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 길목마다 촛불 꽃잎이 피어올랐다. 침묵의 함성이 불꽃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내려온 듯, 빛은 물결이 되어 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그 길에, 수 천 명의 소녀, 소년들이 수줍지만 단호한 모습으로 서로를 향해 용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촛불을 밝혀 세상을 일깨우는 목소리는 단호하지만 명랑했다. 세상의 고통을 축제로 만들어 거부할 수 없는 정치적 각성을 일깨우는 아이들의 맑은 명령!
"미친 소, 미친 교육 물러가라!, 우리는 건강하게 살고 싶다!"
어른들은 부끄럽다.
오로지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며, 성적 올려 학벌 따는 것이 제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가르쳤는데, 그렇게 순종하던 아이들의 돌연한 분노 앞에 어리둥절 쩔쩔매며 초라해졌다.
우리나라 교육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초등학교는 태어난 아이라면 다 가도록 되어 있고, 초등학교 졸업자의 99.9%가 중학교에, 중학교 졸업자의 99.7%가 고등학교에, 고등학교 졸업자의 83%가 대학교에 간다. 여기에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50%가 학원 등 사교육기관을 다닌다고 한다.
이렇게 '학생'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 소녀, 소년들은 30살이 다되도록 공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객관식 찍기 시험으로, 죽어라 문제 풀이 시간을 들여야 하는 암기식 공부에다 그 결과인 등수에 따라 '학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부해도 공부의 끝은 없는데, 한 단계의 시험이 끝나면 했던 공부는 다 소용없어지고 마는 것이, 꼭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다.
하루 12~15시간씩 공부하는 10대 청소년들이 세계 어디에 있을까? 대학을 졸업해도 백수 노릇이거나 88만원의 비정규직으로 사는 젊은이가 80%가 넘는 나라는 세계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그 공부도 모자라 2MB 정부는 더욱 미치도록 공부만 하라고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규제 지침들을 대부분 없앴다. 일명 '4.15 조치'이다. 그 규제 지침들은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 학생들을 보호해 주는 장치들이었다. 스쿨존에 울타리를 치고, 유흥업소 영업을 제한하고, 과속 방지턱을 만드는 것들과 같은 이치의 규제들이다.
고교생 대상 긴급 설문 조사(주간 교육희망)에 따르면 83.4%의 학생들이 '취소하라'고 응답했다. 새벽반, 심야반, 우열반, 명문대반 등을 만들어 비참하게 차별 당할 것이고, 학원 기업들이 학교에 들어와서 할 더 노골적인 장사에 억지 소비자 노릇을 해야 할 것이고, 더 무서운 경쟁으로 친구들을 언제든 배신해야 할 것이고, 일 년에 몇 차례씩 치러야 하는 전국 단위 일제고사와 성적 공개에 제 마음조차 갈기갈기 찢겨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 1학년에서 고교 3학년까지 무차별로 가출과 자살 충동, 각종 폭력에 내몰리는 학생들의 절규는 이제 극한점을 향하고 있다. 바로 그 소녀, 소년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미친 소'가 촉발했지만, 아마도 '미친 교육'에 대한 분노가 더 컸을 것이다.
그 날, 그들의 모습을 보며 숨죽여 울었다.
한밤중, 거대한 물결로 일렁이는 촛불 위로 무거운 분노의 침묵이 흐르고, 그 분노가 시간을 잊고 깊이깊이 아이들의 가슴으로 소용돌이치며 퍼져 나가는 모습에 감전되어 가슴 한복판에 스산한 눈물이 고여 갔다. 이미 귀가 시간이 없는, 24시간 공부로 단련되거나 거부당한 아이들이, 이렇게 스스로 자신들의 시간에 부메랑을 친 것이다.
'그날' 뿐만 아니라 그 전에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소녀, 소년들의 자발적이고 정의로운 행진에 우리 어른들은 겸허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잘못된 정책, 잘못된 정치를 속죄하고, 어떻게 바르게 살 것인지 대답해야 한다.
교육이 참 부끄러운 나날에, 우리 모두 촛불을 밝히며 나서야 한다. 교사는 교사이기에 열정과 공감으로, 부모는 부모이기에 사랑과 믿음으로, 우리 제자들 우리 자녀들과 하나 되어, 교육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의에 대항해야 한다. 아니 새로운 교육 혁명을 만들어 가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어야 한다.
스스로 제 힘으로 자라난 아이들 앞에서, 돈과 명예, 약육강식을 외쳤던 수치스러움을 내려놓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찰의 힘을 키워야 한다. 그 힘이, 모두가 함께하는 광장에서 촛불의 함성으로 일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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