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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스트우드 영감님, 안녕하세요

[띠동갑 여자둘의 난상수다]<5>세상을 걱정하는 따뜻한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S : <체인질링>을 보고 나니까 몸에 힘이 쫙 빠지네요.

N : 단순히 모성만을 테마로 한 영화가 아닐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정말 중간부터 깜짝 놀랐어요.

S : 항상 느끼는 거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는 음악이 절제되어 있다는 점이 좋아요. 감정의 밀도가 극한에 다다랐을 때도 관객을 압박하는 일 없이 온전히 그 상황을 받아들일 여유를 주죠. 따지고 보면 그게 더 압박이지만.

N : 메인 테마 하나만 가끔 나왔다가 사라지는 정도죠. 음악도 감독 본인이 작곡하시고, 아들이 좀 손보고.... 참, 대단한 사람이라니까요.

▲ 체인질링

S : 안젤리나 졸리는 어떠셨어요?

N : 너무 말랐어요!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 앙상한지 눈하고 입술밖에 안 보이잖아요. 웬 해골바가지 얼굴인가 했다니까요. 화장은 일부러 그렇게 한 건가?

S : 빨간 입술에 다크서클이 너무 강조된 메이크업이라 무서웠어요.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발목은 또 어찌나 가늘던지. 금방이라도 휘청거릴 것 같아서 잡아주고 싶을 정도더군요.

N : 왕년의 섹시한 여전사가 이제는 이런 영화에서 이런 내면적인 연기를 탁월하게 펼치고 있어요. 참 신기하죠?

S : 재작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마이티 하트>는 졸리가 파키스탄에서 실종된 기자 남편을 구하려고 애쓰는 내용이었죠. 여전히 <원티드>의 누님 역할도 어울리지만, 이런 변화는 졸리의 실제 삶과도 맞물리는 것 같아요.

N : 하긴, 요즘의 졸리는 배우보다는 난민들과 고아들을 돕는 자선가로 더 빛나는 것 같으니 말이죠. 진정한 의미의 여신이 됐어요.브래드 피트도 아마 졸리의 카리스마에 반해서 '존경하는 누님!' 이러면서 살고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빌리 밥 손튼과 사귀던 시절만 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항아였는데. 그나저나 <마이티 하트>는 한국에서 왜 개봉을 안 하고 있는지 원.

세상을 걱정하는 따뜻한 보수주의자

N : 흠, 그럼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그게 오늘의 주제였죠?

S : 근데 사실 전 할 말이 별로 없는데. 제가 소위 말하는 그 '얼팬'이라서요.

N : 아니, 그게 뭐예요?

S : 얼굴만 좋아하는 팬이요. 영감님은 어쩌면 그렇게 젊으셨을 때도 훈남이시고 늙으신 지금도 미노년이신지.... 제가 영화는 다 안 찾아볼지언정 아카데미 시상식은 챙겨본다니까요.

N : 푸하하. S씨가 작년에 세르지오 레오네 회고전이 열렸을 때 젊은 시절의 이스트우드의 영화들을 보고 열광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저도 그때 필름으로 <황야의 무법자>를 보면서 서부의 무법자 영웅이 그냥 터프하기만 한 게 아니라 팬시한 매력도 있어서 놀랐어요.

S : 아무리 폼을 잡아도 귀엽고 예쁘잖아요.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블론디는 제 인생 최고의 꽃미남 리스트에서도 '순위권'이라고요.

N : 저도 동감. 어쨌든 그래도 <아버지의 깃발>은 보셨죠?

S : 네. 좋은 영화더군요. 전쟁영화인 척하는 소박하고 우직한 휴먼 드라마라서 부담없이 봤어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치고는 보기 쉬운 영화더라고요.

▲ 아버지의 깃발

N : 저는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했어요. 죽어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더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잖아요. 보면서, 아니, 당신처럼 좋은 아빠가 어디 있다고 그래! 하고 외치고 싶었어요.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훌륭한 아빠인 거잖아요. 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바로 그런 아버지의 마인드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의 영화에서는 후세대들을 무척 걱정하는 노인장의 따뜻한 염려가 보여요. 이런 사람이 보수주의자라니, 한국에 오면 당장 빨갱이로 몰릴 사람인데!

