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 났다. 군이 적화(赤化)되고 있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 우리 군대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부인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지난 달 28일 국군기무사령부가 국방부장관에게 전달했다는 메모지가 단 하나의 '사실'이다. 메모지에는 국군 내부의 '간첩용의자가 50여 명'이고, '좌익세력이 170여 명', '군기밀유출용의자가 50여 명', '현재 내사 중인 사람이 100여 명'이나 된다는 충격적 내용이다.
모두들 염려해서 신문과 방송의 톱기사로까지 다뤄졌다. 그런데 1일자 국방부 해명은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방첩기관에서 일상적인 방첩활동은 계속하고 있지만 최근 사안과 관련해 특별히 혐의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장병은 없다"고 잡아뗐다. 그러면서 "최근 언론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고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간첩용의자 50여 명'에 대해서는 "북한이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들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50여 명은 고정된 것으로 그때그때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그때그때 다르다. 용의자가 다른 것이 아니라, 보고가 그때그때 다르다.
1일자 브리핑은 장관에서 보고된 내용을 전면적으로 뒤집어버리는 브리핑이다. 그렇다면 장관이 화를 냈을 법도 하다. 그런데 그 내용은 빠져있다. 당장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간첩용의자'라면 상당 부분 '내사'가 진행됐을 것이다. 합법적인 미행과 감시, 혹은 감청도 있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채증작업도 있었을 것이다. 요는 '간첩용의자'가 있다면 당연히 내사 중인 사람도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방부 장관에게는 그렇다고 보고했고 국민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보고했다. 언론을 향한 브리핑은 곧 국민에 대한 보고다. 왜 장관에 대한 보고와 국민을 향한 보고가 다른가. 보안 때문인가. 아니라면 해명이 있어야 한다. 책임도 있어야 한다.
국방부 장관에 대한 보고와 언론보도와, 다시 국방부의 부인과 이에 대한 언론의 반박,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국방부의 해명이라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몇 가지 염려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군의 특수성을 이해한다. 일반 시민사회에서의 방첩활동보다 군 내부의 방첩활동이 더 폭이 넓고 더 깊고, 더한 의심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군의 특수한 입장은 방첩활동에 있어서도 특수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당연히 전제하고, 군복무 중인 장병이라면 이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수습과정에서 군이 보인 태도는 왠지 미심쩍고 턱없이 서툴러서 걱정이다.
첫째는 왜 비밀보고가 노출됐느냐다. 나아가 다른 때 같으면 군기밀이 유출됐다며 야단법석을 떨었을 텐데, 이 문제에 있어서는 왠지 조용한 편이다. 다른 때 같으면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방부와 언론은 '핑퐁게임 중'이다. 이러는 사이에 국민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긍정적 의심이라면 간첩에 대한 경계심이요, 부정적 의심이라면 군내 공안 태세에 대한 염려다. 지금 국방부의 해명에 따르면 사실이 아닌 보고에 불과했다. 진실여부를 밝히기에는 고도의 판단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진실여부를 밝히는 것 자체가 국익에 손상이 될 수도 있다. NCND가 정답일 수도 있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미 "아니다"라고 말해버렸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서 작성하고 노출됐는지를 말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버렸다.
둘째, 군이 보고한 방첩활동 용어는 우리가 쓰는 시정의 용어와 전혀 다르지 않다. 국방부가 군 간첩 수사에 있어서 국정원이나 보안경찰이 쓰는 용어와 다른 용어를 구사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간첩'이라는 단어, '용의자'라는 단어, '내사'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군은 자꾸만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50명이라는 숫자와 의미를 특정해놓고도 "북한이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를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라는 정도의 해명이다. 그래서 언론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방부가 해명할 방향은 잡히는 셈이다.
셋째, 이 문제의 확대보도가 국익에 미칠 중대한 위험성을 우리 사회가 염려해봐야 한다. 이 문제를 끝까지 파헤친다 하자. 실로 위험한 두 갈래의 상황이 예상된다. 먼저 잘못된 내용이라면, 이는 시민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우리 사회가 결국은 피해자가 된다. 얼마 전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 '군'이라고 했다. 지난 시절 군부독재의 유산을 딛고 '국민의 군대'로 거듭난 데 대한 최상의 찬사였다. 군이 이렇게 바뀌기까지는 군 스스로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의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1970년대 이후 군의 부정적 유산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으로 비쳐진다면, 이는 역사를 거스르는 우리 사회의 비극이 되고 말 것이다.
다음으로 내용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군의 방첩활동은 결정적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 '용의자'들이 당장 간첩활동을 중단할 것이다. 군 방첩기관으로서는 내사나 채증작업에 결정적 장애요인이다. 방첩활동은 결정적으로 무력화되고 만다. 수사기관의 어법대로라면 '잠수를 타고' 말 게 뻔한 이치다. 이랬을 때 우리 사회와 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예상키 어려울 정도다.
마지막으로 혹여 이번 사태의 발단에 부정적 의미의 언론플레이(?)가 있지는 않는지 염려해 봐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정치'에 해당한다. 공안의 시대에 걸맞는 '공안의 정치'다. 군이 이런 공안의 정치에 편승했다는 불신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가 군을 이용했다는 비난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어렵게 쌓아놓은 군에 대한 신뢰를 만일 정치가 훼손했다면 이것이야 말로 역사적 후퇴다.
그렇다면 이제 군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는 여야를 막론하고 의회에 충분히 해명을 해야 한다. 이미 정보위가 구성됐기 때문에 정보위에 가서 보고를 하고, 비공개로 국방위에 보고도 해야 한다. 여야 원내지도부에도 당연히 보안을 전제를 보고해야 한다. 둘째는 간첩 관련 보도를 총괄하는 언론사의 데스크에게 역시 비공개를 전제로 충분히 설명을 해야 한다. 사태의 전말은 물론 현재 군내 보안상황과 방첩상황을 성실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언론 스스로의 책임감 있는 수위조절을 통해 국민들께 알릴 수 있도록 협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일시적 해명이 아니라 '적극적 홍보'가 필요하다. '소극적 대응'은 군과 시민을 격리시키고, 시민의 불신만을 자초할 뿐이다. 도리어 일각에서는 일부 정치권이 언론보도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까지 보내고 있다.
셋째 이번 사태는 '유출'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임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소명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신뢰회복의 기초다. 군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보여주고 있는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군내 방첩활동은 한 없는 의심에 기초해야 한다. 그렇지만 밀행성과 절제가 핵심이다. 또한 정권의 성격과 무관한 일관성은 당연 전제돼야 한다. 나아가 군이 추구하는 가치의 바탕 위에 늘 시민과 함께 해야만 한다. 나라는 군이 앞장서지만 시민이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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