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고작 따라한다는 게 중국 사회과학연구원이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고작 따라한다는 게 중국 사회과학연구원이냐"

[기고] 정부 연구소는 더 중립적이어야 한다

지난 5월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정부 출연 연구 기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의 양심선언이 큰 화제가 되었다. 김 박사는 당시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으며, 그에 부합하는 결론을 요구했다", "정부의 4대강 정비 계획의 실체는 한반도 대운하" 등을 고백했다.

이런 김이태 박사의 고백을 보면서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의 많은 연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김 박사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정부 출연 연구 기관 연구자들의 한숨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의 자율성, 독립성을 크게 훼손하는 개편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최근 국무총리실에서 내놓은 정부 출연 연구 기관 개편안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연재를 마련한다. <편집자>

① "이제 MB氏 생각대로 다 하려고?"
② "정부 돈 쓰는 주제에? 이러니 노벨상이 없지!"

중국 사회과학연구원이 한국 국책 연구기관의 모델?

지난 10월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정부 출연 연구기관 운영 개편 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발주 용역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후 국정 감사에서 몇몇 의원의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면서 인문사회 계열 국책 연구기관의 개편을 둘러 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이 보고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의 국책 연구기관들의 현황과 특징을 정리한 후, △국책 연구기관들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21세기 환경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과 국가 전략 목표의 제시 능력이 부족하며 △각 정부 부처가 요구하는 구체적 정책 수요에도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체제가 아닌 대규모 종합연구원 설립―'미래정책연구원 체제' 또는 '국가전략연구원+부처별 정책 연구원 체제'―을 주요 대안으로 제시하며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연구기관과 연구자의 '독립성' 확보를 놓고는 명확한 인식과 뚜렷한 해결책을 담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나 주요 부처의 정책 수요에 효과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국책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만이 주로 반영된 결론인 것이다. 물론 그러한 주장 자체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행여 국책 연구기관의 진실 왜곡, 밀어 붙이기, 땜질식 결과물, 정권 홍보용 연구물 생산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이는 연구기관은 물론 연구원 개인의 존재 근거를 심각히 위협하는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은 대통령이나 개별 정부 부처 휘하의 부속물이 아니라 국민 공동의 자산이다. 따라서 공정하고 수준 높은 연구 성과가 도출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권력의 자의적 개입이나 부당한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실제로 연구 보고서 전반부의 외국 사례 부분은 모두 이를 강조하고 있다. 오직 중국의 경우만이 '독립성'에 대한 강조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보고서의 연구진이 가장 주목한 것은 중국 사회과학원 모델이었다는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 연구기관으로서의 '평판'

그렇다면 과연 해외 싱크탱크에 있어서 '독립성'이라는 가치는 얼마나 강조되며,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 한반도선진화재단도 가장 먼저 살피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현재 미국에는 1500~1600개에 달하는 싱크탱크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약 300여 개가 워싱턴 D.C.에 모여 뜨거운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 시내 곳곳에서 미국과 세계의 각종 현안에 대한 보고서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오고 있고, 날마다 수많은 세미나가 곳곳에서 열리는 '정책 경쟁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미국 싱크탱크 대부분은 세법 501(c)(3)의 적용을 받는 비영리기관이다. 따라서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서 '비당파성'은 반드시 표명되어야 할 원칙이다. 그리고 연구기관으로서의 '평판'을 위해서도 그 원칙은 다시 강조된다. 하지만 누구도 미국 싱크탱크들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대적으로 중립적이고 학술적인 성격의 싱크탱크들도 존재하지만, 민주당/공화당 계열, 진보적ㆍ자유주의적/보수적 싱크탱크들의 구분이 뚜렷하다. 예를 들어, 레이건 행정부 이후 지금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헤리티지재단이나 부시 행정부에 수십 명에 달하는 연구원을 진출시켰던 '네오콘의 아성' 미국기업연구소의 보고서는, 브루킹스연구소의 그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오바마의 당선을 전후하여 국내 언론에도 자주 인용되고 있는 미국진보센터(CAP)는 아예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을 내걸고 출범한 곳으로, 미국 민주당과 진보세력의 정책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선전'하는 최전선에 서 있는 민주당, 그리고 진보 계열의 싱크탱크임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싱크탱크도 자신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정부나 특정 정당, 기업에 '종속'되거나 연구 결과가 그것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치열한 정책 경쟁 시장에서 '독립적'인 연구기관으로서의 '평판'이 모든 것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곳은 정부 입장만 대변하는 곳이야"라거나 "거긴 대기업의 앵무새야"라는 평가가 내려지면, 싱크탱크로서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혹자는 "미국 싱크탱크들은 한국의 국책 연구소들과 달리 모두 자력갱생 하는 곳들이니, 당연히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처럼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곳이라면 상황이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미국의 경우,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는 일종의 '국책' 연구기관이라면, 오히려 더욱 그것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중시되고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전략 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에 더욱 '독립적'이어야"

