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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없이 밤을 맞는 게 두렵다"

[현장] 6년 만의 최대 한파…쪽방촌, 역사를 전전하는 노숙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명 '벌집촌'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2제곱미터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햇볕도 제대로 들어오지 못해 방과 방 사이를 가로지르는 복도는 오후 1시임에도 어두워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할 정도다.

이곳에서 만난 한태흥(59) 씨는 '쪽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한 벌 뿐인 외투를 입은 채 이불까지 덮고 있었지만 추운 기색이 역력했다.

"춥지 않냐고? 이곳에 하루만 같이 있어봐. 정말 죽을 맛이야. 말로 어떻게 설명해?"

기자의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말하는 한 씨의 입에서는 연신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덮고 있는 이불은 솜이불도 아닌 여름용 얇은 이불이었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게 그의 인생이기에 무거운 솜이불은 생각도 할 수 없다. 바닥에는 전기열선이 있지만 '그림에 떡'이다. 비싼 전기료 때문에 사용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렇다보니 추위가 지독하게도 싫은 한 씨다.

6년 만의 한파…"방세 없어 노숙 생활할까 걱정이다"

13일, 서울 지역에 6년 만에 최대 한파가 불어 닥쳤다. 영하 15도를 훌쩍 넘겼다. 거리에서 5분만 서 있어도 손발이 꽁꽁 얼 정도의 추위다. 문제는 이런 날씨가 계속 이어질 전망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추운 날씨에 민감한 이들이 서민이다. 그 중에서도 제대로 된 집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홈리스'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씨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오후 1시임에도 쪽방촌 내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다. ⓒ프레시안


한 씨는 "오늘 같은 날엔 아예 어디 나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고 방 안에만 있다고 편한 건 아니다. 낡은 건물인데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실외 기온과 실내 기온이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시종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한 씨였다. 방 안에 놓인 물그릇에는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서울 지역에 한파가 계속되면서 빨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가운 물로 빨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빨래는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것. 한 씨는 "이런 날씨에 빨래를 방 안에 너르면 언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벽 한쪽에 만들어진 선반에는 그간 밀린 빨랫감이 즐비했다.

돈이 없으니 난방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곧 방세를 내야 하는데 아직 그 돈을 마련도 하지 못한 한 씨였다. 막노동을 하고 있는 한 씨가 일을 못한지는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인근 복지관과 교회 등에서 먹고 있다.

그래도 그는 "지금은 좀 낫다"고 평가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지하철역에서 노숙 생활을 4개월 간 한 그였다. 한 씨는 "노숙할 때, 겨울철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며 "이러다 까딱하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한태흥 씨는 "가장 걱정이 되는 게 방세를 내지 못해 다시 길거리로 쫓겨나는 일"이라며 "엄동설한에 다시 노숙 생활을 할 걸 생각하니 암담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오늘 밤이 오는 게 두렵다"

실제 노숙인에 비하면 한 씨는 그나마 바람 막을 방이라도 하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낫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만난 노숙인 박남수(가명·43) 씨는 "오늘 밤이 오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세 겹의 외투를 겹겹이 껴입은 박 씨는 "낮에는 그나마 버틸만 하지만 술 없이 밤을 지내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박 씨처럼 지하도나 역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에게 '월동 전쟁'을 이겨내기 위한 무기는 바로 술이다. 이날 역사 근처를 돌아다니던 노숙인들 중 대부분은 이미 얼근하게 술에 취한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노숙인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질환은 술로 인한 질병이나 비위생적인 생활로 인한 결핵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숙인의 사망 원인 중 '손상, 중독 등 외인성 질환'(23.3%)과 '간질환·간염성 질환 등에 의한 사망'(15.7%) 등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역 지하도 한 켠, 겹겹이 세운 박스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김창수(가명·56) 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어서 이 겨울이 지나가기만을 바란다"는 김 씨 역시 매일 소주 1병은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그동안 막노동을 해서 모은 돈으로 하루에 9000원 씩 내고 여인숙에서 기거했다. 그러나 겨울이 되니 그나마 있었던 막노동판 일자리도 뚝 끊겼다. 정부가 제공하는 자활 일자리나 희망근로, 막노동으로 그나마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 수 있었던 노숙인들에게 겨울이 더 두려운 이유다. 그는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역에서 쫓겨났다 들어가길 반복하는 노숙인들

올 겨울 매서운 한파로 서울역과 영등포역, 용산역, 을지로입구역 등 지하철 환승역에는 김 씨 같은 노숙인들이 몰리는 상황이다. 이들 중 몇 개 역사는 노숙인들을 밤에 쫒아내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이들이 밤마다 환승역 쪽으로 몰리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역에 240명, 영등포역에 130명, 용산역에 98명 정도의 노숙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울역에서는 대합실에 머물고자 하는 노숙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공익요원들 사이에 매일 같이 실랑이가 벌어진다. 코레일 측이 평소 열차가 없는 새벽 시간인 오전 1시부터 2시 사이 청소를 이유로 노숙자들을 밖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급기야 서울시는 지난주 코레일 측에 3월 말까지 노숙인들이 대합실에서 머무는 것을 양해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서울역 인근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장근영(가명·50) 씨는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가 쫓겨나고, 다시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며 "새벽 4시 반이 되면 직원들이 밖으로 내보내지만, 새벽 2시가 넘으면 단속을 하지 않아 2시간 정도는 대합실에서 몸을 녹일 수 있다"고 말했다.

