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게 많은 신뢰를 얻고 있는 자민당의 지도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포함한 두 명의 전 총리가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탈(脫)원전을 내세웠지만, 같은 자민당의 아베 신조 현 총리의 측근이자 원전 찬성파인 후보가 선출됐다. 후쿠시마 재앙이 있은 지 3년, 50여 기의 원자로는 여전히 가동 정지 상태다. 일부 일본인들과 이와이시마 등은 원전을 반대하고 있다.
월요일 낮, 세토 내해(혼슈 섬과 시코쿠 섬, 규슈 섬 사이의 좁은 바다)의 맑은 바닷물이 햇빛에 반짝인다. 모자를 쓰고 함박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가득한 연안 여객선 안은 평소와 달리 바캉스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혼슈 섬이 멀어져가고, 작은 항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우현으로, 울창한 절벽 사이로 작은 통로가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사진기 셔터를 눌러댄다. "바로 여기 타누라 만에 사람들이 원전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도쿄 북서쪽 이바라키에서 온 반(反)원전 운동가들이 타협을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작은 섬 이와이시마를 방문하는 것이다.
히로시마 남쪽에 위치한 주민 470여 명의 이 작은 섬은 원자력 에너지에 반대하는 일본인들의 성지순례지가 되었다. 어부와 농부들이 사는 이 마을은 30년 전부터 2기의 원자로 건설 계획에 완강하게 반대해왔다. 원전이 들어설 곳은 맞은편 해안, 주민들이 키우는 모과나무 밭으로부터 직선거리로 4킬로미터 거리. 낚시로 만새기를 잡을 수 있는 어로 구역 한가운데다. 시위, 연대 서명, 연좌 농성, 점거 등 이와이시마는 무기한 저항을 이어왔고 공사를 늦추는 데 성공했다.
2011년 3월에 시작된 원전 공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즉시 중단됐다. 어쨌거나 이와이시마는 승리를 외치지 않았다. 그들은 미디어의 도움으로 잠깐의 유예를 얻었을 뿐임을 알고 있었다. 원전 건설 계획을 절대 포기한 것이 아니었고, 2012년 12월 이 지역 출신인 아베 신조 내각이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 화제에 올랐다. 자민당의 멘토이자 아베 총리의 전임자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지난 가을 탈(脫)원전을 주장하며 모든 사람의 허를 찔렀지만 아베 총리는 원전 재가동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안전 규정이 7월 8일 시행되면서 타누라의 원자로 2기에 관한 서류는 언젠가는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일본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NRA)는 안전 규정을 강화했다. 일본의 원자로 50여 기는 현재 가동이 중단돼 있고, 안전 점검 작업이 끝나고 NRA와 지역 의원들의 검증을 거친 후에 재가동될 수 있을 것이다). 에네르지아 전력 회사와 카미노세키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은 원전 재가동에 찬성한다고 발표했다.
여객선이 종점에 도착했다. 배에서는 산이 많은 섬 비탈에 붙어 있는 하얀 집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야생의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테라스 재배를 보려면 작은 길들을 헤치고 섬을 둘러서 가야 한다. 2차 대전 직후 이와이시마는 정부 지원을 받는 귤 농사로 번영을 누렸다. 이후 일본 시장은 미국에 감귤류를 개방했고, 1947년 3400명에 이르던 주민 수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1980년대 원전 건설 계획이 고개를 들면서 원전 반대 투쟁이 시작됐다. 이 웅장하고 배은망덕한 바위섬에서 계속 살아가는 사람은 그때 이미 1000명 정도로 줄어 있었다.
마을 의원이자 열성 활동가인 시미츠 도시야스(58) 씨는 "사람들은 늙어가고 운동은 약화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1983년 가을부터 주민들은 '원전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매주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지칠 법도 하다. 1400회가 넘는 거리 행진이 진행된 지금, 원전 반대자들은 백발이 됐고, 그나마 거리가 단축된 행진을 끝내는 것도 힘에 부친다. 오늘은 이바라키현의 원전 반대자들이 이곳으로 시위 지원을 나왔다. 하지만 행진은 마지막 순간에 취소됐다. 주민 한 명이 사망했고, 이와이시마는 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이와이시마, 나가시마, 야시마, 무로쓰 반도를 통괄하는 행정구역인 카미노세키의 기초자치단체 직원인 마사키 요시다 씨는 상황을 간략히 요약해서 "주민 3300명의 반 이상이 65세 이상이다. 카미노세키는 매년 35억 엔이 필요한데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돈은 2억 엔에 불과하다. 1980년대에는 주민이 6700명, 1960년대에는 1만2000명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이곳을 떠난다. 우리에게는 기업들을 유치할 만한 땅도, 물도 충분하지 않다. 간선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카미노세키는 주민 유출을 막기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해왔다. 1969년부터 나가시마와 주요 섬(히로시마, 오사카, 도쿄)을 연결하기 위해 다리가 건설됐다. 다리는 많은 희망을 품게 했다. 마을의 빛바랜 광고판에는, 다리를 이용해 이곳에 정착하러 오는 젊은이들을 행복하게 맞이하는 어르신 세 명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카미노세키로 돌아오기는커녕 점점 더 이곳을 떠났다.
