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6월 항쟁 20주년을 기념해 프레시안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공동으로 진행한 연속 강좌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최장집, 이정우, 최영기, 장하준, 임동원, 도정일, 김우창 같은 지식인이 강연자로 나서고 토론을 한 결과를 모았으니, 부제대로 '지식인 7인의 성찰과 전망'이라 할 만하다. 더욱이 강연자들이 민주화 이후 우리가 맞닥뜨린 민주주의의 위기에 주목하고 있고, 넓은 의미의 진보 진영이 권력을 획득한 다음에도 그 가치를 실현하지 못한 원인을 톺아보고 있으니, '민주화 20년, 한국사회를 돌아보다'라는 부제도 적절해 보인다.
문제는 제목이다. 부제만으로도 책의 성격이 명확한데, 그 부제와 동떨어진 말로 제목을 삼고 있어서다. 그것은 아마도 시차적응의 결과인 듯싶다. 이명박 정권 수립 이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성찰보다는 전망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읽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듯싶다. 나도 책을 그렇게 읽었다. 익히 다 알고 있는 점을 지루하게 반복해서 비판하기 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어떤 전망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지 밝히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렇다고 지식인이 한 말이니 무척이나 공허하고 추상적일 것이라 짐작하지는 말 것. 무척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이 많다보니, 읽다보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첫 번째 과제 : 준대통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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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은 이 책에서 견제되지 않는 대통령 권력을 문제 삼는다. 이는 이미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경험한 바요, 불행하게도 현 정권에서도 다시 확인하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 정치는 지금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정당에 책임을 지고 그 정당은 다시 국민에 책임을 지는 구조가 돼 있으면 대통령의 권력 견제가 가능할 텐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비대한 대통력직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보면 내각제가 답일 성싶다. 그러나 최장집은 예상과 달리 대통령제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그 권력을 견제하고 축소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준대통령제에서 상당히 많은 정치적 영감을 얻고 있는데, 총리는 의회 다수당이 의회에서 뽑고 대통령은 국민 선거로 뽑는 형태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준대통령제는 총리가 행정 수반을 맡고 대통령은 외교, 국방을 맡는다. 준대통령제의 특징은 우리처럼 단순다수제가 아니라 결선투표제가 있다는 점이다. 이 제도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결선투표가 이뤄질 때의 한 가지 장점은 정당들이 전부 대통령 후보에 출마해 1차 투표에서 표를 획득한 수만큼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후 2차 투표에서 표를 결합할 때 정당 간 연합의 성격을 갖게 돼, 인물 중심이 아닌 정당 중심적 대표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최장집의 말대로 대표와 책임성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라면, 그리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 정당정치가 강화되어야 한다면, 현실적 대안으로 준대통령제를 수용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 볼 만하다 싶다.
두 번째 과제 : 복지국가
이정우는 자본주의를 영미형(자유시장경제), 유럽대륙형(거시담합주의), 북구형(사민주의)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북구형의 장점과 성과를 자세히 설명한다. 영미형과 비교할 때 효율성과 성장에서 비슷한 결과를 낳았는데, 분배의 평등, 사회통합성에서는 북구형이 훨씬 낫다고 한다. 더불어 북구형은 소득분배가 평등하고, 빈곤과 범죄도 훨씬 적다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이정우가 대안경제로 무엇을 내놓고자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탈자본주의가 아닌 마당에야 북구형을 우리 경제가 나가야할 방향으로 삼자는 것이다.
당연히 이정우는 반론에도 준비된 답변을 내놓았다. 회의론자들은 규모를 이유로 들어 북구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우리 인구가 4800만 명인데 비해 북구는 500만 명에서 1000만 명정도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참고할 만하겠냐는 것이다. 이정우는 그런 이들에게 되묻는다. '경제 규모가 우리의 17배나 되는 미국을 모델로 삼으려는 것은 타당하냐.' 정치성향이 너무 보수적이고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 약하다는 점에서 북구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건강한 시민단체들이 있어 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이 모델로 가는 방법으로 정치 민주화와 제도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경제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거시적으로는 사회적 대타협, 미시적으로는 조직의 민주화를 제시하였습니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킬 복지국가의 발전입니다. 복지국가는 우리나라에서 마치 성장의 방해물 정도로 인식되고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단계의 초보적 복지수준에서는 얼마든지 복지와 성장을 조화시킬 여지가 많이 남았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망령에 이끌려 온 결과가 저성장과 양극화다. 그런데도 여전히 영미형을 고집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더불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발상을 전환하고 우리의 미래를 다르게 꿈꿀 필요가 있다.
장하준은 역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논객답다. "시장원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 일정정도 시장의 논리에서 보호를 받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나, 사회적 대타협의 실체라는 것이 재벌들의 경영권을 안정시켜주고 그 대가로 투자하고 고용창출하며, 전향적인 노사관계 정립과 복지국가를 요구하라는 말에는 거센 비판이 일 수밖에 없다.
장하준이 북구형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도 재벌문제를 바라보는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토론에 나선 정성진 교수가 "재벌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스웨덴 모델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비판한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구형의 가치가 다시 논의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장하준은 북구가 미국보다 경제 성장률이 높은 이유를 잘 갖추어진 복지제도에서 찾는다. 해고당해도 먹고 살 수 있고, 재교육으로 취업이 잘 되니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1인당 산업 로봇 숫자가 일본과 함께 가장 높은 나라가 스웨덴이라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일본은 기업 차원에서 핵심 노동자의 종신고용을 보장하기 때문이고, 스웨덴은 복지가 잘 갖추어져 노동자들이 공장 자동화를 거부하지 않아서 그렇다 한다. 그러면 일본과 스웨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 것일까.
"일본의 시스템이 스웨덴보다 덜 공평합니다. 일본에서는 좋은 대기업에 들어가면 일생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일생이 팍팍합니다. 스웨덴처럼 모든 사람들의 일생을 보장할 수 있는 나라가 복지국가입니다."
인간적인 사회를 향해 나아가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는 진보적 전망을 공유하는 이들이 함께 지향해야 할 새로운 체제를 꿈꾸게 한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정치체제는 준대통령제를, 경제체제는 북구모델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면,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임동원)를 확립해야 하는데다, "문화"(도정일)로 "인간적인 사회"(김우창)를 만들어야 한다.
패배감과 절망감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다. 이 책에서 제기된 전망을 검토하고 비판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장하준의 말대로 그 누구도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모두 다 "다른 의미로 보자는 취지에서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불쏘시개다. 대선 패배 이후 차가워진 가슴에 새로운 불을 지피고 있으니 말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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