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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망한 조선'에는 없는 나의 사랑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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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망한 조선'에는 없는 나의 사랑과 눈물

[프레시안 books] 오항녕의 <밀양 인디언, 역사가 말할 때>

정치평론가는 왜 조선과 오항녕을 좋아하는가


나는 조선사를 사랑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왕조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뀔 때 다른 문화재가 아닌 '책', '책', '책'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황당해하며 웃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 가야무사들의 철제갑옷 같은 것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한문으로 뒤덮인 문화재들만 나온다는 사실에 감명 받은 적이 있는가? 나의 조상들이, 그 나라의 통치자들이, 어쩌면 지극히 한심하면서도 지극히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조선사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조선사를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며,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지극히 희소한 역사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일 게다.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의 모습. ⓒ연합뉴스


나는 고구려사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왕조의 역사에 그다지 흥미를 여기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반면 조선사는,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그 존재를 알기만 했다면 분명히 사랑했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왜 조선사를 사랑하는가?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며, 그것도 정치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선은 내가 아는 한 전근대사에서 문자가 세상을 정교하게 파악하고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을 지배계급이 가장 강하게 공유했던 나라였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나는 그러한 믿음을 종종 잃는다. 하지만 저런 믿음이 없을 때 정치평론이란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어떤 사람이 진지한 정치평론가라면, 그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마땅히 조선사를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다(아마도 그런 판타지를 공유하기 때문에, 나는 전혀 많이 팔릴 가능성이 없는 두꺼운 책, <안티조선 운동사>(텍스트 펴냄)와 같은 책을 쓸 수 있었으리라).

20세기에 이웃나라에게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강렬한 민족주의적 열망으로 표출된 한국 사회에서, 조선사에 이런 방식으로 매력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시민들의 조선사에 대한 관심은, '이 나라는 왜 망했는가'와 '이 나라는 왜 근대화를 하지 못했나'라는 질문으로 집약된다. 조선사를 아름답게 여기고 옹호하는 일부 민족주의 성향의 역사학자들은, 조선왕조가 본질적으로 서구 근대 문명과 비등한 수준에 올라섰다고 강조한다. 그들을 비판하는 뉴라이트는 그것이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공박한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나를 설레게 한 그 '조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조선왕조가 '단군'이 아닌 '기자'를 중시한 것을 사대주의의 증표로 보고 비난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 사실이 조선왕조가 인류 역사상 명멸했던 수많은 왕조와 다르게 혁명가들이 건국한 이념국가라는 증거가 된다. 호들갑을 좀 떨자면, 내가 이해하는 조선왕조는 유전자의 본능을 뛰어넘어 레닌이 만들어 낸 소비에트연방 수준의 실험을 했던 체제였다. 한국 사회의 진보주의자들이 보통 근대 이후의 역사나 서구사 밖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 믿음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 이 땅에서 '정치적 좌파'로 사는 나의 큰 괴로움 중 하나다.

나는 비전공자가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이런 얘기에 오항녕 교수가 동의할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처럼 생각하는 이가 또 있다면, 그 역시 오항녕 교수의 글을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 오항녕 교수는 대중적으로 글을 쓰는 역사학자 중에서, 필사적으로 조선에 근대화의 역량이 있었음을 증명하려는 민족주의자와, 그들을 까고 싶어 안달이 낸 뉴라이트 사이에서 조선사의 매력을 알리는 거의 유일한 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조선왕조가 근대화를 할 가능성이 있었냐는 질문에, '조선의 목적은 근대가 아니었지 않느냐'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이를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여전히 역사책을 많이 뒤적뒤적하는 독서가였다면 오항녕 교수의 글을 매우 열심히 찾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대중서를 출간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글밥을 먹고 살게 되었지만 심심풀이 땅콩으로 책을 읽기는 힘든 생활인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띄엄띄엄, 드문드문 읽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읽었는데도 그가 조선사에 대해 쓰는 글들은 대체로 내 '취향'에 맞았다는 것이다. 역사는 어찌됐든 사실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취향'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랬다. 하다못해 조선의 왕들에 대한 품평도 정치평론을 하는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바라본 그네들에 대한 내 인상비평에 근접했다.

▲ <밀양 인디언, 역사가 말할 때>(오항녕 지음, 너머북스 펴냄). ⓒ너머북스
"오항녕 교수의 역사 시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밀양 인디언, 역사가 말할 때>(너머북스 펴냄)는 어쩌면 내가 '취향'이란 말로 뭉뚱그린 그 무언가를 해명해 줄만한 책이다. 오항녕은 "이 책은 사론(史論)이다"(11쪽)라고 소개한다.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비평, 정치현상과 그에 대한 비평이 섞여 있으니 나처럼 장터에서 때 묻은 사람들이 읽기에도 좋다.

오항녕은 "역사적 관찰은 우리에게 세 가지 눈을 요구하는 동시에 키워준다. 객관적 조건에 대한 안목, 인간의 의지와 책임에 대한 자각, 그리고 우연에 대한 겸허한 수용이 그것이다"(6쪽)라고 말한다. 읽다가 무릎을 쳤다. 이어지는 "이 세 가지 눈은 친구나 연인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같은 쪽)이란 구절에서 웃었다는 사실은 덤이다.


