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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폭발에도, 구제역에도 그저 '발전'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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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폭발에도, 구제역에도 그저 '발전' 뿐인가?

[기고] 지속 가능한 후퇴를 고민할 때

새벽 빗소리에 잠을 깼는데 밖에 나와 보니 봄비보다 더 반가운 수돗물 소리였다. 해발 600미터의 산간마을이라 한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다 보니 마을 상수도는 겨울마다 꽝꽝 얼어붙는다. 얼음장을 깨고 계곡물을 길어다 밥도 해 먹고 빨래도 하다가 얼마나 반가운 수돗물 소리인가. 이곳의 진짜 봄소식은 수돗물 소리로 가늠된다.

비통·아우성과 함께 온 봄소식

후쿠시마의 원자력2호기가 오늘 새벽에 폭발했다고 한다. 어느 신문사의 현지 특파원은 이번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로 4만~5만 명을 거론한다. 악몽의 봄소식이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경고 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은 비통과 아우성의 봄이다.

땅과 하늘은 갈라지고 화염과 매연이 자욱하다. 바다가 뒤집히니 어찌 물고기인들 온전하랴. 나는 새도 무더기로 떨어지고, 기는 짐승들은 수백만 마리가 생매장 된다. 꿀벌은 자취를 감추니 꽃이 피어도 열매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뭔가에 쫓기며 시뻘건 분노의 불길과 시커먼 무지의 매연에 휩싸여있다. 바닷물을 끼얹고 끼얹어도 꺼지지 않고 폭발을 일으키는 후쿠시마 원자로의 핵 연료봉처럼 인간의 탐욕은 스스로를 미치거나 죽거나 하는 곳까지 몰아친다. 전쟁과 다툼은 끝이 안 보이고 남과 북은 미사일과 핵으로 서로를 위협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웃나라에서 원전 폭발로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이는데도 강원도 삼척에서는 원전 유치로 찬반 대립이 거칠고 나라의 대통령은 원전을 수출하기 위한 외국 나들이로 바쁘다. 광우병이나 구제역 대책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축산 단체들은 축산농가 재입식을 위한 시설지원, 사료비지원, 융자금지원, 자녀학자금 지원을 해 달라고 야단이다. 공장식 밀집축산을 그대로 둔 채 재입식 하는 것은 더 큰 재앙을 부를 것이다. 강화된 방역대책만으로 구제역에 대처하는 것은 설사하는 사람에게 썩은 음식을 계속 주며 지사제만 처방하는 꼴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지구에 관심을

그렇다면 생태축산이니 자연축산이니 하는 것이 답인가? 동물복지형 축산이라는 말도 등장한다. 축사를 널찍하게 짓고 목초지를 확보하는 것은 사료작물 재배에 빼앗긴 농지보다 더 많은 땅이 필요할지 모른다. 지구의 살갗을 벗기며 지구 대재앙의 불씨만 키우는 짓이다.

미생물 축산법도 마찬가지다. 병 안 걸리는 가축. 끔찍하다. 그보다는 똥 안 싸는 돼지를 개발하면 어떤가? 방귀 안 뀌는 소는 어떤가? 차라리 실험실에서 단백질 배양을 하는 것은?

농민을 위한다는 이익단체나 정치인이 내 놓는 대책들은 달콤한 사탕이다. 지나친 육식문화와 공장식 축산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되레 '축산무용론'을 퍼뜨리는 음모로 몰아친다. 정말 그런가? 그런 논리라면 전 국민적인 금연운동을 담배농가 죽이기 음모라고 몰아칠 건가.

지구 온난화가 전 지구적 재앙의 원인이고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축산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전 세계의 비행기, 자동차, 기차, 선박 등 온갖 이동수단들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가 축산업에서 나온다고 유엔의 식량농업기구가 공식 발표했다.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 velopment)이라는 개념이 갖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없다. 지엽적이고 일시적인 해법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포기하고, '지속가능한 후퇴'(Sustainable Regression)를 선택해야 한다. <가이아의 복수>의 저자 '제임스 러브룩'의 40년에 걸친 연구 결론이다.

'지속가능한 후퇴'를 선택할 때

화해해야 한다. 참회하고 개심해야 한다. 생매장 당한 동물들은 인간에게 복수하지 않는다. 땅은 사람을 역습하지 않는다. 그냥 몸부림 칠 뿐이다. 견딜 수 없어서 고통스러워 할 뿐이다. 그 몸부림과 고통의 신음이 지구 생태계를 뒤 흔드는 것이고 지진이고 화산폭발이고 쓰나미다. 떼로 죽고 한 구덩이에 파묻히는 것이 인간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에 가장 많이 희생당했던 필자가 속한 회원 100여명의 작은 단체에서는 하루만에 240만원을 성금으로 내 놓았다. 일본에 대한 도덕적 과시도 아니요, 감상적 동정심도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증오와 미움, 다툼과 폭력을 치유하는 성찰일 뿐이다.

이 땅 농부들이 한 해 희망을 심는 새 봄의 들녘에서, 축사에서, 밥상에서 가이아의 노랫소리가 들리기를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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