비록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미국에도 한국의 국책 연구기관과 거의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싱크탱크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연방기금연구개발센터(Federally Funded Research and Development Center·FFRDC)라 불리는데, 국방부, 재무부, 국토안전부, 미국과학재단 등 9개 부처 산하에 수십 개에 달하는 싱크탱크들이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랜드사(RAND)는 공군과 육군, 해군분석센터(CNA)는 해군, 국방분석연구소(IDA)는 국방부 장관실과 국가안보회의 소관이라는 식이다. 이들 모두 미국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미국의 중장기 국가 전략과 단기 정책 사안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국책'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곳들이다.

미국 국방분석연구소 오공단 박사는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도 국방부나 연방정부기관이 자신들에 유리한 연구 결과를 기대하는 경우가 있긴 있다. 하지만 각 연구기관은 그러한 요구를 결코 수용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때로 예산이 줄고 '찬밥 신세'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지켜냄으로써 연구소가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한 밖으로부터의 외압에서 연구소를 지켜 내는 것이 원장과 이사회의 몫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기관들은 국가 전략을 다루는 곳들이기 때문에 연방정부의 연구 기금만으로 운영되며, 의회가 매년 연구기관의 예산 상한선을 책정하여 '영리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원에 대한 충분한 대우를 전제로, 가장 '공정'하고 '독립'적인 연구가 수행될 수 있도록 연구원 안팎의 적극적 노력이 병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정부가 전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국가 전략의 수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연구기관의 '독립성'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재정 지원자의 이해에 반(反)하는 연구 결과도 낼 수 있어야"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체제가 모델로 삼았다는 독일의 경우는 어떠한가? 독일은 막스플랑크협회, 헬름홀츠협회, 라이프니츠협회, 프라운호프협회 등 네 개의 대규모 연구협회들이 '비대학 연구기관'을 관할하고 있다. 이들 연구협회들은 각각 연방 또는 주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지만, 그들 모두 최대한 '자율적 학술 연구'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예컨대 막스플랑크협회의 경우, 독일 전역 79개 연구기관들로 구성되어 있고, 고용된 연구진만 4700명에 달하고 연간 지출이 17억 유로(2008년 현재)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이며, 연방과 주 정부가 전체 예산의 약 82%를 제공하고, 나머지는 용역 등을 통해 확보되고 있다. 그러나 연구협회에 속한 각각의 연구소들은 순수 학술 연구기관이자 독립적 연구기관으로서의 지위를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 막스플랑크연구협회의 경우, 연구회 평의회 소속 위원 가운데 10% 정도만이 연방 및 주 정부 대표들로 협회 운영에 대한 발언권을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막스플랑크연구협회 소속의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MPIfG)의 경우, 연구주제의 선정 자체가 연구자 개인에 의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제3자의 개입은 일체 불가하다. 예컨대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 연구원을 직접 경험했던 한 연구자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연구소 소장은 소속 연구원들에 대해 "재정 지원 제공자의 이해에 반(反)하는 연구 결과를 내 올 수도 있을 정도의 자율성"을 항상 강조한다고 한다.

(한편 독일의 경우, 이러한 연구협회 소속 공공 연구기관들과 달리, 국가의 지원을 받는 정당 연계의 싱크탱크들이 별도로 존재한다. 사민당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녹색당의 하인리히 뵐 재단, 기민당 콘라드 아데나워재단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각 정당이 지향하는 이념에 입각하여 정책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연구협회 소속 연구기관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은 '국민 공동의 자산'

이처럼 한국과 완전히 다른 체제를 갖춘 미국이나, 한국이 그것을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 모두 연구기관과 연구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가장 기본으로 삼고 있다. 설령 정부가 전적으로 재정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연구 결과의 도출―독일의 경우 연구주제의 선택에까지―에 일체의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정부와 연구기관, 연구자, 나아가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있고, 또 그것이 가능하도록 협조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의 정부 출연 연구기관(또는 국책 연구소)에 대한 개편 방안은,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고민에 대한 충분한 해법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 결과물은 청와대나 관계 부처의 소유물이 아니라, 온 국민 공동의 자산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저 연구기관 구성원들을 지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보다 수준 높고 시의적절한 연구 성과의 도출을 위해서는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책 연구기관 개편 방안은, 연구 주제의 선정과 그 결과, 그것의 적용, 사용 예산 및 연구진의 적절성 등에 대한 국민적 감시와 공감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방안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책 연구기관을 뒤흔들어 '논공행상'을 벌이려는 행태나, 정권의 필요에 길들이는 '작업' 이상의 의미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권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착각'을 하지 않는다면, 국책 연구기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재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