S : <아버지의 깃발>을 보니까 보수주의자라고 절대 말 못하겠던데요. 이 영화는 완전히 반전영화잖아요. 전쟁영웅들도 '나라를 위해 싸운 영웅'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죽어간 이들이라고 못박고 있고요. 영웅들은 나약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고, 국가는 그런 공포를 조장하면서 애먼 사람을 영웅으로 포장해 돈이나 모금시키는 존재죠.

N : 맞아요. 오히려 전쟁영웅의 신화를 부수고 있는 영화죠. 그렇게 신화화해서도 안 된다고 말을 할 뿐만 아니라, 전쟁이 그렇게 '젊은이들의 목숨값'으로 치러지는 거라는 걸 새삼 환기시키는 영화기도 하고요. 소위 '국민감정' 때문에 그 영화의 반쪽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건 아주 유감스러운 일이었어요.

S : 그게 정말 국민감정 때문이었다고요?

N : S씨는 기억 안 나시나? 그때 일본인 여자아이를 전쟁피해자로 다룬 책이 미국의 어느 주에서 교과서로 뽑혔다고 해서 또 엄청 시끄러웠을 때였잖아요. 한국에선 아무래도 일본을 또다른 전쟁 피해자로 다루는 게 거부감을 일으키기 쉽죠. 아무리 그 나라가 원폭까지 맞았다 해도요.

연약한 여인들의 영원한 오빠

N :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그야말로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죠. 처음엔 여자가 권투를 한다는 걸 못마땅해 해도, 일단 받아들인 뒤엔 아주 헌신적이에요. 게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손으로 그 딸을 안락사시키죠. 보수주의자로선 생각도 못할 행동이에요.

S : 생각해보니까 그러네요. 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보수주의를 내용보다는 형식에서 많이 느껴요. 아까 언급한 절약적인 음악 사용도 그렇지만, 클로즈업이나 다른 기교를 잘 쓰지 않고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조금은 건조하게 이야기를 전달하잖아요? 그러면서도 대상을 차분히 관찰하는 애정이 느껴지고요. 냉정한 듯해도 속은 따뜻한 도시남자.... 가 아니라 더러운 세상을 가감없이 포용하는 노인의 시선이 보여요.

▲ 밀리언 달러 베이비

N : 그래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확실히 가부장적인 마초인 건 사실이에요. 다만 이상적인 가부장, 착한 마초죠. <체인질링>에서도 그렇지만, 주인공인 크리스틴을 적극적으로 돕는 든든한 남자들을 보면 이스트우드가 "남자라면 이래야지"라고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일단 정말 못돼먹은 남자들을 보여주고, 그리고 그녀를 돕는 착한 남자들을 보여주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착한 남자들의 '오빠 페미니스트'적인 면모도 함께 까발린단 건데...

S : 어휴, 요즘 대학생인 제가 이해하기 힘든 어휘 좀 쓰지 마세요. 대체 '오빠 페미니스트'가 뭐예요?

N :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 여자들에게 자신이 페미니즘을 가르치려 들고, 심지어 페미니스트에게도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이러면서 가르치려는 남자. 나아가선 여자들의 편인 척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여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남자죠. 달리 '오빠'란 말이 붙는 게 아니지 않겠어요?

S : 흠, 그런데 왜 그 사람들이 오빠 페미니스트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N : 크리스틴을 돕는 남자들 역시 존스 반장과는 또다른 방향으로 여전히 크리스틴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잖아요. 그들의 선의는 충분히 고맙고 정의롭지만, 크리스틴은 아이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그토록 확신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그 믿음을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도피적인 태도로만 여겨요. 재판 장면에서도 그녀의 믿음과 달리 변호사는 굉장히 강경한 어투로 아이가 죽었다고 선언하잖아요. 뭐랄까, 이거야말로 소위 '안티고네의 재판'이랄까. 그 장면에서 크리스틴의 얼굴 클로즈업이 반복해서 삽입되는데, 표정이 상당히 묘해요. 난 이스트우드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그걸 넣은 것 같진 않아요.

S : 그래도 존스 반장과 그 일당만 하겠어요? 애 키가 4인치나 작다는데도 스트레스 때문에 키가 줄어들었을 거라고 말하는 놈들인데. 4인치면 거의 10센티잖아요. 정말 사람 말을 안 듣는 인간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 체인질링

N : 그런데 크리스틴은 상당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죠. 존스 반장에게 큰 소리를 냈다가 이내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며 사과하기도 하고. 큰소리를 내질 못하는 우아한 사람이죠. 외모에서부터 항상 모자를 눌러 쓰고 옷깃을 여미고 조심조심 걸어요. 덕분에 어깨가 상당히 왜소하게 보이죠.

