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총입학정원 결정을 두고 논란이 뜨거웠다. 대한변협 등 법조계는 '현 사법시험 합격자(1000명) 수준'을 요구했고, 변호사 수 확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들과 법학교수 단체들은 '최소 3000명'을 요구했다. 이 사이에서 교육부는 법조계의 요구에 더 가까운 '2000명'으로 결정했다. 얼핏보면 '중간' 같지만 로스쿨 입학자 중 75% 정도만이 변호사가 된다고 감안했을 때 법조계의 요구에 다소 가까운 숫자다.
따라서 '변호사 수 확충' 측 시민사회단체와 법학교수계의 강한 반발을 샀다. 하지만 교육부가 '로스쿨 인가기준'을 발표하는 등 발빠르게 로스쿨 정책을 추진해나가자 대학들은 로스쿨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로스쿨 정원 논란'은 다소 시들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법학교수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여전히 꾸준하게 '변호사 수 확충', 즉 로스쿨 정원 확충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1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낼 계획이다.
최근 <국정브리핑>과 <법률신문>에는 '로스쿨 정원 2000명'을 옹호하는, 즉 변호사 수 확충을 반대하는 논조의 글이 실렸다. <국정브리핑>에는 법무부 한찬식 법조인력정책과장이 기고해 "결코 현재의 법조인 수가 적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한 과장은 "2003년 이래 사건 수 증가가 미미한 실정이고, 변호사 1인당 연간 평균 수임건수는 매년 감소 추세이며, 사법연수생의 정부·기업 등 법조외 직역 진출도 미흡한 상태"라며 "변호사 1인당 평균 수임건수가 1998년 이후 감소 추세에 있다는 사실은 변호사 수 증가율이 사건 증가율보다 높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주장했다.
<법률신문>에는 민변 사법위원장인 민경한 변호사가 기고해 "총 정원을 3000명 이상으로 하여 변호사를 많이 배출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라고 주장했다.
민 변호사는 "법률 서비스는 공산품이 아니어서 수요 공급의 법칙이 잘 적용되지 않고 기초비용 이하로 무한정 내려갈 수 없는 것"이라며 "자신의 전 재산이나 생명이 걸린 소송을 수임료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맡기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민 변호사는 그 근거로 △공인회계사나 세무사가 아무리 늘어도 비용이 하락하지 않는다는 점 △지방변호사회에서 소액사건 변호인단을 구성해 저렴한 비용에 법률서비스를 해도 국민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 △우리나라는 법무사, 변리사, 세무사, 노무사 등 외국에는 없는 유사법조직역이 많은 나라라는 점 등을 들었다.
이 두 글에 대해 이상수 서강대 교수(새사회연대 정책위원)가 <프레시안>에 반박문을 기고해 왔다. 이 교수는 "국세청에 사업자 등록을 낸 3315명의 변호사들 1인당 평균 수입이 연간 3억2만 원을 넘는다"며 "도무지 변호사에게 왜 이런 특권이 보장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가에서 변호사 숫자를 통제하기 때문에 이런 경제적 특권이 보장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그 근거로 "민사소송에서 '나홀로 소송'이 82%에 이르고, 형사소송에서도 변호사 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60%에 이른다"며 "이는 국민들이 법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변호사 수임료가 너무 비싸 변호사를 못 하는 것이고, 변호사 수가 너무 적어서 못 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밖에도 여러 대목에서 변호사 집단의 기득권 구조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프레시안>은 이 교수의 기고문과 함께, 기고문 중간에 반박의 대상이 된 두 글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당 기고문이 게제된 웹페이지를 링크해 소개한다. 이 교수의 기고에 대한 재반론을 통해 로스쿨 정원 문제를 놓고 진행되는 논쟁이 보다 생산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변호사 집단이 나라를 망친다.
"우리 국민들은 저렴한 가격의 재화나 서비스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
얼핏 듣기에도 상식과 다른 주장이다. 그런데 '정의와 인권'의 보루가 돼야 할 법조인들이 이렇게 외치고 있다.
