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날 창립식을 지켜보는 지혜학교 김창수 교장의 감회는 남달랐다. 오랜 기간 지혜학교를 구상하고 준비해온 그였다. 그가 지혜학교 창립식을 지켜보며 느낀 감정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다음은 그의 글 전문이다
지난 6월 13일 오후 2시에서 6시 까지. 빛고을 광주, '5.18기념문화관'에서 400여 명이 모여 '지혜학교'를 공동 출산하였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광주는 물론이고 서울과 경주 등 각처에서 온 많은 이들이 '지혜학교'라는 철학의 나무에 맑고 밝은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한 자리에 있지는 못 했지만 같은 꿈을 꾸는 많은 사람들은 마음과 뜻을 보탰다.
지혜학교가 탄생하는 그 날 그 자리에서 나는 문득 과학기술자와 지식인 언저리를 구성하고 있는 '창조적 룸펜'들이 미래 혁명의 주인공이 될 거라는 허접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흔한 선출직 명함을 가진 사람 하나 없어도, 변변한 기업인 하나 참석하지 않아도 뭔가 꽉 찬 느낌을 가진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 ▲ 13일 창립기념식에 참여한 시민이 쓴 메모. ⓒ프레시안 |
빠까뻔쩍한 사람 하나 없다는 말이 오히려 기뻤던 것은 오기일까?
학계에서 변변한 자리를 잡지 못한 학자들, 종교계에서 변방을 전전하는 성직자들, 교육계에서 학교 관리자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선생들, 심지어 운동권에서조차 주류가 아닌 활동가들, 주류사회에 편입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으려는 시민들, 그리고 그리고….
"비까번쩍한 사람 하나가 없구만!" 참가자 중 한 사람의 말이 오히려 기뻤던 것은 무슨 오기 같은 것이었을까?
내게는 정해숙(전 전교조위원장)선생님이 태산처럼 높은 분이고, 김현(전 성지고 교장)교무님이 바다처럼 넓은 분이고, 심중식(유영모-김흥호-심중식으로 학맥을 잇고 있다.) 선생님이 심해처럼 깊은 분으로 생각이 되는데, 내게는 유정길(에코붓다대표)법사님의 무아적 삶이 커 보이고, 한면희 교수님의 지혜가 따라가기가 벅차고, 임승룡 광주한살림 이사장님의 맑은 삶이 시원한데, 김종근 선생님의 헌신성이 감동적인데…. 그리고 윤난실님의 의를 향한 결기와 실천이 나를 부끄럽게 하는데….
지혜학교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외인부대', 혹은 '야매 인간들'이라고 부른다. 네이버에서는 '야매'라는 말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일을 할 때 쓰이는 말이다" 라고 적고 있다. 어쩌다 보니 지혜학교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광주·전남 출신이 아니거나, 광주·전남 출신이라 할지라도 외지를 떠돌다 귀향한 사람들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광주·전남에서도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 뭔가를 도모해보려고 하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광주·전남에서 나고 자라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들 면모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나는 '야매'라는 말을 참 좋아 한다. 합법과 반합법 사이의 중간지대이기도 하거니와, 혹은 그 어느 쪽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꾸는 꿈의 방향은 반합법에서 합법으로의 진보이다. 그리고 그것의 나선형적 순환이다.
인간 중심의 자연지배주의적 세계관에 기반 한 기존의 질서는 새로운 세계를 절대로 담아낼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는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출현할 수밖에 없다. 문명의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철학이다.
| ▲13일 열린 지혜학교 창립기념식에는 4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혜학교 제공 |
소유에서 만족과 불만족을 찾는 차원을 넘어서자는 것이 지혜학교의 지향점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나 집단은 입자적 사고, 즉 기득권 옹호적 사고, 현실 안주적 사고를 한다. 그러나 가진 것이 별로 없거나 가지는 것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은 파동적 사고를 즐긴다. 늘 변화와 진보를 꿈꾼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이 많이 갖지 못했기 때문에 변화를 바라는 것은 지루한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유에서 만족과 불만족을 찾는 차원을 넘어서자는 것이 지혜학교의 지향점이다.
300여 명이 먹은 저녁 식사 값을 기쁨으로 치루는 채식운동가 박재오님, "너희가 인간인 줄로 아느냐. 너희는 벌레요, 짐승이다. 인간을 지향하라"는 '짜라투스트라'의 경구를 쩌렁쩌렁 읊어대던 정호님, "그것이 내 안에 있었음을 나는 그 때 알지 못했습니다." 라는 타고르의 시를 깊게 깊게 낭독하던 이수빈 선생님. 거기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우리가 꾀하고 있는 음모가 얼마나 크고 깊고 아름다운지를 알고 있었다.
"철학은 망치로 하는 것"이라는 나무 잎을 '철학의 나무'에 달아 놓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렇지만 철학은 기존의 질서를 부수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말을 꼭꼭 삼키는 다수의 사람들… 가슴은 뜨거우나 머리가 맑지 않아서 늘 오류를 범하는 우리들을 보며 지혜학교 교육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나를 이끌었다. 결국 '지혜와 사랑'이라는 상투적이지만 그래서 살가운 개념을 우리 학교의 이념으로 채택했으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과연 지혜학교의 탄생은 1년여를 끌어온 가장 중요한 과제 하나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까?
하나의 고개를 넘으니 또 한 고개가 있다. 탄생은 양육으로 이어지고, 양육은 교육으로 이어진다.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겠다. 꾸벅
봄꽃
소리 없는 한달음으로
오돌오돌 피어서 매화입니다.
남겨진 몇 겹의 추위 번연하지만
눈 감았다 떠보면
저어기 산수유 꽃, 진달래 망울 지천입니다.
꽃 먼저 내어놓고 잎을 피우는
몸 가릴 여지 없이 그리 살아야
내년 봄도 개나리가 꽃으로 피고
땅이 연한 새싹 냄새로 풋풋해지면
하늘바람 따사로운 기운이 됩니다.
(5년 전 녹색대학 연구실에서 쓴 시이다.)
| ▲ 광주에 위치한 지혜학교 전경 ⓒ지혜학교 제공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