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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구하는 한국인' '제2의 한비야·반기문'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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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구하는 한국인' '제2의 한비야·반기문'이 아니라…

[프레시안 books] 곽은경·백창화의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

작은 인연

서평을 부탁받은 것은 약 2주 전 프레시안 사무실에 들렀을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과 인사하며 다소 들뜬 상태에서 서평을 쓰겠다고 하고, 건네받은 책에 대한 설명은 어영부영 들은 채 사무실을 나섰다. 안은별 기자는 "관심 있는 분야니까 재미있을 거예요"라고만 말해주었다. 며칠 후, 서평 약속을 기억하며 책을 펼친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만난 사람의 책이었던 것이다.

▲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곽은경·백창화 지음, 남해의봄날 펴냄). ⓒ남해의봄날
10여 년 전, 국제 NGO인 팍스로마나의 인턴으로 UN인권소위원회를 참관하러 스위스 제네바로 갔을 때였다. 인권에 대한 관심만 컸을 뿐 한국 사정도, 국제 사안도 제대로 모르던 풋내기 시절이었다. 매일 열리는 국제회의에 버겁게 쫓아다니던 나는, 당시 팍스로마나 사무총장이던 이성훈 선생님의 주선으로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반나절 동안 야외에서 식사도 하고 산책을 하며 휴식 시간을 가졌다. 때마침 이 선생님이 자신의 '절친'이라며 소개시켜준 분이 바로 곽은경 선생님이었다.

국제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활동가라는 사실만으로도 곽은경 선생님은 내게 우러러보였다. 당시 나눈 대화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쾌활하고 시원한 성격으로 이성훈 선생님과 거리낌 없이 농담을 주고받던 모습이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후 한 번도 연락하지 못했던 그 분을 이렇게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되다니. 그것도 2009년 이후 팍스로마나의 사무총장으로 제네바에서 일을 했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거리에서 오랜 친구를 마주친 듯한 반가움으로 책장을 넘겼다. 읽다 보니 몇 해 전 식량주권을 주제로 파리에 출장을 갔을 때, 인터뷰를 위해 들렀던 가톨릭 국제NGO CCFD에서 지나가듯 말해주었던 그 단체의 한국인 활동가가 또 곽은경 선생님이었다는 걸 알고 다시 무릎을 쳤다.

모순과 절망 끝에서도

이 책은 주인공 격인 곽은경이 지난 25년 동안 국제 인권/평화 활동가로 일해 온 이야기가 본인의 회고와 그의 친구인 백창화의 관찰과 함께 엮여져 적혀 있다. 책이 술술 읽히는 이유는,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경험과 생각을 적어 내려간 두 저자의 진솔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진솔함은 인도, 시에라리온,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루, 콜롬비아 등지에서 폭력과 인권 침해에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 활동을 벌여온 곽은경의 동력이었을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던 가톨릭학생회 출신으로 기자 생활을 하던 곽은경은 어느 날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가톨릭학생운동(IMCS)에서 취직 제안을 받는다. 당시는 1987년,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스물다섯이란 혈기 가득한 나이에 미래를 고민하던 저자는 고민 끝에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려 파리행을 결심한다. 이후 그는 한국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세계 각국의 폭력과 인권 침해의 현실을 목도했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자신의 몸이 말 그대로 부서지도록 일했다.

▲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의 저자, 곽은경과 백창화. ⓒ남해의봄날

이제 한국에서도 국제단체나 개발도상국에서 일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꿈을 가진 20, 30대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국제 활동'이 그 말이 주는 어감처럼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또는 국제 활동이란 통역 이어폰을 끼고 UN 국제회의에 참석한다든지 가난한 이들에게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일로 여겨지고, 이런 꿈은 반기문과 한비야로 대표된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국제 NGO 활동가'의 삶이 어떤 것인지 그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1990년대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정책)가 폐지되고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던 혼란스러운 남아공에서 저자가 평화감시단으로 활동했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고 흑인의 인권이 신장되는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던 남아공. 모든 것이 잘 풀린 것 같았지만, 오히려 흑인 사회에서는 유혈 충돌이 증가하고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남긴 뿌리 깊은 사회 구조의 문제였다. 곽은경을 포함한 평화감시단이 있었지만, 그들은 거리에서 벌어진 총격전을 막지는 못했다. 막기는커녕, 엎드려 총알을 피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처참한 살육의 광경은 평화 감시라는 것이, 국제 연대라는 것이 이론에서 실제로 옮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끼게 해줬다.