1976년 11월, 미쓰비시는 오일 쇼크 이후 정부가 장려한 액화석유가스(LPG) 저장소를 주민 센터와 다리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덕을 깎아내야 했다. 땅 주인들이 들고일어났다. 모든 계획은 취소됐다. 행정 책임자들은 현지 신문을 통해 이곳의 미래와 소외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150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공사 개시 시에 일자리를 두 배로 늘린다는 약속이 들어 있는 타누라 만 원전 건설 계획은 그 당시 기적 같은 일이었다. 1982년 6월, 지방 의회에서 이 계획이 탄생했다. 카미노세키는 2년 후 에네르지아 측에 원전 후보지 지원서를 제출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지금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선택이 된 것이다. 마사키 씨는 "우리의 역할은 미래의 기업가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꿈은 또 다른 꿈을 쫓아버린다. 카미노세키 다리 출구에 당당히 자리 잡은 또 다른 광고판에는 젊은 부부와 어린 아이가 2기의 원자로 뒤편 풀밭에서 소풍을 즐기는 모습이 들어 있다.
"원전 사고가 나면 도망갈 곳이 없다"
하라다 다케노부 에네르지아 사무소장도 "이 원전은 지역을 활성화하고 에너지 자립을 보존할 유일한 해결책이다. 90만 가정의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가사키의 히바쿠샤(원폭 피해자)의 후손으로 후쿠시마 출신 여성과 결혼한, 나무랄 데 없는 옷차림을 한 남자는 자신의 가계에 기록된 고통스러운 역사로 인해 동요되는 것 같지 않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기술을 부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사람들이 원자력을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도상에 펼쳐진 원전 지역을 보면 더욱 놀랍다. 현재 일본에서 계획 중인 유일한 새 원전(다른 원자로들은 기존의 원전에 이전될 것이다)은 기후가 온화하고 1934년부터 '국립공원'으로 분류될 정도로 생물 다양성으로 널리 알려진 지역에 위치하게 되어 있다. 이와이시마 주민들은 원자로에서 방출된 뜨거운 물이 물고기들을 쫓아버리지 않을지, 더럽혀진 이곳의 농작물이 히로시마 시장에서 나쁜 평판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게다가 1970년대에 후쿠시마 다이치 원전으로 일하러 떠났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방사능에 노출되어 돌아와 원자력의 위험성을 일찌감치 경고했다. 시미츠 씨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우리는 도망갈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섬에 살고 있으니까"라고 강조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방파제 위에는 톳이 널려 있다. 야마토 다카시(36) 씨는 이곳에서 채취한 톳을 지역에 판매한다. 혈색 좋은 얼굴의 그는 자원이 부족한 이 섬에서 어떻게 저항이 조직화되는지를 궁금해 하는 이바라키의 열성 활동가들에게 가이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곳의 생활양식을 보존하려 한다. "젊은 내가 나이 드신 분들을 도와드린다. 그분들은 쓰케모노(일본의 절인 채소)를 내게 제공하고, 나는 그분들에게 톳으로 감사 표시를 한다. 이런 나눔의 정신이 우리들의 재산인데 원전이 이것을 파괴하려 한다. 우리 마을이 어떻게 분열되었는지 한번 보세요!"
야마토 씨는 2000년에 이와이시마의 간마이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돌아왔다. 간마이는 886년부터 4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신의 춤' 축제인데, 1984년과 1988년에는 원전 문제로 개최되지 못했다. 이제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할아버지의 땅에 매달려 있다. 계절의 리듬에 맞춰 바다와 산 사이를 오가는 고된 생활이다. 봄에는 톳과 모과 수확, 여름에는 문어 말리기, 가을에는 차를 준비한다. 얼마 안 되는 푼돈이나 수확의 일부를 받고 일을 거드는 주민들의 도움 없이는 해내기 힘들다. 오늘 아침, 세 명의 쾌활한 직원을 보고 이바라키의 관광객들은 경탄했다. 에미코, 토모코, 사카이, 이 세 명의 직원의 나이는 69~77세다.
