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 근무하여 유명해진 빅터 차 교수의 장인은 농림부 장관도 지낸 김식 전 국회의원이다. 그가 장군에서 예편하여 전남의 지역구에 출마하게 되었을 때 군의 친구 한 사람을 선거운동용 '술상무'로 데리고 다녔단다. 술이 무척 강한 그 친구는 후보에 돌아오는 술잔을 적당히 처리해주는 솜씨를 발휘했다. 그런데 얼마동안이 지난 후 그 친구가 못하겠단다. "아무리 내가 술이 세어도 하다못해 돼지고기 조각이라도 있어야지 김치, 깍두기뿐이니 내가 어떻게 견뎌내겠냐…." 선거를 치러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재미있는 일화다.
요즘 대선판을 보고 있노라면 그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막강한 이명박 후보에 비해 매우 약세인 정동영 이인제 문국현 후보. 그리고 별도의 권영길 후보. 지금 형편으로는 관전하는 재미도, 앞날을 점치는 스릴도 없고, 다만 따분하기만 하다. 아무리 대선판이라지만 이명박 후보의 대항 후보들의 단일화라도 되어야지 무슨 흥이 나서 관심을 갖고 평가도 하고 하나…. 그 '술상무'와 약간 비슷한 넋두리랄까.
요즘 문학평이나 영화평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최근 우연히 조혜정 교수가 쓴 좀 세월이 지난 <서편제> 영화평을 읽고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인공을 눈 멀게 만드는 등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 취향에는 맞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빠져 있다는 이야기다. 썩 잘된 영화로만 무심히 여겨오다가 화들짝 깨달았다.
거기에 비해 정치평은 뒤쳐진다. 정치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기 때문도 있고, 명운을 건 다툼들에 대해 너무 야박하게 모진 말을 할 수가 없다는 이유 등에서 일 것이다. 그렇지만 점점 향상되고 있다. 그리고 크게 수긍할 만한 정치평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김종배 시사평론가의 글은 단일화된다 해도…하고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재미있다.
"후보 단일화만 이루면 정말 해볼 만한 건가? 아닐 수도 있다. 이번 대선은 1997년과 2002년 대선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는 단일화 못잖게 큰 위력을 발휘한 교란 요인이 있었다. 97년엔 '한나라당 출신 후보' 이인제가 있었고, 2002년엔 '영남후보' 노무현과 '부자후보' 정몽준이 있었다. 모두가 한나라당 표를 교란하고 잠식하는 요인이었다. 내 집 문은 잠그고 남의 집 자물쇠는 부수는 양면전략을 펼치고도 승부는 2% 안팎에서 갈렸다.
2007년 대선엔 이런 요인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권자 가운데 지지하는 후보가 이명박 후보인 경우가 39.1%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28.4%)를 앞섰다.(조선일보-한국갤럽 조사)"
성한용 선임기자는 단일화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첫째, 단일화의 당사자가 정동영, 이인제, 문국현 세 사람이다. 함수관계가 훨씬 난해하다. 둘째, '후보가 안 돼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셋째, 세 사람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이명박 후보의 절반에 못 미친다. 단일화를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승산'이 안 보인다. 넷째, 내년 총선 출마희망자들이 후보 단일화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안될까? 아직 모른다."
이목희 논설위원은 이인제 후보를 평하는 그의 칼럼에서 역시 단일화가 어렵다고 보았다.
"무려 8차례나 당적을 옮긴 진기록 보유자가 됐다. 이념 좌표도 혼란스러웠다. 가장 보수 쪽에 위치한 정당에서 진보개혁을 표방한 정당까지 다양하게 옮겨 다녔다. 한때 장점으로 거론되던 빳빳한 분위기는 아집과 독선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명쾌한 말솜씨와 논리가 구차한 변명으로 들리곤 했다.
이 후보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범여권 후보단일화의 한 축이 되었다. 이 후보의 정치역정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그의 출마를 상수(常數)로 보는 시각이 많다. 대권 3수(修)의 기회를 쉽게 포기하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노리는 민주당 원외위원장들이 그의 등을 강하게 떠밀고 있다."
