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은 민주당이 52년 전부터 지켜 온 기본정책이며 햇볕정책을 하려면 남북정상회담도 필수 코스."
(박상천 민주당 대표, 8월 31일)
늦었지만 결코 늦지 않은 민주당 박 대표의 말씀을 환영한다.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찬성을 다시금 공식화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당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박 대표의 판단은 정확하다.
박 대표의 발언을 혼란스럽게 접하는 이들이 있다. 정통 민주개혁 세력의 통합방식과 노선에 대한 '사소한' 입장 차이를 극히 이기적인 정파 사이의 주도권 논쟁으로 몰던 이들. 한반도 평화질서라는 민족과 동북아시아의 현안을 '지역'과 '국내 정치적 갈등' 수준으로 왜소화시켜보려던 이들. 호남이라는 지역으로 개혁진영을 고립시키고, 그 안에서의 지역맹주 다툼으로 김 전 대통령과 박 대표의 관계를 이간질시켜 반사적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던 이들. 그럼으로써 대통합을 가로막고 정치적 근본주의에 빠져들거나 또는 대통합을 가로막아 정통 민주개혁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고 이번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극미화(極微化)하려던 이들에게 이번 박 대표의 발언은 참으로 불편할 것이다.
박 대표의 발언을 가장 혼란스럽게 접할 대표적인 이는 당연 이명박 후보일 것이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통일지향적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구축이 한민족의 생존권에 대한 근본문제라는 인식에 동의하자.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헌법의 엄명이기 때문에 제발 저급한 국내정치 수준의 문제로 끌어내리지 말자. 대선에 이용 따윌랑 생각지도 말자.
이명박 후보는 "차기 정권에 부담이 되므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반대"라고 얘기했다. 이 후보의 논리대로라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도 하지 말아야 했다. 이 후보는 개성에도 가지 말았어야 했다. 언제라도 현 정권은 다음 정권에 부담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였을까. 청계천을 자연하천으로 복원하게 되면 자신의 임기인 4년을 넘어서게 되고, 이는 다음 시장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2년 만에 뚝딱 '세계 최장의 분수대'를 만들고는 손을 털었다.(하지만 청계천에서 강제이주 당했던 노점상들은 현재도 동대문 운동장에 집단수용(?)되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의 일관성은 이 후보의 장점(?)이다.
다만 청계천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축은 전혀 다른 차원이고, 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이 후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가 꿈꾸는 남북관계는 보도블록을 뜯었다가 다시 붙이는, 땅을 팠다가 다시 메우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정치군인을 지칭하던 군바리식 토건형' 남북관계일 뿐이다. 그저 '맨땅 파고 삽질하던' 70년대 토목경제의 변형이 뿐이다.
다음으로 조순형 의원이 대표하는 일부 민주당 진영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을 비판한 부분을 분명히 확인하자면, '민주당이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편 '대통합 민주신당'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의 분당과 참여정부 실정에 대한 사과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대북송금 특검에 대한 분명한 사과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요컨대 민주당과 민주신당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햇볕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고 한반도 평화세력으로서의 정통성을 가져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고,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한 가지를 더해 과거 분당에 대한 대국민사과를 요구했던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점을 '대통합의 최소 조건'으로 제시한 듯하다.(물론 탄핵을 정치적 탄핵을 넘어 사법적 탄핵으로 몰고 간 점에 대한 반성도 있다.)
그런데 '호남 자민련화'를 꿈꾸는 일부 민주당 인사들은 이 부분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진의를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도리어 정치적으로 왜곡하고 '호남 자민련'의 독자성을 확보하려 했다. 이들에게 박 대표의 발언은 한편 충격일 수도 있겠다.
반성 없었던 구(舊) 열린우리당도 한편 불편할 것이다. 구렁이 담 넘듯한 민주신당과의 합당을 통해, 과거를 덮기에 급급했던 이들이 있다. 이들은 '대북송금 특검'에 대한 사과를 통해 일시적으로 불행했던 '남북화해협력 세력ㆍ정책의 정통성 문제'를 해소 했어야만 했다. 민주당의 티끌에 대해서는 그토록 소리 높여 비난하더니만 열린우리당의 들보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는다.
대북송금 특검에 대한 사과의 한 주체였어야 할 열린우리당은 사라졌다. 참여정부는 아직까지 유감 표시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일부 보수진영은 우리가 북한에 8000만 달러 상당의 경공업 원자재를 제공하고, 북한은 우리와 지하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키로 한 합의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쏟아낸다. 굳이 그런 식으로 인과관계를 찾는다면, 남북관계의 국내 정치화로부터, 또는 사법화로부터 자유로울 이가 뉘 있겠는가.
나는 이번 아프간 인질 구출 협상에서 수백만 달러 이상의 '몸값'을 지불했다는 외신보도를 믿지 않는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결코 말하지 않겠다. 국가보안법과 한나라당이 지칭하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에게, 현대가 경협에 대한 독점권의 대가로 금전을 지급했다. 이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로 둔갑했고, 결국 특검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 몰역사성, 그 반통일성에 대해서는 지금도 답답하다. 직접 연관되는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지만 최소한 비교라도 할 가치가 있다. 국정원장이 직접 현지에까지 날아가 세계가 공통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지구적 차원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테러단체인 탈레반에게 현금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를 두고 특검을 말하지 않는다. 물론 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을 국내 정치적으로 얼마나 악용했는지에 대한 반면교사는 충분히 될 수 있다. 테러단체와는 만나도 된다. 협상해도 된다. 하지만 북한과는 만나서도 안 된다. 협상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극우보수진영의 일관된 요구다. 대북송금 특검은 일정 부분 그들의 요구에 '편승'한 측면이 있다. 물론 당시의 현실과 여소야대 상황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합리적 변명과 사과가 존재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지금 민주신당과 민주당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범민주진영이야말로 남북화해협력과 통일이라는 '헌법상의 정언명제'를 실천할 유일한 주체라는 자기확신이다. 그 대신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서 주체와 정책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공리에 이끌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 그리고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가져왔는지 묵상해야 한다.
또한 먼 과거가 아닌 가까운 과거에 대한 '청산'차원에서라도 '대북송금 특검'에 대한 과감한 유감 표명이 있어야 한다. 과거 잘못에 대한 역사적 사과야말로 부끄러울 수 없는 고도의 정치행위이다. 범여권을 지지하다 등을 돌린 대다수 시민(현재의 민주당을 지지하는 분들까지도)들은 정부와 구 열린우리당의 '오만'과 '뻔뻔함'을 여전히 지적한다.
정치적 다양성과 입장 차이는 존중하되, 근본적 차이가 없음에도 분열이 지속되는 현실은 슬픈 일이다. 분열의 이득은 일부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의 몫이요, 분열의 피해는 정통 민주개혁세력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박 대표의 발언은 분열보다는 통합을 지향하는 시작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공통분모를 분명하게 확인하고, 우리와 근본적 차이를 갖는 다른 세력을 구분해내자. 이 길이야말로 '반성적 고려'를 통한 대통합으로 민주개혁세력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길이요, 이 후보가 꿈꾸는 '군바리식 토건형 남북관계'의 질곡으로 추락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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