많은 활동과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야마토 씨는 카미노세키 원전 반대 투쟁의 횃불을 이어받았다. 카마나카 히토미 감독의 <지구를 회전시키는 꿀벌처럼>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처럼 그는 모든 전투에 참여한다. 주민들이 번갈아가며 타누라 만 진입을 봉쇄할 때면 에네르지아 직원들을 향해 연설을 한다. 며칠 동안 계속된 점거 농성 후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들을 걱정하기도 한다. 목멘 소리로 그는 산업부 장관에게까지 분노를 표출해 60만 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사람들이 목을 죄어 오는 이 섬에서 노인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최소한 한 번만이라도 보러 오세요!"
지나치게 도식적인 묘사는 분명 다른 면을 간과한 것일 수도 있다. 카미노세키 관련 서적 <고향의 불경기>(하와이대학출판부, 호놀룰루, 2012년)에서 역사가 마르탱 뒤쟁베르는 이와이시마에서 원전에 찬성하는 것으로 의심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배척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신도(조상과 자연을 섬기는 일본 종교) 사제가 원전 건설 계획에 호의적이라는 이유로 역사적 성소가 사라지기까지 했다. 원전은 한 공동체의 핵분열을 가져왔고 그 어떤 진영도 이 피해를 비껴가지 못했다.
그러나 뒤쟁베르는 무엇보다도 계획 실패로 흥분해 있는 기초자치단체와 전력공사의 "정교한 막후공작"을 들추어낸다. 모든 서류를 협력해 준비하면서 그들은 1982년 지방의원 선거가 진행되고 그들이 추가 임기를 확보할 때까지 수개월을 기다린 후에야 주민들에게 계획을 알렸다. 기초자치단체의 원전 관련 입장은 미정이라고 발표하도록 로비를 계속했고, 1985년 5월이 되어서야 에네르지아가 카미노세키 사무실에 38명의 직원을 배치할 정도였다.
네마와시(나무를 옮겨 심기 전에 일이 수월하도록 사전 작업을 해두는 것처럼 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비공개적으로 관계자들에게 일의 내용이나 의도 등을 설명하여 의견을 조정하는 것을 일컫는 말), 즉 푸짐한 회와 맥주와 함께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테이블에 올린 은밀한 파티 초대가 이루어졌다.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한 기존 원전 방문 역시 무료였고 술이 곁들여졌다. 뒤쟁베르는 "1982년에 이미 수천 명의 주민이 이 '전력 수업'에 참가했다"고 적고 있다. 에네르지아와 정부는 이 마을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었다. 사회 기반 시설 보수, 학교 건설, 호화로운 스파 건설을 위해 카미노세키에 120억 엔이 지원됐다. 그리고 공사 완료 후에 그와 비슷한 액수의 지원을 약속했다.
"해초가 신선함을 잃으면 안 된다"
이와이시마는 자급자족 영농을 준비하며 단 한 푼의 지원금도 받지 않았다. 우지모토 쇼이시(69) 씨는 야채나 곡물 껍질로 키우는 튼튼한 25마리의 돼지를 자랑스러워한다. 타카코 요시카야(38) 씨는 자신이 경영하는 작은 식당의 음식을 이 지역 산물로만 준비한다. 마을에는 다수의 식료품점과 두 개의 창구가 있는 우체국, 담배와 정종까지 판매하는 약국 하나가 있다. 바위산으로 이어지는 길 끝에 있는 크고 멋진 학교에는 교사 한 명과 학생 3명이 있다. 왁스를 칠한 쪽마루로 되어 있는 3층의 빈 교실에서 바라보면 거의 훼손되지 않은, 탁 트인 타누라 만의 전망이 들어온다. 원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와이시마 주민들이 원전에 반대하는 것은 원전이 전망을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앞다투어 말한다.
그렇지만 야마토 씨는 이런 전망에 감탄할 겨를이 없다. 저녁이 되자 그는 마지막으로 거두어들인 톳으로 차를 끓인다. 여전히 그의 뒤를 쫓아다니는 반원전 운동가들에게 "해초가 신선함을 잃으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분주히 움직이며 피로함이 묻어나긴 하지만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한다. "배를 타고 우리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5~6년 후에도 다시 올까? 미디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상황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도 일본의 원전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후쿠시마 재난 이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벌써 2년 넘게 지났는데…." 그가 자기 자신에게 나지막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번역 : 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2014년 3월호) 제공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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