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시작되고 역할 공부에 들어갈 때에도 정보와 자료를 모으다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면 밤을 새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되고, 주인공에 대해 궁금증에 대한 답이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끼니도 거르며 알려고 하기에 가끔은 주변인들은 당혹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나를 오랫동안 봐 온 지인은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하더라. "넌 왜 그렇게 인생을 피곤하게 사는 거니?" 이 질문에 난 0.1초도 소요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이게 내 삶의 방식인걸, 이게 나인걸."
그렇다. 나에게 피곤하게 사냐고 핀잔 섞인 물음을 건넨 그 친구 역시 내 삶의 방식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처럼 누구나 궁금한 것에 대한 물음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에 대한 답을 듣기를 원한다. 궁금한 것에 대해 집요하리 만치 파헤치고 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에잇, 나중에 찾아보지 뭐." 하고 넘어가는 식의 성향의 차이일 뿐.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물음표와 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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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사이, 그것을 넘어 사람과 사물사이의 순서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우리는 상대에 대해 꼬치꼬치 피곤하게 간섭도 하며 궁금해 하고 그것이 사랑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상대에 궁금해 하고 그 답을 기다리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요점을 놓치고 살기도 한다. 심각하게 상대의 이목에 집중하여 이유도 모른 채 분주하고 치열하게 살 다가 결국은 남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어색할 때가 있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남의 옷처럼 어색하기만 한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은 삶이 행복한 삶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궁금해 하지 않은 채 삶의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지에 대해선 모른 척 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늘 그렇게 스스로에게 무딘 채 하지만 상대에겐 궁금증과 답을 요구하며 살아가다보면 어쩌면 그런 모습은 너무나 열정적인 삶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애정으로 쏟아 붓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은 어느새 버티기 식의 삶이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 지쳐 나가 떨어져 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사회적 편견과 관념에 쌓여 싫다고 얘기 못하는 것들, 또는 좋다고 할 수 없는 것들 투성 이다. 솔직하고 싶지만 우리는 간혹 스스로를 속이고 기만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질문하지만, 그것 또한 스스로에 대한 자기 합리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삶은 'Q & A'속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방식의 연속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하루쯤은 질문의 관점을 1인칭으로 조정해 거울을 보며 '나'에게 물어 보자.
나는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다른 사람에 대해 가볍게 궁금해 했고 때론 냉정 할 수 있었던 것들이 나에게서는 좀처럼 쉬 답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선 갑각류처럼 딱딱하게 무뎌진 채 살고 있다.
대부분 자신에게서 얻을 수 있는 답은 미루어 짐작컨대 내가 선택한 또는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모양일지도 모른다.
자.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오늘 난 여느 때보다 조금 색다르게 비춰진 거울 속에 나를 보고 이렇게 질문하며 하루를 시작하지 않을까? 그 하루가 다른 날들 보다 조금은 더 사랑스러운 날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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