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재미없어! 다신 이런 곳에 안 올 거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재미없어! 다신 이런 곳에 안 올 거야"

[독자기고]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연일 계속되고 있는 '쇠고기 시국'의 가장 큰 특징은 10대들이 움직였다는 점이었다. 인터넷과 휴대폰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 받고, 촛불을 들고 나서는 이들의 움직임에 놀란 정부는 급기야 사법 처리에 나서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이들의 활발한 토론과 참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금 사회 곳곳에서는 이번 사태를 분석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10대의 참여를 독려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색다른 현상에 대한 '감동'은 넘쳐나지만 학생들이 왜, 이렇게 나서는지 더 깊게 분석하려는 진지함은 찾기 힘들다.

이 같은 분위기는 촛불 집회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이크의 주도권은 1700개 단체가 모였다는 '국민대책회의'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있고, 정작 촛불 집회를 성공으로 이끈 10대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다. 교복을 입은 학생에게는 대개 마이크보다 카메라가 더 자주 다가간다.

최근 촛불 집회에 참석했던 20대 초반의 독자 박솔잎 씨가 <프레시안>에 참가 후기를 보내왔다. 그는 "지난 9일 촛불집회는 2002년 촛불집회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며 "'커다란 무대'를 만들어 이들의 목소리를 빼앗아 버리는 상황을, 어른들은 또 다시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편집자>

5월 9일, 촛불문화제 외곽에서 있던 일

2008년 5월 2일, 10대들이 주도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문화제' 소식을 듣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대를 촛불 집회와 서명 운동으로 보내고 20대가 된 '나름 독특한' 어른으로서, '드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5월 9일, 엄마의 친구와 그들의 자녀(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했다)까지 약 10명 정도가 함께 모여 청계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날 촛불 집회에는 '무대'라는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커다란 스피커와 조명이 있었다. 문화제가 진행되는 약 2~3시간 동안 우린 스피커 소리에 온 집중을 하고 있어야 했다. 참가자들과 발언자 간의 거리는 멀어져버렸다. 우리는 무대를 올려다보고 있어야 했고, 무대 위 사람들은 우리들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 3일 울려 퍼졌다던 '아리랑'도 그날은 거의 불리지 못했다. 우리는 분명 그 자리에 있었지만, '참여'하진 못한 셈이다. 커다란 무대는 있었지만, 오히려 우리는 소외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함께 간 아이 중 한 명이 이렇게 소리쳤다.

"재미없었어! 다신 이런 곳에 안 올 거야!"

2002년의 '악몽'이 되살아나다

이 한 마디에 옛날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2002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촛불 집회'라는 것이 선을 보였었다. 이 행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두 소녀 '효순이와 미선이'는 당시 15살. 1988년생인 나와 동갑이었다. 같은 나이의 소녀들이 '살해'당했고, 이를 미군이 덮어내려고만 한다는 사실에 나와 친구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이 때 일어난 촛불 집회는 기존의 시위가 하나의 광장 문화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이 "와! 집회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라면서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10대였던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촛불 집회 소식에 언제나 귀 기울였고, (비록 전체 참가자에 비하면 소수이긴 했지만) 너도나도 양초를 하나씩 들고 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촛불 집회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정작 10대였던 우리들은 점점 촛불 집회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커다란 무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무대를 올려다보며 또 다른 '가르침'를 받도록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있어 우린 '아직 이 어려운 사안을 객관적으로 알기에는 너무 어리고 감정적인 녀석들'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어른들은 '어느 단체가 무대를 차지하느냐'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있어 '광장 문화' 같았던 촛불 집회는 지루하고, 따분하고, 무서운 것으로 변해갔다. 결국 얼마 안 가 집회는 흐지부지 끝나버렸고, 이에 질려버린 나의 친구들은 다시는 촛불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어느새 20대가 되었다.

"옛날에 효순이 미선이 때 가봤는데, 무섭게 하더라고…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사람들이 막 쳐들어가자고 하고, 난 막 동떨어져있는 것 같고…."

"계속 무대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데, 나중엔 무섭더라."

"무대 위에서 뭐 하는거 따라하기만 하고, 우리한텐 공부나 더 하라고 그러고…."

"저런 걸 왜 하나, 그랬다니깐. 다시는 안 가기로 했어."

"그래봤자 바뀌는 거 하나 없던데 뭘."

그리고 5월 9일의 청계천 촛불 집회에 설치돼 있던 커다란 무대는 내게 이런 악몽을 되살리는 듯 했다. 3일에 있었다던 자그마한 자유발언대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또 다시' 무대를 올려다보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 이 시점에서, 우린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혹시, 어른들이 또 다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은 아닐까? 은연 중에 "저 아이들 아직 뭘 몰라. 우리가 가르치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고 말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레시안

이번 촛불 집회는, 10대 청소년이 휴대폰과 인터넷의 힘을 빌려 스스로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린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혹시, 어른들이 또 다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은 아닐까? 은연 중에 "저 아이들 아직 뭘 몰라. 우리가 가르치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고 말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린 이걸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10대 아이들이 어른들이 실천해내지 못한 것들을 실천해 내고 있는, 국민의 권리를 다시 돌려받고자 하는 똑똑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이들은 절대 미숙하거나 어리숙하지 않다. 오히려 어른들 만큼이나 독립적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의 인격체이다.

따라서 "다시는 안 갈 거야!"라고 외치던 그 아이의 말이 왜 나왔는지 우린 곰곰이 고민해봐야 한다. 9일, 국민의 주권에 대해선 어른보다 더 잘 아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무대'라는 또 다른 형태의 '교단'을 만들어 자신들의 주장 만을 외치려 했다. 촛불 집회까지 와서도 또 10대들을 '미숙한 존재'로 본 것이다.

어른들이 단순히 '보여지는' 무대에 치중하고 또 가르치려 들면서, 5월 2일 10대들이 만들어낸 자유로운 발언의 장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9일 청계천에서 있었던 '성공적'인 촛불 집회 에는, 단순히 스피커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외당한 수많은 사람들과, 발언대가 큰 무대로 통일되면서 발언할 기회조차 얻어내지 못한 10대들이 있었다.

큰 무대 보단 작은 발언대를 원한다

아이들은, 이제 막 촛불을 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살려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인 진실인지를 찾아내려고 하고 있으며, 이는 6년 전 10대였던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커다란 무대'를 만들어 자칫 이들의 목소리를 빼앗아 버리는 상황을, 어른들은 또 다시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와 의견을 표현해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점점 더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을 실현시키는 것이 '발언대'다. 결국 촛불 집회에 필요한 것은 먼발치에 보이는 큰 무대가 아니라 나와 가까이 있는 '작은 발언대들'이다. 10대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 표현(실천)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작은 발언대들 말이다.

나는 어른들이 촛불 집회에서 10대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방어막'을 만들어주고, 지혜와 노하우를 조언해주는 역할을 맡아주었으면 한다. 지금 촛불 집회에서 필요한 것은 낚시를 '해주는' 어른이 아니라 낚시 방법을 먼발치에서 '보여주는' 어른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실현 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촛불문화제에 공감하고, 또 참여하게 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2002년 촛불이 처음으로 켜졌을 때처럼 말이다.

"와! 집회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