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속 모습에서처럼 실제의 양조위도 늘 조용하고, 별로 말이 없으며, 곤란하면 아주 매력적인 표정으로 살짝 미소를 짓는 통에 더 이상 깊은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이 마흔 다섯살의 남자, 그런 면에서는 꽤나 흉포하다. 홍콩 구룡반도 호화로운 도심 한복판의 리츠 칼튼에서 열린 양조위 기자회견은 새영화 <상성>때문이다. 상성의 한자는 '傷城'. 곧 상처입은 도시라는 뜻이다. 제목부터가 매우 '홍콩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실제로 홍콩은 상처입은 도시일 수 있기 때문이다. 150년이 넘도록 영국의 식민지로 살았으며 별로 원치 않는 분위기에서 중국 본토로 귀속됐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화려한 도시지만 그 내면은 만신창이일 수 있다. 그러니 상성만큼 홍콩에 어울리는 표현은 있을 수 없다. 상처받은 도시에 상처입은 영혼의 표정을 담아 낼 배우로는 양조위밖에 없다. 아마도 모두들 그점에서만큼은 100% 동의할 것이다. 그러니 영화 <상성>의 주인공은 양조위가 맡아야 한다.
컨피덴셜 ⓒ프레시안무비
이런 기자회견은 늘 지루하다. 첫마디는 의레껏 "한국팬들에게 감사하고,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고, 조만간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러 가겠다"는 말로 시작된다. 양조위는 <화양연화> 때인 2001년쯤 한국에 왔던 적이 있다. 부산영화제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남포동에 구름떼처럼 몰린 관객들을 보고 그는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양조위 같은 세계적 스타가 겁먹은 표정이라니. 그만큼 내성적인 성격의 양조위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속시원하게 얘기하는 법이 없다. 중국사람 특유의 에둘러가는 말 습성도 말 습성인데다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 탓에 그의 기자회견은 대개 지지부진해지기가 십상이다. 공식 기자회견후 별도로 가진 짧은 인터뷰를 그래서 속으로는 벼렸다. 어디, 이런 질문에는 뭐라고 하나 보자, 심사였는데 막상 눈앞에서 살짝 미소짓는 모습을 보니 공격적인 인터뷰는 이미 물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번 영화가, 에 또 그러니까, 홍콩이라는 도시의 내면을 그린 건가 아니면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건가? (아니나 다를까 양조위는 슬쩍 비껴간다.) 영화가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이건 홍콩의 얘기를 그리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어..그런데 그거 아는지 모르겠다. 이게 원래는 홍콩과 서울 두 도시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다. 양쪽을 오가면서 찍으려고 했다는 거다. 그런데 언어문제가 해결이 안되서 포기한 걸로 안다.(내 질문에 맞는 답변은 아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쯤되면 <상성>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할 것이다. <상성>은 쉽게 말해서 <무간도>의 후광 덕을 톡톡이 보는 작품이며, 앞으로도 그 덕을 톡톡이 볼 작품이다. 일단 <무간도>를 만든 유위강, 맥조휘 감독이 또 다시 공동으로 작업한 영화다. <무간도>가 할리우드에서 <디파티드>란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듯이 이 영화도 곧 할리우드에서 다시 만들어지기로 결정됐다. 이번에도 할리우드 영화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양조위 역을 맡기로 돼있다. 당신 역을 디카프리오가 자꾸 맡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양조위는 또 징검다리 하나 밟고 건넌다. 이런 식이다. 음..그 친구 연기나 영화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 비교는 못하겠다, 우리는 각자 틀린 문화의 관객을 갖고 있으니까, 근데 뭐 디카프리오는 내가 워낙 좋아하는 배우여서 괜찮은 것 같아, 그 친구는 연기를 매우 섬세하게 하거든. 다시 영화얘기로 좀 돌아오면 스포일러를 감안해서 줄거리를 팍 줄여서 말하면 이렇게 된다. 여기 두 형사가 있다. 한사람, 유정희(양조위)는 반장이고 한 사람, 아방(금성무)은 그냥 강력반 소속의 일반형사다. 어느 날 아방은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후 죄책감에 자살을 한 후 절망 끝에 형사 일을 그만두게 된다. 3년의 세월이 지난 후 유정희는 아내 숙진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되고 아방은 사립탐정 일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숙진의 아버지가 참혹하게 살해되고 형사반장인 유정희가 용의자로 지목되게 되면서 세 사람의 운명은 비극적으로 얽히게 된다.
