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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탕에 숨겨진 비밀? 유럽을 "들었다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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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탕에 숨겨진 비밀? 유럽을 "들었다 놨다"

[프레시안 books]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

직장 근처에 꽤 유명한 대구탕집이 있다. 점심시간 줄서는 건 기본, 야구 야간경기 다음날은 더욱 미어터진다. 자리에 앉으면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긴 탕이 나온다. 고춧가루가 옅게 풀린 국물에 큼지막한 대구 토막이 2~3 개 잠겨 있다. 고추장을 진하게 푼 여느 집 생태 탕과 달리 깔끔한 맛이 입에 착 감긴다. 약간 퍽퍽한 느낌의 대구 살은 유난히 하얗다. 국내에선 동해와 남해의 수심 50~450미터에서 주로 잡히는데 정확한 이름은 '태평양 대구'. 요즘은 근해 어획량이 줄어서 러시아 오호츠크 해나 알래스카 연안에서 잡은 것을 수입한단다.

몇 년째 별 생각 없이 탕을 먹다가 우연히, 마크 쿨란스키의 책 <대구>(박중서 옮김, 알에이치케이코리아 펴냄)를 접하게 됐다. 부제 '세상을 바꾼 물고기의 일대기'가 거창하단 생각부터 들었다. 주인공은 태평양 대구의 사촌인 대서양 대구. 한낱 물고기가 무슨 역사까지 바꿨단 말인가. 이야기는 대구 씨가 말라 조업 제한이 내려진 캐나다 북동부 어촌 취재로 시작한다. 심드렁한 프롤로그. 우리 바다의 민어, 홍어도 씨가 마른지 오래, 어족 자원 남획에 대한 흔해빠진 경고로 들렸다. 그런데 1부 '한 물고기의 이야기'부터 푹 빠져 들었다. 굵직한 사건이 있는 곳에 물고기가 있었다.

민족 확산의 에너지원

▲ <대구>(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알에이치코리아
985년 노르웨이를 떠난 바이킹 일족이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를 거쳐 북미의 뉴펀들랜드를 발견한다. 척박한 동토 출신인 바이킹이 오랜 항해와 탐험을 할 수 있었던 건 이들에게 말린 대구가 있었기 때문. 대구 살은 지방이 거의 없고 단백질 함량은 18%나 된다. 말린 대구는 농축 단백질 덩어리다. 고대부터 대구의 주어장인 북해, 발트 해 주변 주민에겐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의 소수민족 바스크 인들은 제일 먼저 북미의 뉴펀들랜드 대구 어장을 발견했다. 이들은 다른 나라들이 모르게 대구를 잡아서 서유럽과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 공급했다. 바스크 인들은 대구 어장의 위치를 비밀에 부치고 다른 민족에게 알려주지 않은 채 500년 간 대구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대구 소비를 촉진한 것은 중세 가톨릭교회였다. 교회는 예수의 수난을 기리는 40일간의 사순절을 포함해 각종 기념일에도 육식을 금지했다. 일 년의 반 정도를 동물의 고기 대신 소금에 절인 대구가 식탁에 올랐다.
15세기 말 지리상의 발견 이후 유럽의 팽창기, 대구는 또 다시 큰 역할을 한다. '신세계로의 열대 항해가 늘어나면서 대구가 선원들을 먹여 살리는 식량'이 됐다. 보관과 영양 면에서 대구만큼 뛰어난 식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양을 통한 민족이동과 확산의 에너지원. 이쯤 되면 일대기를 쓸 만한 물고기임이 틀림없다.
바다의 골드러시

신대륙 발견 이후 대구는 유럽 각국과 미국 이민자들의 돈줄이 된다. 1497년 탐험가 존 캐벗이 북미의 뉴펀들랜드에 도착한 후, 대구 골드러시 열풍이 일어난다. "그곳의 바다에는 물고기가 득실거려서 그물뿐만 아니라 돌멩이가 담긴 바구니를 바다 속에 넣어서도 퍼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바스크 어부들이 비밀리에 독점하던 어장이 알려지자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선단이 바다를 메웠다.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영국 이민자들도 대구 잡이에 뛰어들었다. 돈이 넘치고 사람이 모이면서 보스턴 같은 대도시가 생겨났다. 대구 덕분에 부자가 된 사람들은 '대구 귀족'으로 불렸다. 물고기의 얄궂은 운명은 이쯤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구는 카리브 해의 설탕 플랜테이션 농업을 지탱해준 에너지였다. 18세기부터 영국과 프랑스 농장주들은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흑인 노예를 동원해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수 십 만 명의 노예가 열대의 땡볕 아래 일하려면 소금과 단백질이 꼭 필요했다. 농장주들은 노예에게 값싼 염장 대구를 먹였다. 뉴잉글랜드의 대구 귀족들은 최상품은 유럽에 수출하고, '서인도제도급'의 저급 대구를 농장주들에게 팔아 돈 방석에 앉았다. 어떤 상인들은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거기서 염장 대구와 노예를 교환해서 서인도제도의 사탕수수 농장에 팔아 치우고, 다시 사탕을 뽑아내고 남은 당밀(糖蜜)을 사서 럼주를 만들어 파는 3각 무역체제가 완성됐다.
▲ 대구. (출처 : 위키피디아)