사람이 먹고 살자고 자기 밥그릇 챙기는 것이야 어찌 비난할 수 있겠는가마는, 자기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남의 쪽박을 깨부수는 짓이 어찌 용서될 수 있겠는가? 요즘 우리 사회에 그런 작자들이 있으니, 바로 법조인들이다.
내 일찍이 법조인들이 '정의와 인권'은 저 멀리 내팽개치고 오로지 특권과 거들먹거림으로 나대는 것을 보아왔거니와 요즘 이들의 행태를 보아하니 참으로 한심하고 분통이 터진다.
최근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사업자 등록을 낸 3315명 변호사들의 1인당 평균 수입금액은 연간 3억2만 원을 넘는다. 게다가 변호사들의 고질적인 탈세행태야 세상이 다 아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나라 변호사의 소득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고급 전관변호사를 쓰려면 최소 1000만 원이고 사안에 따라서는 억대를 호가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이들이 기껏 사건당 수백만 원, 심지어 수십만 원의 소득을 신고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나는 도무지 변호사에게 왜 이런 특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런 부조리가 용납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변호사가 어디서 돈 많은 사람과 작당해서 돈 많이 버는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법률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이 현실은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김도현 새사회연대 정책위원(동국대 교수)이 지난 10월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사소송사건 중에서 '나홀로 소송' 은 82%에 이른다(2006년). 국민들이 법을 잘 알아서가 아니고, 변호사 수임료가 너무 비싸 변호사를 못 사는 것이고 변호사 수가 너무 적어서 못 사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심지어 형사소송에서도 변호사 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60%에 이른다(일본은 이것이 2%에 불과하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자면 변호사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변호사들은 기를 쓰고 이에 저항하고 있다. 대한변협이 바로 그 첨단에 있다. 변호사 수를 충분히 늘려서 돈 있는 귀족들만이 아니라, 일반 서민도 변호사의 도움을 좀 받고 살자는데 그것이 그리 고깝고 두려운가?
법조의 앞잡이를 자처하는 정부
지난 10월 말에는 교육부가 매년 1440명 수준으로 변호사를 배출하면 충분하다고 발표하여 국민의 마음을 확 긁어 놓았다. 우리사회의 변호사 독점이 현 수준에서 매년 450명 정도 더 배출한다고 해결될 수준이던가? 교육부의 주장대로 OECD평균 수준에만 도달하려고 해도 매년 1440명 배출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계산결과가 나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교육부는 이를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와대는 아무런 추가적인 논거도 없이 교육부의 입장이 옳다고 논평했다. 국가기관의 무책임이 도를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6일에는 법무부가 국정브리핑을 통해서 공식입장을 밝혔다. 교육부의 계산착오를 알고 있는 법무부는 우리나라가 OECD평균에 도달할 필요조차 아예 없다고 천명했다. 특별한 논거는 없지만 향후 10년간 1500명에서 1600명의 법조인을 배출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밝히고 있다. 교육부 주장보다 눈꼽만큼 증가했다면 증가한 것이지만, 어찌 이것을 증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계속해서 사법후진국 중의 후진국을 유지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국정브리핑> 한찬식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기고 보기: 로스쿨 정원 왜 2000명인가)
법무부의 공식문서에는 더 심한 주장도 많다. '현재의 법조인 수가 작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법률서비스 분야는 '공급이 많다고 하여 가격이 당연히 내려가지 않는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경제학의 ABC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법무부의 주장이 타당한 경우가 있다면, 변호사들의 독점력과 강력한 담합 하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변호사 수를 늘려도 변호사들이 담합해서 가격인하를 하지 않겠다는 위협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 있다. 우리나라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무변촌이 절반이 넘지만,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답답한 놈이 우물 판다고 변호사가 필요하면 법원 검찰청 앞에 있는 변호사를 이용하면 되지 않는냐고 한다. 더 심한 것도 있다. '변호사가 증대된다고 하여 농어촌까지 변호사 사무소가 들어선다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농어촌 사람은 계속해서 변호사 없이 살라는 말인가?
한마디로 법무부의 눈에 국민은 없다. 국민이 사법서비스의 부족으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의 언급조차 없다. 어떻게 국민에게 사법서비스를 증가시켜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전혀 찾을 수 없다.
