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권력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에 맞서 지난 1999년부터 매년 열린 '세계사회포럼'이 지난달 26일부터 일주일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시에서 개최됐다. 또다른 권력인 노동자, 민중 세력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이 자리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해 논의를 했으며, 나아가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의 확산을 도모했다.
반전운동단체인 '다함께' 운영위원 김어진씨는 5차 세계사회포럼 동안 일주일간 보고 듣고 느낀 사항을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김 위원은 "세계적 운동이 성정하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며 자본의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관철 움직임의 한 끝에는 여전히 민중 권력이 살아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김 위원은 또 좌파정권이나 좌파다운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브라질 대통령인 룰라에 대한 운동진영의 냉소와 한때 보수세력의 쿠데타로 집권위기를 맞았던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에 대한 민중운동 진영의 뜨거운 지지를 소개하며 세계적 차원의 좌파정권에 대한 양분된 운동진영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또 세계사회포럼 개최 5주년을 맞으며, 논의의 틀로 한정할 것인가 혹은 직접적 행동 결정의 장으로 거듭날 것인가에 대한 조직위의 논의를 언급하며, "다양한 운동이 마주하고 있는 하나의 적인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그 고리를 부수기 위해 우리의 힘을 어디에 집중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김어진 위원이 보내온 5차 세계사회포럼 참관기 전문이다.
비행 40시간. 지구 반바퀴를 돌아 1월 26일부터 31일까지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렸던 5차 세계사회포럼에 다녀왔다.
38도의 무더위에다 가르마도 태울 정도의 땡볕이었다. 하도 까맣게 타서 “인종이 바뀌었다”는 얘기들을 참가단의 일원들이 우스개 소리로 주고 받았다. 나흘째에는 몇몇이 탈진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서울에서 준비해 간 3월 19일-20일 국제반전행동을 알리는 포르투칼어 리플릿과 스틱커 3만 부는 금세 동이 났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KoPA, 아래로부터 세계화 참가단 등이 일본 참가자들과 함께 한일 정부의 파병과 FTA에 반대하는 한일 공동시위를 벌인 것도 아주 뜻깊었다.
***5차 세계사회포럼, 135개국 15만여명 참가...역대 최대규모**
5차 세계사회포럼은 최대 규모였다. 브라질 조직위의 최종 발표에 따르면 135개국에서 15만 5천여 명이 왔다. 개막행진에는 자그마치 20만 명이 참가했다. 2천8백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행사를 도왔다. 행사장 안에서 텐트를 치며 자신들의 행사들을 조직하기도 했던 청년캠프(Youth Forum)에는 3만 5천여 명이 참가했다.
5차 세계사회포럼은 뭄바이의 성공에 기초하려 했다. 3차 때 브라질 조직위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 곳에서 행사를 조직했다.(이 세 곳을 왔다 갔다 하느라고 참가자들은 3차 때 너무도 많은 고생을 했다!) 이번에는 Guiba강가의 평방 2km 행사장에서 모든 행사들이 이뤄졌다.
나는 이번에도 세계적 운동이 성장하고 있음을 세계사회포럼에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국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인 미국의 이라크 점령 반대는 3차 세계사회포럼 때만 해도 일부 단체들 사이에서만 주요한 과제로 제기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다양한 단체들이 반전 반제국주의 쟁점을 다뤘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는 반부시 여론은 매우 높았다. “부시는 테러리스트다”(부시 떼러리스따) 같은 구호에 많은 라틴 아메리카의 젊은이들의 호응은 너무 높았다. 개막 행진 때 이 구호가 담긴 팻말을 달라고 따로 찾아오는 이들이 꽤 많았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규모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러 운동의 장점들이 잘 결합되지 못했다. 행사들은 너무 파편적으로 조직됐다. 3차 때에 비해 행사장이 한 곳에 집중돼 있었음에도 주제 영역별로 포럼장이 나뉘어져 있다 보니 다양한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나는 주로 G와 F 영역에서 진행된 행사(군사주의에 대한 반대, 신자유주의적 지배에 반대하는 민주적 대안)에 참여했다. 자율주의 관련된 주제들이 집중됐던 A영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30분의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3천 원 정도의 택시 요금을 내고 이동해야 했다.(그래서 결국 가지 못했다!)
이것은 작년에 비해선 분명 후퇴였다. 작년에는 개막식 때 아룬다티 로이와 제레미 코빈 같은 연사들이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와 이라크 점령에 대한 저항을 호소했다. 제국주의 전쟁 반대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연결시켰다. 아름답고도 힘에 넘치는 연설은 다양한 운동에 참가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구실을 했다. 다양성은 급진적인 세계적 저항의 초점과 어우러졌다.