"노숙인 적다? 복지 사각지대 있는 사람 숫자 뺀 수치일 뿐"

서울시가 지난 11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9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서울시에는 총 3025명의 노숙인이 있다. 이중 겨울을 맞아 보호 시설에 입소한 노숙인은 2385명. 이는 다시 말해, 지하철 역사 등에서 온몸으로 추위를 견뎌야 하는 노숙인이 640명에 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의 통계에 잡히는 수치일 뿐이라, 실제 역사 주변을 배회하는 노숙인의 수는 훨씬 많다는 것이 노숙인지원센터나 빈곤단체 관계자들의 말이다.

홈리스행동(준)의 이동현 간사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시의 통계에 잡히는 노숙인의 숫자는 말 그대로 쉼터나 상담보호센터 입소자와 주요 역사에 머무는 사람들을 기계적으로 합한 수치일 뿐, 실제 서울시내 노숙인은 수만 명이 될 것이라고 추산된다"고 지적했다. 고시원이나 사우나, 쪽방촌, PC방 등에 임시로 기거하면서 돈이 떨어지면 다시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의 수치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동현 간사는 "홈리스에 대한 복지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한국은 인구대비 노숙인 수가 매우 적게 책정된다"며 "이는 서울시가 제공하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완전히 뺀 수치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서울시는 겨울철 한파를 대비해 지난해 11월 '겨울철 노숙인 특별보호대책'을 마련해 3월 15일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쉼터 및 상담보호센터 이용이 어려운 노숙인의 응급 잠자리를 추가로 확보하고, 거리 건강 상담과 기초 의약품 제공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시는 겨울철을 대비해 임시 시설로 영등포 지역에 쉼터 2개소 130명분과 서울역·영등포역 인근에 쪽방 10곳을 마련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노숙인 쉼터와 상담보호센터의 정원까지 합치면 약 3000명분을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겨울철이 되더라도 쉼터나 상담보호센터 같은 시설에 기거하는 노숙자의 수는 크게 늘지 않는 추세다. 방 하나에 10~20명 씩 수용돼 개인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통제가 심해 시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숙인들이 입소 후에도 금방 빠져나오는 실정인 것.

서울시 복지국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겨울철 노숙인 특별 보호 대책 마련으로 추가 입소가 가능하지만, 구속받기 싫어하는 분들이 계셔 겨울철에도 입소자가 크게 늘지는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합실에서 쫓겨난 노숙인들이 서울역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프레시안


"시설 입소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립과 일자리 위한 정책 필요"

반면 빈곤 단체 관계자들은 "시설 입소만이 능사가 아니며, 실제 노숙인의 안정적인 주거 환경과 자립을 위한 정책은 부족한 실태"라고 지적한다.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간사는 "1999년 108개에 이르던 노숙인 쉼터는 현재 39개에 불과한데, 이는 서울시가 2007년부터 소규모 쉼터를 통폐합해왔기 때문"이라며 "비용이 덜 드는 대규모 쉼터로 통폐합해, 여기에 수용 기준도 없이 무더기로 입소시키다보니, 실상 쉼터는 항상 포화 상태고 군대 내무반식 단체 생활에 노숙인들이 적응하기 어려워 한다"고 꼬집었다.

이동현 간사는 이어서 "대규모 시설보다는 지역 사회와 연동된 소규모 쉼터가 노숙인들이 비교적 지역 생활권과 '격리'되지 않은 상태로 적응할 수 있게 하는데, 서울시 정책은 예산을 옥죄어 통폐합을 유도하는 등,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가 일부 대형 노숙인 이용 시설에 예산과 사업을 집중 편성해 '노숙인 지역 사회 정착'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했다는 주장이다. 자칫 노숙인 '수용' 시설이 될 수 있는 쉼터의 운영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이 간사는 "그나마 2010년도 예산안 중 노숙인 쉼터 관련 예산은 10억 원 정도 삭감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년이 지난 1999년 노숙인 수가 급증했던 것처럼, 2008년 경제 위기의 여파가 완충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노숙 인구 급증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이를 대비해 노숙인의 자립과 일자리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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