상업적으로 멸종한 대구
1885년 캐나다 농업부의 한 관리는 '지난 300년 동안 캐나다 근해에서 막대한 양의 물고기가 잡혔지만 여전히 고갈에 대한 암시는 전혀 없다'고 보고한다. 한 번에 900만 개의 알을 낳고 번성하던 대구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20세기 들어 돛대가 없는 동력어선, 바닥까지 훑는 저인망, 급속 냉동 기술이 도입되면서 대구의 남획에 가속도가 붙는다. 탐욕스런 인간들은 군사용으로 개발된 수중 음파탐지기까지 동원해 싹쓸이에 나섰다.

1970년대 대구 어획량이 줄어들자 유럽 각국은 자국 육지로부터 200마일까지의 바다를 영해로 정하고 타국의 어로를 금지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슬란드와 영국은 몇 번의 대구 전쟁을 치른다. 1994년 캐나다 정부는 대서양 대구의 조업을 전면 중지시킨다. 현재도 대서양 연안의 각국은 쿼터 제한을 두고 소규모의 어로만 허용하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에도 이제는 대구가 없다. 산업 혁명기 노동자들이 허기진 배를 채웠던 이 음식의 주재료는 대구였다. 영국에서 물고기란 곧 대구를 뜻했는데 이제는 다른 물고기를 쓴다. 1천 년간 대서양 연안의 인류를 풍족하게 먹여주고 역사의 드라마를 함께 만들었던 대구. 그 흔했던 물고기를 맛보는 일은 이제 소수 부자들만의 특권이 됐다. 쿨란스키가 책 곳곳에서 소개하는 각국의 대구 요리법을 읽으며 상상만으로 입맛을 다셔야만 하는 존재로 남았다.

▲ <해삼의 눈>(쓰루미 요시유키 지음, 이경덕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뿌리와이파리
한 생물 종(種), 그것도 바다에 사는 것을 소재로 국내에서 출간된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절판된 <조기에 관한 명상>(주강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해삼의 시각으로 중국, 일본, 동남아 해양국 간 해삼교역 루트의 자연환경과 문화를 파헤친 <해삼의 눈>(쓰루미 요시유키 지음, 이경덕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이 있을 뿐이다. <해삼의 눈>에서 저자는 자신의 시도를 '해삼을 빌려 인류, 인간족의 발걸음을 그려내려고 하는 것은 국가사관, 중앙주의 사관에 이의신청을 하기 위함'이라고 선언한다. 쿨란스키의 <대구>는 역사서술의 방법론을 정면으로 거론하지도 않고 과격한 환경주의자의 관점에서도 비켜나 있다. 대구 요리를 사랑하는 미식가의 입맛, 한때 대구 잡이를 했던 어민의 경험, 저널리스트의 관찰력과 비판적인 시각으로 대구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대서양의 해양경제, 생활사, 환경사를 이렇게 재미있게 쓰기도 힘들 것이다. 과거를 보는 관점의 신선함, 스토리 구성의 긴밀함도 좋다.

마지막에 던지는 메시지도 의미심장하다. '고래를 사냥하는 사회'는 고래의 멸종위기로 '고래를 구경하는 사회' 로 바뀌었다. 지난 1000년간의 남획으로 대구를 낚시하던 사회는 대구를 요리책에서만 상상하는 사회로 갈 수도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삼각지에 몰려있는 대구탕집들이 생선이 잡히지 않아 문을 닫는 세상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저술 <대구>는 출간 이후 많은 작가들을 자극해서 여러 물고기가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대구처럼 풍부한 줄거리를 품고 있는 어족은 다시는 없지만, 그 나름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가진 경쟁자는 여럿 있다. 영어권 책 중에서 '장어', '철갑상어' '연어'가 눈에 띈다. <대구>가 16년 만의 훌륭한 번역으로 독자를 찾은 것처럼, 아래 책들이 우리 글로 나와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Caviar: The Strange History and Uncertain Future of the World's Most Coveted Delicacy.』 (by Inga Saffron)
세계 3대 진미라는 알젖 '캐비어'를 품은 죄로 멸종위기에 처한 철갑상어를 다뤘다. 캐비어의 나라인 러시아 특파원을 역임했던 저자의 경험이 잘 담겨있다.

『Eels: An Exploration, from New Zealand to the Sargasso, of the World's Most Mysterious Fish』 (by James Prosek)
화가인 저자가 미국 동부의 뱀장어 치어 유통과정을 추적하면서 풀어낸 장어 이야기. 미국 공영방송 PBS가 책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King of Fish: The Thousand-Year Run of Salmon』 (by David Montgomery)
지형학 교수인 저자가 북미, 유럽의 연어 회유 경로가 인간에 의해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오염되어 온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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