단일화에 비관론이 우세하지만 한번 낙관론적으로 방향을 돌려보면 이런 방식이 있을 것도 같다.
정 후보의 당과 이 후보의 당은 본래 뿌리가 같다. 그리고 지구당조직의 망이 있다. 원외위원장들 때문에 어렵다고 하지만 우선 국회의원 공천의 쿼터에 합의만 보면 합당도 가능할 수 있다. 합당을 해야 힘을 발휘할 수 있을 줄 안다.
문 후보와 타 후보와의 경우는 굳이 합당까지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문 후보 측은 중앙에 있어서의 상징성은 뚜렷하지만 하부에 지방조직은 아직 거의 없다시피 하다. 따라서 정책을 중심한 연합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그 손쉬운 연합만으로도 바라는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합당방식과 연합방식의 병행인 셈이다.
정 후보는 어쨌든 노무현 정권의 자산과 부채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이 여러 가지 혼란스런 과정을 거쳐 신당이 되었다 하더라도 국민의 눈에 그것은 도로열린당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은 얄팍한 눈속임일 뿐이다.
신문에 난 것을 보니 옳은 말들을 했다.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하기 위해 군사독재와 싸웠다. 절차적 민주주의만으로는 국가를 끌고 가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기 위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이목희 의원)
"지금은 몸을 낮춰야 할 때다. 자기를 버리고 시대를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장기다. 희망을 접어선 안 된다."(우원식 의원)
좋은 말들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선거에 임하여야 하고 또 혹시 야당이 되더라도 그런 각오로 태세를 정비하여야 재기할 수가 있다.
그런데 옛날부터 우리 서민들이 흔히 하던 말대로 '다 파먹은 김칫독'으로 노무현 정권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열린당을 잘 다독거릴지언정 그런 탈당, 신당 창당과 같은 어설픈 3류 연극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여기서 노 정권의 평점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한 마디로 말하여 '평년작'은 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누구나가 입을 모으는 대로 그 경망한 언행으로 품위를 못 지켰을 뿐만 아니라 크게 이미지상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조중동 가운데 좀 온건하다는 <중앙일보> 사설에서 최근 '경박한 언행'에 보태어 '섣부른 지식'을 문제 삼았다. 그 일행들의 언행도 어떻게 그렇게 닮은꼴인지 모를 일이다. 속되게 '싸가지'라는 평이 국민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싸가지 말씨는 인터넷 시대에 쉽게 뜨는 어법이라는 미디어평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역시 많이들 말하는 대로 언론과의 각을 세운 싸움으로 큰 손해를 보았다. 무슨 악연이며 콤플렉스여서 그리된 것인지….
정 후보는 그런 품위 잃는 언행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좋은 자산만 이어 받아 발전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대북관계에 너무 많이 걸고 거기에 지나친 기대를 갖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핵의 해결은 약간 낙관은 되나 아직 불투명한 구석이 있으며, 또한 잘된다 해도 완전해결에는 몇 년 걸리는 게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 너무 걸면 불확실성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주의를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문제의 '우리 민족끼리'이다. 참 그럴듯하고 좋다. 그런데 그게 녹피(鹿皮)에 가로 왈(曰)자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선용도 되고 악용도 된다. 당장 미국을, 미군을 몰아내자는 구호가 이미 광화문통에서 확성기로 불길하게 울리지 않았는가. 푸른 한반도기를 내건 차에서. 미군 철수는 동북아시아 평화질서 형성과정과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게 수순이다.
이 후보에 대해서는 앞서 다른 글을 인용한 바 있지만, 후보 당선인사말에서도 "국민의 이해와 용서를 구합니다"고 말한 바 있는 바로 그것을 말로만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었으면 한다. '이인제 학습효과'라고 정치용어사전에 오를 만한 그 흠집이 지워지도록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오랜 전통의 민주당을 내세우는데 그 민주당의 명예도 지키고 저력도 보여주어야 한다고 본다.
