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정부 출연 연구 기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의 양심선언이 큰 화제가 되었다. 김 박사는 당시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으며, 그에 부합하는 결론을 요구했다", "정부의 4대강 정비 계획의 실체는 한반도 대운하" 등을 고백했다. 이런 김이태 박사의 고백을 보면서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의 많은 연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김 박사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정부 출연 연구 기관 연구자들의 한숨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의 자율성, 독립성을 크게 훼손하는 개편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최근 국무총리실에서 내놓은 정부 출연 연구 기관 개편안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연재를 마련한다. <편집자>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미국산 쇠고기, 한반도 대운하, 방송 장악 등이 큰 관심을 끌었다. 이런 대형 이슈에 가려서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은 또 다른 'MB표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흔히 '국책 연구원'이라 불리는 '정부 출연 연구 기관' 구조 개편이다.
(우리나라의 국책 연구원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과학기술계 26개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KIET) 등 경제·인문사회계 23개가 있다. 정부는 과학기술계는 앞으로 2~3년간 신중하게 검토하기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여기서는 경제·인문사회계만 언급하고자 한다).
현재 23개 국책 연구원은 총리실 감독을 받는 독립 민간 기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으로 정부 부처로부터 형식상 독립돼 있다. 김영삼 정부까지는 국책 연구원들이 관련 부처에 소속돼 직접 관리되었으나,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독립해 지금의 연구회 체제가 들어섰다.
경제·인문사회계 국책 연구원은 경제 정책, 사회 정책, 고용 정책, 복지 정책 등 국가의 주요 정책 결정과 관련된 방향 제시, 분석·평가, 개선 방안 제안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연구원이 정권, 부처의 입장과 무관하게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성, 자율성 확보가 꼭 필요하다.
이 때문에 민간 싱크탱크가 큰 역할을 하는 미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는 공공 연구 기관을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연구회가 관리하고 있다. 일본도 2000년대 들어 많은 공공 연구 기관을 독립행정법인으로 독립시키고 있는 추세다. 한국의 연구회 체제도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연구회 체제 하에서도 국책 연구원의 실질적 독립성은 확보되지 못했다. 많은 원인이 있지만 몇 가지만 꼽아보자. 우선 연구회 이사회에 정부 부처 차관이 절반이나 되어, 이사회 자체가 정부 부처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예산도 연구원이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절반이 좀 넘을 뿐, 나머지는 각 부처가 연구용역을 통해 배분한다.
이러한 '형식적 독립성'은 정부로 하여금 연구자의 '생각'마저 장악하게 했다. 몇 가지 알려진 사실만 간단히 정리해 보자. 약 2년 전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데이터를 왜곡해 한미 FTA의 효과를 부풀려서 큰 논란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조세연구원은 "법인세 인하가 투자 및 성장에 큰 효과가 없다"던 2004년 연구와는 달리 "효과가 크다"는 연구를 내놓아 정부의 감세 정책에 근거를 제공했다. 또 2006년에 국토연구원을 비롯한 5개 연구원은 새만금 간척지 용도를 "농지 70%, 개발용지 30%"로 결론 냈으나, 이명박 정부 하에서 그 비율이 30:70으로 변경되었다.
지난 촛불 정국에서 한 연구원이 "건설기술연구원을 포함한 5개 연구원이 이전에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을 낸 대운하를 놓고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전제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양심선언을 해 국책 연구원의 현주소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한국의 국책 연구원은 여전히 '관변 연구소', '지식 시녀'라는 비아냥거림이 유효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정권 차원의 국책 연구원 장악 기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봄 임기 중인 공공기관장의 강제 퇴출 을 꾀해 11명의 연구원장을 강제 퇴직시키고, 그 자리에 대부분 선거 캠프나 인수위원회 참여 인사를 임명했다. 그런데 이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지난 10월 초, 경제·인문사회연구회를 감독하는 국무총리실은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의 연구용역에서 제시된 6가지 개편 방안을 근거로 연말까지 국책 연구원 개편을 완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비록 방안은 6가지나 되지만, 총리실은 이미 한 가지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가의 장기 발전 전략을 연구하는 '국가전략연구원'을 설치하고, 나머지 연구원은 10개~16개로 통·폐합하여 유관 정부 부처로 환원시킨다는 방안이다. 이 방안대로라면 10년 전 국책 연구원의 독립을 지향하여 설치된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해체된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철학이 국책 연구원에도 적용된 것인가?
이러한 개편을 놓고 총리실은 많은 근거를 대지만 하나같이 설득력이 없다. 총리실이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가 현재 국책 연구원이 '장기 발전 전략'을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장기 발전 전략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모호하지만, 장기 발전 전략은 '국가전략연구원'이라는 이름의 연구 기관만 연구할 수 있나?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선진국은 이런 이름의 연구 기관이 없는데도 어떻게 세계 발전을 주도하고 있을까? 혹시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와 같은 정권 차원의 정책에 관한 연구를 직접 통제하려고 국가전략연구원을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실제로 총리실이 내세우는 다른 이유를 살펴보면 이런 의혹이 상당히 근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총리실은 "현재의 국책 연구원이 '정부로부터 너무 독립돼 있다'"며 이런 개편 방안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한 마디로 "정부에서 돈을 대는데, 정부 정책과 어긋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도 되느냐"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고위 관료의 인식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아직 민주화는 요원하다는 탄식만 내놓을 밖에….
이밖에도 이번 개편 방안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애초 이런 개편 방안을 마련하는 연구 용역을 수행한 한반도선진화재단을 둘러싼 문제점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곳의 박세일 이사장은 2003년, 2006년에 이미 국가전략연구원과 부처 내(In-house) 싱크탱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더구나 현재 청와대에서 이 문제를 담당하는 국정기획수석과 연구용역 책임자인 외국어대학교 모 교수는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박세일 이사장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이런 정황을 놓고 보면, 이번 개편 방안은 애초부터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와 같은 국책 연구원 개편이 강행된다면, 정권이나 부처의 입맛에 맞는 연구가 양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반면에 국민을 위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연구의 여지는 그만큼 줄어들 공산이 크다. 사실 이런 문제는 국민의 생활에 직접 와 닿지 않아서 정부 뜻대로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정부 말만 되뇌는 연구가 양산되고, 그 결과 잘못된 국가 정책이 수립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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