S : 남자가 지켜주고 싶은 여자의 이미지인 건가요?

N : 그렇죠. 물론 그래서 후반부에 그녀의 투쟁이 더욱 강조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여자란 누군가가 '지켜 주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그런 보호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 같아요. 근데 이게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굉장히 믿음이 간단 말이죠. 뭐랄까, 더 강한 자신이 약자를 지키고 보호하며 배려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거든요.

S : 흠, 페미니스트인 N씨한테서 듣기엔 참 묘한 말이네요.

N : 여자들이 뭘 하겠다고 '나대면' 일단은 탐탁치 않아하면서도 결국 아버지의 입장에서 다 받아주고 헌신적으로 지지해주고, 그럴 것 같지 않아요? 그래,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라, 하면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딱 그랬잖아요.

S : 그래서 이스트우드 식 마초주의에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거겠죠. <체인질링>의 마지막에서도 딸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그런 따뜻함이 느껴지고 말이죠. 근데 정말 이 할아버지 영화에서는 '남자'의 존재가 없다면 여자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구나 싶네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도 매춘부들이 결국 스스로는 단죄를 하지 못하고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체인질링>의 크리스틴도 싱글맘이라는 입장이잖아요? 외부의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남편이 없는 여자들의 약한 입지가 그대로 드러나요.

N : 애초에 크리스틴이 싱글맘이 아니었다면 아이가 실종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애가 실종되었다고 해도 아버지가 가서 경찰에게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면 조금 양상이 달랐겠죠. 이스트우드에게 있어서는 안전한 '가족'은 남자인 가장이 있음으로 해서 완성되는 것 같기도 해요.

S : 하긴, <미스틱 리버>에서도 아내와 남편의 절대적인 신뢰 관계 속에서 가장이 가족의 짐을 모두 지고 위험 요소를 제거하죠. 그 영화의 결말은 좀 섬뜩했어요.

무법자의 정의에서 공권력의 정의로

N : 공권력이 부패하고 제기능을 못 하면 결국 사회의 약자인 여자들과 아이들이 고통을 당하기 마련이에요. <체인질링>을 보면서 감독이 공권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실종된 아이를 찾는 건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 문제인데 그것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잖아요? 근처에서 대규모의 연쇄 살인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도 전혀 모르고 있고. 공공서비스를 당당히 요구할 수가 없는 시대죠. 일이 잘못됐다고 아무리 계속 이야기해도 말도 안 통하고, 급기야는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처넣다니요.

S : 전 가장 부패했던 시기의 LA 경찰이 이 정도였을 줄 몰랐어요. 정신병원 장면을 보면서는 정말 이게 20세기에 있었던 일인가 싶더라고요.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핑거스미스>가 생각났을 정도니까요.

N : 1930년대만 해도 전기충격이란 게 치료랍시고 횡행하던 때긴 해요. 하지만 21세기의 우리들에겐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죠. 게다가 이 영화는 실화잖아요.

S : 한편으로는 <용서받지 못한 자>나 <미스틱 리버>에서 보이듯 국가를 배제하다시피 했던 무법자적인 정의가 <아버지의 깃발>과 <체인질링>에 와서는 좀더 확실한 메시지로 바뀐 것 같아요. 내가 나설 필요 없게 나라 좀 제대로 운영해라, 뭐 이런 식의.

N : 이스트우드같은 가부장 마초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야말로 국민들 모두의 가부장이 아니겠어요? 이상적인 가부장을 지향하는 그로서는 국가가 나쁜 마초, 나쁜 가부장으로 구는 게 못마땅할 수밖에 없겠죠. 그럼 이제 정리해 볼까요? S씨는 뭐 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

S : 얼굴 팬이 얼굴 찬양도 못 하고 끝나다니 아쉬운 맘을 금할 길이 없군요.

N : 하하하. 전 <그랜 토리노>가 빨리 개봉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안 하면 정말 실망인데.

S : 영감님이 기운도 좋지, 영화도 참 많이 만드세요. 돌아가시면 정말 섭섭하겠어요.

N : 으악, 그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정정하게 계속 좋은 영화 많이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S : 어휴, 하야오 때도 그렇고 그렇게 아쉬운 게 많으셔서 어떡해요? 전 다가오는 아카데미 시상식도 닥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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