문 후보는 그야말로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그의 실용적인 경제대안으로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앞날의 경제모델로 이명박 후보의 것과 문국현 후보의 것이 다른 후보를 제치고 분명히 떠올랐다 하겠다. 그런데 지식산업, 중소기업, 고용 위주의 모델이라고 틀만 제시되어 있지 아직 구체적 정책화가 된 것을 못 들었다. '기업의 사회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운동은 좋은 활동이다. 그런데 그런 윤리적 차원에서의 이야기만 갖고 나라를 맡을 수는 없다. 윤리와 함께, 그것을 뒷받침할지 아니면 그 위에 있을지 몰라도, 제도적인 문제에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고용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가 그 한 예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기성정치인들은 가급적 배제한 채 정치 아마추어들만으로 마치 십자군운동처럼 벌이는 그의 활동은 참신하다. 옛날엔 십자군이란 용어를 잘 써 아이젠하워도 <유럽에서의 십자군>이란 책을 냈는데 이슬람권이 각성한 오늘날에 와서는 금기용어가 되었다. 다른 좋은 표현이 있었으면 좋겠다.
60년대 후반 미국에 체류할 때 관찰한 미국정치의 드라마가 회상된다.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란 훌륭한 사회계획을 폈으나 월남전의 진흙탕에 빠져 인기가 추락했다. 같은 민주당의 유진 매카디 상원의원이 도전하여 '청소년의 십자군(당시는 그 표현을 썼다)'을 이끌고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존슨에 강타를 먹였다. 그러자 JFK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언더 독의 챔피언으로 실존적인 정치언행을 보이며 뛰어들었다....그리고 비극. 결국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인기는 없었지만 안정감을 주는 공화당의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사람들은 대개 진부한 결말이라 했다.
생소한 외래어에 데자뷰(Deja Vu)라는 게 있다. 기시감(旣視感)이라고 번역되는데 여하간 어디서 한 번 본 듯한 느낌을 말한다. 60년대 후반의 미국정치. 오늘의 한국정치. 데자뷰?
이명박 후보는 노 정권 불인기의 반사적 이익에도 덕을 보아 여론상 국민 반 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가 강력한 도전을 받아 바짝 긴장하게 될 때, 아슬아슬한 지경에까지 갈 때, 우리 정치는 그만큼 향상되고 국민은 그만큼 편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후보가 득표를 위해 반성과 성찰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 변화가 있고 정책적 향상은 물론 스스로의 인격적 카타르시스도 있을 것이다.
대운하도 재검토 되고, 재벌이 은행을 가져도 좋다는 금산분리 폐지(완화) 정책도 철회하게 될 줄로 상상해 본다. 갑자기, 대운하가 처음에는 안 그랬겠지만 중도에 영어로 decoy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예를 들어 새 모형으로 사냥에 속임수를 쓰는 것을 말하는데, 아주 쉽게 표현하면 허수아비다. 두드려도, 때려도 별로 아프거나 상처 나지 않는 대운하 decoy를 내세워 놓아 다른 아프거나 어려운 문제에서 관심을 돌리게 하는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적당한 때 세불리하면 살짝 decoy를 거두어 들이며 별로 상처 없이 선거는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에게는 앞으로 터질 지뢰가 있다느니 무어니 하는 항간에 떠도는 말들이 있기는 한데 여기선 그런 화제는 접어두기로 한다.
또한 한국선거에는 북한이나 미국 등의 외부가 부분적인 요인으로 관련되게 마련이다. 이명박 후보 측이 부시 면담 운운한 것이나 북의 방송이 선동하는 것 등이 모두 그런 측면이다. 거기에 대해서도 그런 차원이 있다는 것을 언급해두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정치평론의 수준이 아직 모자란다고 서두에 말했는데 그런 꼴의 글이 되었다. 정동영 이인제 문국현 세 후보, 기죽지 말고 선전하십시오. 그게 우리 정치를 진일보시키는 일입니다. 지더라도 또 막중한 역할을 하는 야당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 이 글은 잡지 <헌정>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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