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부는 이 평가원의 설립목적이 '에너지원별로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자원 분야의 연구개발(R&D) 정책을 통합하고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현재 에너지관리공단과 신·재생에너지센터, 한국전력공사가 각각 맡고 있는 에너지·자원 기술개발을 통합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1245억 원, 에너지·자원 기술개발 980억 원, 전력 연구개발 1787억 원 등 4012억 원 가량을 다루는 새 민간재단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산자부의 이 같은 계획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다.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당초 에너지관리공단의 부설기관으로 계획됐던 에너지기술평가원이 독립재단으로 바뀌었다가 기획예산처의 반대가 있자 다시 민간재단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이다. 에너지관리공단 노동조합은 이를 '졸속 추진'이라 비난하고 있다.
또 에너지기술평가원이 연구기획 및 과제평가·선정 기능은 맡되 협약체결과 사후관리는 기존 에너지관리공단과 한전에 맡기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등 '통합'돼야 할 기능이 분리되는 점에 대해서도 산자부가 민간재단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무리한 안을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산자위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며 6월 국회에서 논의를 거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배성인 한신대 교수(정치학)가 <프레시안>에 에너지기술평가원 설립 추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보내왔다. 평소 북한의 에너지 정책을 연구하며 에너지관리 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다는 배성인 교수는 "이번 문제는 단순히 조직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전반적인 민영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며 정부가 국내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적 기관 설립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편집자>
요즘처럼 에너지를 둘러싸고 전 세계가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시기에 보다 효율 높은 에너지기술을 개발하고, 나아가 화석에너지원을 대체할 미래 에너지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R&D) 분야를 총괄 관리할 전문기관의 필요성에 대해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수천억 원 대에서 앞으로는 1조 원 이상으로 크게 늘어날 에너지기술에 대한 투자를 관리하게 될 에너지기술평가원의 설립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지난 15일 <한겨레>에 게재된 전병열 에너지자원 R&D 기획단장 대행의 글은 에너지기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근본적인 설립목적, 대체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에너지기술평가원의 근본적인 설립 목적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 에너지기술평가원이 에너지수요관리 강화를 위해 추진된 것이 아니라 기존 연구관리 전담기관의 전문성 강화와 에너지 기술부문 간의 통합을 꾀하려 한 것이라면, 그 '에너지 기술부문의 전문성 강화와 통합'의 목적은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그것은 당연히 국가 에너지믹스(에너지원 구성 비중) 차원에서 개별 연구 성과들이 시너지를 발휘하기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보다 효과적인 수요관리정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게 있어서 효과적인 수요관리 정책은 화석에너지원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원의 개발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미래 에너지정책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기술개발은 수요관리정책이라는 큰틀 속에서 진행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전문성'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에너지기술평가원은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개발의 방향을 잡아 나가는 곳이다. 이를테면 배의 기관실이 아니라 조타석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관의 '전문성'이라는 것은 개별 에너지 분야에 대한 전문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에 대한 국제적인 흐름과 우리나라의 에너지수급현황, 그리고 기존 시장의 특성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조정능력에까지 그 범위를 넓혀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개별 전문가들만 모아다 놓고 전문기관이라고 한다면 '통합'이라는 당초 목표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에너지기술평가원이 '에너지원 사이의 경계를 극복하고 공기업, 출연연구소, 에너지기 업사이의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면 특정 공급사의 강한 영향력 하에 있어서는 곤란하다.
민간재단이 국가 에너지개발을 총괄한다니…
또한 미래 에너지기술개발을 위해 쓰일 막대한 재원을 민간재단에 주어 관리하도록 한다는 계획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유수한 해외 에너지시책 기관들을 살펴봐도 민간재단은 그리 흔치 않으며, 특히 국가 에너지 기술개발의 총괄관리처럼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민간재단은 없다. 더구나 기술평가원의 주된 구성원들도 결국 현재 각 분야에서 연구개발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인원들을 기본으로 해서 구성될 텐데 애써 민간재단이라는 어색한 옷을 입혀 놓으려는 그 이유가 뭔지도 궁금하다.
중요한 것은 기관의 형태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 형태가 상궤로부터 심히 멀어져 있다면 합리적인 이유를 대든가 아니면 재고해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계획이 갈팡질팡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처음부터 줄곧 독립법인으로 기획을 해 왔다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에너지기술평가원의 설립과정은 에너지관리공단의 부설기관에서 민간재단으로, 또 기획과 평가업무가 나뉜 형태로 갈지자 걸음걸이가 전부다.
분산된 연구개발 기능을 통합해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통합은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고 과정일 뿐이다. 에너지기술평가원의 문제는 좀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부디 산업자원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애초에 에너지기술개발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조직이 왜 필요하게 됐는지 그 연유를 생각해보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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