오직 법조인의 '황금밥통'이 행여 조금이라도 쭈그러들까 적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법무부는 최근 변호사 1인당 연간 평균 사건 수임건수는 매년 감소추세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그러한 감소추세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1인당 사건 수임건수가 일본의 6배에 이른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법무부는 오직 변호사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 청와대, 법무부로 이어지는 이러한 일련의 발표를 보면서 나는 국민으로서 '참여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법조인 중에 국민을 위한 양심은 존재하지 않는가?
민변조차…
그러던 중 이번에는 민변이 이 논쟁에 가세했다. 한 변호사가 민변 사법위원장의 직함을 걸고 글을 쓴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가히 충격적이다. 더구나 이른바 우리사회 법조의 마지막 양심을 자처한 집단에서 나온 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대한변협이 이렇게 주장했다면 나는 이토록 충격받지 않았을 것이다.(☞<법률신문> 민경한 변호사(민변 사법위원장) 기고 보기: 로스쿨 총 정원에 대한 오해와 환상)
민변의 주장은 법무부 주장의 반복 내지 복제판이다. 한마디로 이른바 선진국의 집합이라고 하는 OECD와는 비교할 필요도 없고, 변호사가 늘어도 수임료를 줄지 않을 것이고 양질의 변호사도 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황당함의 극치이다. 그들의 주장을 직접 인용하면 이렇다: "변호사 수가 늘어난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없다."
변호사법에 적혀 있고 변호사들이 그토록 인용하기 좋아하던 '정의와 인권'은 어디에 갔는가? 결국 그들이 주장한 정의와 인권은 허구적인 장식에 불과함을 스스로 입증해 보이고 있다. 민변의 주장에는 합리성도 명분도 없고 체면도 없다. 오로지 더럽고 노골적인 아집과 이전투구만이 있다.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교육부와 청와대와 법무부는 이들의 앞잡이일 뿐이다. 변호사가 온갖 특권을 누리고 심지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정부와 법조계가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나라 망친다
이제 우리나라의 법조계는 사법을 망치는 것에서 넘어서 온 나라를 망치고 있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전사회적으로 실현하고, 전세계를 향해서 개방적 적극적으로 도전하며, 4만불 시대에 걸맞는 삶의 질을 유지하는 선진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유능한 변호사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오직 법조인의 편협한 특권주의에 의해서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 지금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오랫동안 법조계의 압제에 시달려야 할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일제의 칼날이 조선민중의 숨통을 죌 때 그것이 어떤 느낌이었을 지를 실감한다. 참으로 답답하다.
이제 지긋지긋하다. 구시대의 법조인 상은 완전히 탈각해야 한다. 고시한판으로 인생역전하는 봉건적 과거시험은 폐지되어야 한다. 변호사란 이유로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헛된 특권의식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더구나 돈벌이밖에 한 것이 없는 변호사 주제에 국민위에 군림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새로운 법조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변호사는 하나의 자격일 뿐이다. 변호사 자격은 특권을 보장하는 면허증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위해서 정의와 인권수호의 사명을 다하라는 국민의 명령서이어야 한다. 변호사의 표준은 돈 많고 지체높은 사람일 수 없다. 변호사는 낮은 곳에 처하여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을 잘 수행한 변호사 중에서 판사와 검사를 임용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사법이 바로 서고 나라가 바로 설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이 바로 변호사 수의 대폭적인 증가이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사의 특권은 근본적으로 변호사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독점적인 변호사 시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 선량한 사람이 왜 없겠는가마는 합격하자말자 사람을 불문하고 누구나 변호사의 담합구조에서 헤어나지 못 하는 것이 바로 그 반증이다. 법조특권의 문제는 법조인의 인격이나 법조윤리의 문제가 아니고, 구조의 문제임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변호사 수의 획기적 증가를 말하지 않는 어떤 법조인도 믿어서는 안된다.
변호사 업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사회라면 변호사가 당연히 부자라는 관념이 없는 사회일 것이다. 판검사를 포함한 모든 법조인이 이웃 아저씨·아주머니처럼 친근하고 친절해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니 진짜로 우리의 친근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어찌 변호사 수의 획기적 증가없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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