이 세 가지 눈은 정치평론을 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 왜 공부를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들도 종종 이런 눈을 가지는 데에 실패하는 것일까? 당파의 입장에 따라 객관적 조건을 왜곡해서 해석하기도 하고, 우울해지면 조건만 쳐다보다가 사람의 의지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음을 놓치기도 하고, 우연적인 것을 견디지 못하거나 설명이 덜 된 것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정치적인 사건이나 현재의 조건 속에서, 인간의 의지에 의해, 우연성이 조합되어 나타난다. 그 개별적 사건들이 흐름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를 바라볼 때에나 역사를 바라볼 때에나 그 '흐름'을 통해 사건의 연쇄를 좀 더 강하게 규정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오항녕 식으로 말하면 개개의 사건을 '마당'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음 흐름으로 향하기 위한 '도로'로 바라보는 것이다.

띄엄띄엄, 드문드문 읽은 글에서 오항녕은 광해군이 개혁군주라거나, 정조가 개혁군주라는 주장에 대해 논거를 들어 반박하고 있었다. 광해군이든 정조든 누군가를 개혁군주로 만들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기획이다. 그 당시의 사회상 뿐 아니라 조선사 전체의 맥락에서 그들을 어떤 식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다.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참 많다. 아마도 오항녕이 '그런 종류의 기획'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접근이 내 '취향'에 맞는다고 여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기획이 없이 접근했기 때문에, 오항녕은 내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받았던 조선사에 대한 그 '설렘'에 가장 근접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 영화화와 함께 역사학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오항녕은 '개혁군주 광해군', '외교에 뛰어났던 광해군'이라는 주장에 논거를 들어 반박해 왔으며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너머북스 펴냄, 2012)을 쓰기도 했다. 사진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스틸컷.

저 세 가지 눈을 가지면 왜 "친구나 연인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유용"할까? 저 세 가지를 파악하는 것이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자기분석에도 유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광해군을 비판하면서 그가 했던 말,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왜곡하는 것도 오류이지만, 비정상적인 사태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 역시 오류이다"(93쪽)는 어떤 보편적인 문제에 대한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정조가 살던 시대나 정조를 어떻게 보든, 일치하는 견해는 정조가 공부를 잘했다는 사실이다. 잘하고, 또 많이 했다. 연구자들은 직업이 그래서 그런지, 공부 좀 하는 사람들에게는 점수가 후하다. 후하다 못해 껌뻑 죽는 경우도 많다. 인정하다가, 존경하다가, 투항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물론 투항하는 순간 비판은 멈춘다"(81~82쪽)란 말은 자신에게도 한 발 거리를 두고 보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가.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 같이 사람을 많이 죽였어도 내가 태종은 그럭저럭 좋아하는데 세조에 대한 긍정 평가에는 발끈하는 이유를 성찰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은, 다소 불편한 구절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민주주의 제도와 왕정과 추장제 등을 우열관계를 말하지 않고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태도(42~49쪽)나 박근혜에게 아버지의 5.16을 평하라고 한 것은 인정이 아니었다는 식의 판단(96~99쪽)에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이 서구 근대사에만 주로 관심을 기울여서 나타나는 편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시대의 역사를 두루 훑어보다 보면, 관료제가 탄생한 이후의 전근대 사회는 생각보다 지금의 사회와 많이 유사하다. 중국 한나라나 송나라 때의 상업 수준을 보면 과연 상업 발전이 자본주의와 상관이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대체로 좌파들은 자본주의가 우연히 성립된 역사적인 체제라고 말은 하지만, 그들이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이전에도 있었을 거 같은 사회 문제들도 자본주의 탓이라고 말할 때는, 마치 자본주의가 초역사적인 체제인 것처럼 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명은 근대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근대사는 사람에게 묘한 방식으로 위안을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 책에선 이 구절이 그랬다.

"혹시 단종과 사육신이 언제부터 '단종'과 '사육신'이었는지 아시는지?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어린 왕은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어린 왕에게 구현된 정통성을 지키려고 한 성삼문 등은 역적이 되어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후 사육신이란 말조차도 금기시되었다. 240여년이 지난 숙종 때(1698년) 이르러서야 노산군은 '단종'으로, 성삼문 등은 '사육신'으로 복권되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장희빈의 치마폭만 떠올리는 숙종시대에 말이다. 단종이 영월 땅에서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지 242년만의 일이다.

24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조선의 학자들은 책을 지어 이들을 추모했다. 보통 사람들은 단종과 사육신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민담을 만들어 입에서 입으로 이들의 정당성을 전했다. 그렇게 240여년을 기억해왔다. 별로 비장하지도 않게, 그저 살면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았다."(109~110쪽)

여러분은 이 구절의 어떤 부분에서 울컥하시는가? 나는 '242년'과 '별로 비장하지도 않게, 그저 살면서 그렇게 했다'에 울컥했다. '별로 비장하지도 않게, 그저 살면서 그렇게 했'기에 242년의 지속이 가능했던 거다. 정치평론가로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조선'을 욕보이는 남북한의 두 집단(물론 <조선일보>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지만, 그것들은 기껏해야 100년도 안 되지 않았는가.

내 눈으로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못 보더라도, 후손들은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모종의 노력을 한다면 말이다. 이것은 오항녕 교수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진보주의자의 단선적 역사관일 수 있지만, 이 경우만큼은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활용해야겠다. '결기'만 가득한 듯한 소위 민주화운동 세력(내지는 진영)에게 부족한 여유와 '근기'를 조선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고, 오늘의 나는 '그저 살면서 그렇게'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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