대통령의 잔여임기가 1년 미만일 때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할 경우, 전임 대통령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집행할 수 있으며 또 민주적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다.
정작 여기서 헌법적 문제는 잔여임기 1년 미만을 수행하는 국무총리에게 대통령 선거에 몇 번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하느냐는 문제다. 이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대통령'으로 간주하느냐 '국무총리'로 해석하느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 없이' 대통령을 대행한 이 국무총리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경우 그의 당선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다.
만약 그를 국무총리로 보고 4년 임기로 2회 대통령 출마를 허용한다면, 그는 최장 8년 364일 동안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를 대통령으로 보아서 1회만 대통령 출마를 허용한다면 그의 최장 임기는 4년 364일에 불과하게 돼 현 5년 단임제보다도 짧게 된다. 이럴 경우 노 대통령이 내세우는 개헌의 필요성은 설득력을 상당부분 잃고 만다.
동시선거한다고 '여대야소' 보장할 수 있나
마지막으로 정부 개헌 시안 4항인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동시 선거의 문제점이다. 중앙선관위는 두 선거를 동시에 실시함으로서 절약될 수 있는 세금으로 약 1300억 원을 제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동시 선거로 대통령과 여당 다수당의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상정한다.
정부시안 4항은 연도만 다를 뿐 동시 선거를 목표로 하는 4항 1, 3안과 대선과 총선 사이에 한 달 간격을 두는 2안으로 되어 있는데, 이 4항 전체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에서 제시한 선거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추운 한 겨울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다양한 대중 전달매체가 발달되었어도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기본적으로 후보와 유권자의 직접 접촉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 제시안에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작동 원칙에 대한 고려가 없다.
더군다나 이 시안 4항으로 선출될 후임 대통령은 선거 직후 30일 이내에 바로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어 있다. 시안 4항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동시선거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리다 '대선'과 '국정운영'이 차이점을 간과하고 말았다. 이 경우 새 대통령은 전임 정부 정책을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자신의 국정을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구성에 충분한 시간도 갖지 못한 가운데 취임하고 만다. 그러므로 이 경우 대통령은 취임 초 심각한 국정운영의 난맥상을 보일 수 있다. 이는 책임 있는 국정운영을 강조한 노대통령의 개헌 사유에도 반하는 것이다.
정부시안 4항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점은 동시선거를 실시한다고 해도 노 대통령이 가정하는 대통령과 여당의 국회 다수당 실현이 현실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는 점이다. 특히 다당제적 성향이 강하면 국회에서 다수 여당이 출현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또 여당이 다수당을 실현하여도 현재와 같은 선거 풍토 아래에서는 빈번한 재ㆍ보궐선거로 인해 여당의 다수의석이 상실될 수도 있다.
또 최근 민주적 국정 경험도 '3당 합당' 후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의 다수여당 국회,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처럼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동시선거로 실현되는 대통령과 다수 여당의 효율적(?)인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결국 바람직한 국회와 대통령 관계는 개헌이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이 민주적인 정치력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더구나 정부시안 4항 2안대로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에 한 달 시차가 있을 경우,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강력한 공천권 행사를 통해 여당을 더욱 강력하게 통제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고 그 유효기간은 현재와 달리 최대 8년이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우리 헌법이 목표로 하는 대통령과 국회의 상호견제 기능은 더욱 약화되고, 새로운 형태의 권위적 통치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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