***"룰라 NO, 차베스 YES"**
조직위가 자체 행사만으로 이 행사를 조직한다고 발표했지만 이번의 경우에도 초점 구실을 한 행사들은 있었다. 룰라와 차베스의 연설은 전체 세계사회포럼 행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행사였다. ‘빈곤에 맞선 지구적 저항’이라는 제목의 룰라가 나온 회합에는 1만7천여 명이 참가했다. 이 회합의 주된 목적은 세계사회포럼 내에서 룰라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28일자로 발간된 세계사회포럼 조직위의 신문 1면에는 룰라의 연설 사진과 룰라의 다음의 말 ‘I Belong Here..!'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이 말은 “세계사회포럼은 이념의 전시장일 뿐”이라는 룰라의 냉소적인 은 반응과는 완전히 모순된다) 일반 참가자들이 오랫동안 줄을 서야만 연설장 기간티노에 입장할 수 있었지만 PT 당원들은 PT의 티 셔츠를 입고 연설 장소에 미리 와서 앉아 있었다.
차베스 연설에는 3만 명이 넘는 청중들이 운집했다. 룰라 연설 때보다 연령대는 훨씬 젊었다. 차베스는 마치 급진적인 젊은이들의 사회변화 열망의 상징 같았다. 젊은이들은 “개혁없는 개혁 반대”를 외쳤고 “룰라 노우, 차베스 예스”를 외쳤다. CUT 연사가 나왔을 때에는 비난의 목소리가 청중석에서 터져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은 CUT가 공무원 노동자와 은행 노동자 투쟁 때 보인 보수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차베스는 기후변화 문제에서 제국주의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사람들이 이 체제에서 고통받는 거의 모든 문제를 다뤘다고 한다. 그리고 엄청난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청중은 차베스를 연호했다고 한다.
룰라와 차베스의 연설과 청중의 반응은 급진적인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과 룰라 정부에 대해 자라나고 있는 의심이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사이에 꽤나 큰 정치적 공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급진 좌파가 막 발걸음을 막 뗀 상황인데다 일부 좌파의 경우에는 룰라에 대한 종파주의적 반대 일색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율주의 경향의 주장들이 꽤 인기를 얻을 만했다. 영국의 자율주의자 존 홀로웨이와 네그리, 그리고 마이클 하트가 연사로 나온 워크숍에는 1천여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참가했다. 나는 룰라에 대한 선진 노동자들의 의심을 공유하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운동에 끈덕지게 개입할 현명한 좌파가 브라질 내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5차 세계사회포럼은 운동의 성장을 위한 좋은 자극제였다. 다양한 경험들이 연결됐다. 반전운동 전략회의나 반전 총회 등에는 29개국의 나라에서 4백여 명에서 5백여 명이 참가했다. 그리고 3월 19일과 20일에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행동의 날을 같이 하기로 결정했다. 세계사회운동회의에서는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WTO 각료회담에 맞선 투쟁도 결의되었다. 특히 맨 마지막 날에 열린 세계사회운동회의는 그야말로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였다.
***논의의 장에서 행동의 시발점으로**
나는 생각해 본다. 이런 논의와 행동 결정들이 더 민주적으로 더 효과적으로 진행돼 많은 참가자들을 하나로 엮어 줘 거대한 화력을 발산할 수 있게 하려면? ‘세계사회포럼―새로운 정치’라는 주제의 워크숍’에서도 이 쟁점이 논의되었다.
세계사회포럼 조직자이자 세계사회포럼이 공간일 뿐 운동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치코 위태커는 “세계사회포럼은 더욱더 개방적이어야 하고 수평적이며 피라미드 구조이길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월든벨로의 반박이 내게는 더 솔깃했다. ‘개방적이어야 한다면서 논의만 하고 결정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있는가? 우리 운동은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WTO를 패퇴시킬 것인가 아닌가? 이라크 선거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IMF와 세계은행을 쓸모없는 공룡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아닌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지적은 아주 날카로웠다. “룰라와 PT가 세계사회포럼에 오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정당배제 원칙이야말로 자기모순적이지 않은가.” 마을 거지들한테 시혜를 베푸는 시장의 행렬을 떠올리게 하는 룰라의 포럼 참여가 결코 ‘수평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기억에 남는다.
세계사회포럼은 2007년에 아프리카에서 6차를 맞이하게 된다. 세계사회포럼이 다양한 운동을 서로 연결하고 더 급진전시키고 확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숙제는 단지 세계사회포럼 조직위만의 숙제는 아닐 것이다. 다양한 운동이 마주하고 있는 하나의 적인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가장 신음하고 있는 약한 고리는 무엇인가? 그 고리를 부수기 위해 우리의 화력을 어디에, 어떻게 집중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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