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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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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할 때"

<기고> 자유주의 관점에서 본 강정구 교수 문제

최근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 대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신봉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에 의한 무차별적인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그들이 천 장관을 비판하는 것은 그에게 보장되어 있는 법적 권한을 특별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권한을 강정구 교수 사안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 교수를 처벌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구속수사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글의 목적은 자유주의를 전공하고 있는 학자로서 그런 생각이 과연 '자유주의적'인 것인지 따져보는 데에 있다.

***'양심의 자유' 문제**

강정구 교수의 문제는 우선적으로 양심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로 볼 수 있다. 역사나 세계를 비롯하여 윤리나 종교적 문제에 대한 어떤 사람의 생각이 정통적인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처벌하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심각한 제약의 대표적인 예로는 서양의 중세 때 이단이나 이교도들을 처벌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은 서양에서 자유주의 사상이 발생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으로 종교개혁을 드는데, 그 사건 이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말살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그에 대한 타협안으로 양심의 자유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을 근거로 해서 자유주의 사상이 성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처럼 양심의 자유는 자유주의의 발생과 직결된 자유로서 자유주의가 보장하는 기본적 자유들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자유에 속한다.

물론 어떤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유를 무한정하게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유가 보장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제한이 지나쳐서는 안 되는데, 그에 대한 자유주의적 기준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다. 어떤 생각이든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설사 그런 생각이 이교도는 모두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적인 위험이 없는 한 허용해야 한다.

만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 관점에서 강 교수를 처벌해야 한다면 강 교수가 그의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경험적인 근거가 제시돼야 할 것이다.

***'사상의 자유' 문제**

만일 강정구 교수의 글이 우리의 헌법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이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혁명적 방법 이외에는 없다는 생각에서 혁명을 선동하고 있다면(강 교수의 글을 그렇게 읽을 수는 없지만), 그의 문제는 사상의 자유의 문제가 된다.

자유주의자들은 사상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해서 논의해 왔는데,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정치적 사상이 어떤 것이든 그것을 출판물을 통해 발표했다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확정된 결론으로 간주된다.

사상의 자유가 문제되는 경우는 어떤 사람이 대중연설 같은 것을 통해 선동을 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불법적인 행위를 하게 하는 경우인데, 그런 불법적인 행위가 벌어질 수 있는 "위험이 분명하고 현재하고 있음(clear and present danger)"이 그 사람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기준 또한 애매한 점이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기술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는데, 자유주의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여기에서 문제되는 위험을 '헌법적 위기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위험'으로 규정했다.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것인데, 그것은 자유주의 자신이 위기에 빠졌을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 관점에서 강 교수를 처벌한다면 강정구 교수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우리나라에 심각한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거나 헌법적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야 하며, 설사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강 교수는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발표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법치'의 문제**

강 교수의 문제는 법치의 문제와도 걸려 있는 문제다. 자유주의는 법치의 원칙을 확고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법에 복종해야 할 의무를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어떤 법이 부정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법을 어기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다면 법치의 체계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비록 정당하지 않은 법이라 하더라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정한 법에 언제나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민불복종 행위를 용인하는 것이 법의 안정성을 위해서나, 법치 자체의 원칙에 의해서 요구된다고 보는 것이 현대의 대표적 자유주의 철학자인 롤스나 드워킨(Ronald Dworkin)이 갖고 있는 견해다.

그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는 논란이 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떤 법이 특정한 소수파 사람들의 자유를 심각하게 지속적으로 훼손하는 경우에는 시민불복종의 정당성이 있다고 인정된다.

그런데 지금 강정구 교수를 처벌하기 위해 적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에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폐지 문제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정치권에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어떤 실정법이 전혀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집행하지 못할 이유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하물며 문제가 되고 있는 법을 적용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천정배 장관의 지시는 법을 적용하지 말라는 지시는 아니었으며, 실정법에 대한 존중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신중함에 대한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정통성'과 '정체성'의 문제**

강 교수의 글이 비록 분명하고 현존하는 헌법적 위기를 야기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런 것을 허용할 경우 종국에는 헌법적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지금 정체성 문제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우려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강 교수가 논문에서 제기한 것은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통성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강 교수는 문제되는 글을 통해 우리나라의 헌법을 부정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헌법을 기초한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우리가 부여했던 것과 같은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비록 정통성의 문제와 정체성의 문제가 구분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정통성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가에 따라 정체성 문제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통성의 문제를 다룰 때에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그런 정통성의 문제가 마치 종교의 핵심 교리처럼 논의가 금기시되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헌법의 근간을 초안했던 사람들의 정통성에 대해 어떤 결론에 이르더라도 우리 헌법의 정체성의 위기까지 오지는 않을 정도로 헌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두텁고 적합한 승인의 과정도 거쳤다.

더욱이 다수의 사람들이 역사적 문제에 있어서도 강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를 억압하는 것은 정체성의 위기에 근거하더라도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정당성이 없어 보인다.

***강 교수의 견해는 자유주의에 해로운가?**

자유주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존 스튜어트 밀은 언론의 자유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어떤 견해가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 견해의 근거들과 함께 이해하고 있을 때만 진정한 진리가 될 수 있으며, 수학이나 물리학적 지식 이외의 다른 지식들, 특히 윤리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견해는 반대 의견에 대한 대응을 통해서만 진정한 진리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교리가 통념이 되어 그에 대한 반대 견해가 없고 그런 상황이 지속될 때는 그 진리는 죽은 도그마(dead dogma)로 변질될 가능성이 많은데(마치 예수의 말이 그렇게 된 것처럼), 그 진리를 살아있는 진리(living truth)로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그 견해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대 견해를 그것의 근거들과 함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보았다.

반대자가 없을 경우에는 그 견해를 위해 마치 가톨릭 교회에서 악마의 변호인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런 반대자를 인위적이라도 만들어낼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경우에는 오히려 정통 견해를 위해서도 그 사람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번 강 교수의 글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신념에 대해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는 글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런 도전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전통적인 견해가 옳다면 강 교수 덕분에 죽은 도그마였던 전통적 견해가 살아 있는 진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만일 강 교수의 견해가 옳거나 적어도 옳은 측면이 있어서 논의를 통해서 그것이 밝혀질 수 있다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허위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더욱더 견고한 바탕 위에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사회의 안정성은 플라톤의 고매한 거짓처럼 일반 국민에 대한 사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충분한 정보를 갖춘 사람들의 자발적인 합의와 그들의 정의감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강 교수의 견해가 널리 퍼지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강 교수의 견해에 기울지 않도록 더욱더 설득력이 있는 글을 만드는 일이지 물리력으로 강 교수의 입을 봉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지금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잠정적으로 자유주의를 유보해야 할 정도로 그렇게 긴급한 위기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과거에는 체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해도 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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