▲ 아파르트헤이트가 아직 유지되고 있던 1993년, 흑인 지도자 크리스 하니의 암살에 분노하는 남아공 시민들. ⓒ요하네스버그 굿맨 갤러리

그렇다면 저자는 절망했을까? 그 현장에서 그는 동료들에게 빵과 물을 나눠주며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고 다독였고, 이후에도 몇 년간 흑인 거주 지역에 머물며 남아공의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를 지켜본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가닥의 희망일지라도,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작은 힘을 보태는 것. 그것이 모이고 쌓여 불가능한 기적을 만드는 것임을 나는 믿는다. 이것이 내가 모순과 절망 끝에서도 풀뿌리 운동을 지속하는 이유다."

답은 컴패션(compassion)이다

2013년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인권 유린은 계속되고 있다. 저자가 연대하고 있는 인도 최하위 계층, 달리트에 대한 박해도 그중 하나다.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인도에는 여전히 카스트 제도가 관습으로 남아있고, 그림자조차도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 성폭행, 폭력, 살인 등 인권 침해는 계속되고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달리트 계층 여성들의 절절한 이야기는, 인류가 그동안 진화했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까지 들게 만든다. 우리는 과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25년의 경험 속에서 찾은 스스로의 답을 담담하게 적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감동을 받고 공감한 구절이기도 했다.

"처음 파리에 와서 지금까지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온갖 인간 사회의 모순이 점철된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소위 제3세계의 삶에 관해 해답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고통이 컸음을 깨달았다. 활동가로서, 제 3자로서 현장에 들어가 그들의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면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당신들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지하고 오만한 것이었는가."

"세상을 구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 답을 찾으려고 애써 노력할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나의 역할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깨어있는 청년으로서 질문을 잘하는 것, 그것을 통해 세계 지성인들과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과제를 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과제는 그동안 품고 있던 잘못된 질문은 버리고, 이 사회와 나의 현실을 직시한 상태에서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들에 대해 이해하고, 판단하고 질문하기보다는 공감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들의 삶을 체험해보고자 노력하는 것, 이런 연후에 비로소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저자는 이후 '컴패션compassion'이 그의 국제 연대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말로 '측은지심, 긍휼함'이라고 번역되지만, 영어에서 이 단어는 단순히 불쌍한 이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 이상을 의미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컴패션이란 "누군가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낼 때까지 그 고통을 나누며 함께 한다"는 뜻이다.

컴패션은 최근 나 자신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인권과 평화 운동은 물론 환경과 기후변화를 논할 때도 컴패션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살아온 이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고통이나 슬픔이란 문화나 시대, 심지어 종(種)을 초월한 경험이 아닐까. 내가 고통을 느끼듯 남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이해하는 마음, 남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모든 연대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다른 무용담이 아니기를

지금 저자는 알프스 자락 인터라켄에서 '불친절한 민박집 아줌마'로 생애 첫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그곳에서 쉬고 있다니, 읽는 내내 몸이 상해가는 저자를 보며 안타까웠던 나의 마음도 좀 누그러졌다. 남을 위해 헌신하면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해 디스크 등 온갖 질병을 달게 된 사연은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꼭 그래야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저자 스스로 인정하듯 한국인의 근면성, 나쁘게 말하면 '일 중독' 성향은 국제단체에서는 내려놓아도 되지 않았을까.

한편, 민박집에서 한국에서 오는 젊은이들을 보며 저자가 느낀 점은 2년 간 해외에서 생활하다 한국에 돌아온 내가 느낀 것과 비슷했다. 여행사의 안내나 여행책자에 적힌 대로 정해진 코스만 따라가려는 사회. 그 정해진 코스가 '정상'이 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비정상'이 되어버리는 사회. 그 '비정상'의 길을 걷다가 어쩌다 돈과 명예를 얻게 되면 그제야 돌아보고 추어주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 지난 25년 간 '비정상'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며 국제 연대 활동을 해온 곽은경의 삶은 존경할 만하다. 진심으로 적어 내려간 그의 책은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그러나 그의 책을 받아든 한국 사회 역시 그와 같은 마음일까. 엊저녁 들른 한 서점에는 이 책이 다른 국제기구 진출 관련 서적들과 함께 나란히 매대에 놓여 있었다. 그의 책이 또 하나의 '성공한 비주류'의 무용담이 아닌, 세계의 이웃으로 성장하는 한국의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순간의 혼란을 극복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걸 자주 보았다. 그건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 삶을 결정하는 것과 같다. 나의 삶은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결정해야 한다. 정말 내 마음이 가고, 온 열정과 가슴 벅차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지침이었고 그것이 결국 옳았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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