상성 ⓒ프레시안무비
영화는 일찌감치 범인이 유정희임을 밝힌다. 양조위는 그래서, 비교적 극 초중반부터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연기를 해낸다. 양조위가 살려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가차없이 흉기를 휘두르는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집에 돌아가 자기가 죽인 사람의 딸에게 다정다감한 남편이 된다. 도대체 이 남자 유정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가 바로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다. 핵심 포인트는 한가지 더 있다. 양조위가 처음으로 악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악역일까? 우리의 양조위가 정말로 이유없이 사람을 죽인 것일까. 아내에게 잘해 주는 것도 사실은 늑대의 가면에 불과한 것일까? 그래서 그와 따로 앉았을 때 이런 질문을 했다. -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실망할 것이다. (깜짝놀라는 표정으로) "왜?" - 모두들 마음속에서 그럴거다. 나의 양조위가 사람을 죽이다니. (안도하는 웃음, 그 살인미소를 띠면서) 그래도 사연을 알게 되면 그렇게 생각하지들 않을 거다." - 그 사연이 뭔가? "그건 여기서 얘기할 수 없지." - 유정희는 정말 악인인가. 당신 생각은 어떤가? "오랫동안 복수를 꿈꿨고 그래서 계획적으로 사람을 한명한명 죽이는 살인범이다. 더 볼 것도 없이 악인이다. 하지만 이 인물이 악하게 되기까지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그래서 알고 보면 불쌍한 악인이다. 주인공 유정희는 특히 복수가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평온과 평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거기에 이 영화의 비극이 있다."
야수 ⓒ프레시안무비
<무간도>의 강박증때문인지 유위강,맥조휘 감독은 <상성>의 이야기를 두 남자의 대립구도로 풀지 않았다. 주인공은 <무간도>의 양조위-유덕화처럼 이번영화 역시 양조위-금성무의 짝을 만들어놨지만 실제로 영화 전편을 끌고 가는 것은 양조위 1인이다. 그래서 영화는 좇고 쫓기는 긴박감, 서스펜스, 다이너미즘이 좀 부족하다. 하지만 대신 양조위의 마음 바깥 세상과 마음 안 세상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다. <무간도>에선 세상엔 두 가지 종류의 남자가 있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 영화에선, 사람에게는 늘 두 가지의 마음이 있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양조위를 만난 다음 날 홍콩 꾼동에 있는 영화사 '基本映'에서 만난 맥조휘 감독은 이 영화가 단순히 경찰영화, 스릴러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그는 말했다. "이건 홍콩의 내면을 담고 있는 영화다. 홍콩사람들에겐 상처가 많다. 그건 지나 온 시절이 말해 준다. 이 시나리오를 쓸 때는 싸스 때문에 홍콩 전역이 불행했던 시절이었다." 헬기로 촬영한 오프닝 시퀀스에서 유위강-맥조휘 조의 카메라는 홍콩 야경을 유영하듯 훑고 지나간다. 마치 마이클 만이 <콜래트럴>이나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그런 것처럼. 영화는 언뜻 로맨틱한 느낌으로 물씬 다가 오지만 또 한편에선 저 밤하늘 밑 어딘 가에서는 끝없는 욕망의 실타래가 하나가득 엉겨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도시 속의 욕망과 고독은 현대인들의 마음 속 질병의 제1 원인이다. 그래서였을까. 양조위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얘기를 슬쩍 흘렸다. "영화가 끝나고 많이 우울했다. 행복하지가 않더라."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느낄까? 영화 <상성>은 5~6월 블록버스터 시즌의 한복판인 5월30일에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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