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의 숙제는 희생자들이 왜 그런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는지 밝히고, 잘못이 있는 사람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지우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의 생각과 문화와 사회 전반을 바꾸는 것이다. 어떤 대단한 결심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찌 보면 운명처럼, 나는 수빈이와 모든 세월호 희생자 및 피해자들이 남긴 숙제를 해결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13쪽)
안산에 6년째 살고 있는 오준호 작가는 그렇게 '운명처럼' 세월호 재판을 기록하게 되었다. 우연히 세월호 참사 후의 안산의 모습을 르포로 써달라는 <한겨레21>의 원고청탁을 받으면서 그는 공동체에 깊이 끼어들게 되었다. 단원고 주변의 상인이나 주민들을 만나면서 단원고와 관계된 기억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에 참가했고, 그는 재판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10일 세월호 선원에 대한 첫 공판 기일이 열린 이후, 오준호 작가는 유가족과 함께 안산과 광주를 오갔다. 선원 재판은 지난해 11월 11일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5개월간 매주 2~3회씩 총 33차의 공판이 열렸다. 안산지원 법정으로 광주지법의 공판이 원격 생중계 된 8월 19일부터는 안산에서 공판을 기록했다. 6월 20일 시작된 청해진해운 및 관계자 재판도 방청했다. 이 재판은 지난해 11월 20일 판결이 내려졌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오준호 작가가 세월호 선원 재판을 중심으로 직접 공판을 찾아가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세월호 사고를 시간 순서에 따라 재구성한 책이다. 오 작가는 지난해 5개월 간 재판을 기록하고, 12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올해 2월에 글을 마무리 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세월호를 기록하다>가 세상에 나왔다.
3월 말, 오준호 작가를 만났다. 알바연대 후원회원인 그가 "책이 나왔다"며 여러 권 들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리고 앉아서 간단하게 이야기한다는 게 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필자)
하루에 한 자루, 그리고 수첩 한 권
"2014년 6월 10일,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세월호 선원 재판의 첫 공판 준비 기일이 오후 2시부터 열릴 예정이었다. 방청석에서는 안산에서 내려온 백여 명의 세월호 사고 유가족과, 진도에서 올라온 실종자 가족들이 빽빽이 앉았고 미처 못 앉은 사람은 별도로 마련된 보조 법정에서 화면으로 재판을 지켜봤다. (…) 실제로 이날 법정은 긴장감이 팽팽했다 유가족들이 법정에 들어오기 전에도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진실 규명", "살인자 처벌" 등의 피켓을 들고 입정하려는 유가족을 법원 직원이 제지하자 유가족들이 흥분했고, 검색대가 넘어지고 고성이 난무했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1장 광주법원 가는 길, 27~28쪽)
- 재판의 기록 과정이 궁금합니다.
"오전 10시부터 공판이 시작되는데, 안산에서 새벽 5시부터 버스를 타고 내려갔어요. 재판이 끝나서 다시 안산으로 오면 밤 11시였고요.
미리 노트북을 허용받은 기자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변호사들을 제외하고 노트북을 사용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수첩으로 일일이 받아 적었죠. 공판을 갈 때 수첩 한 개씩 사가지고 가요. 재판이 끝나고 나니 수첩이 한 30개 되더군요.
팽목항과 광주법원 가는 버스를 타고 자주 다녔는데, 유가족이 아니니 눈에 띄었는지 말을 걸어주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렇게 안면을 익혀가면서 때로는 유가족으로부터 자료 협조를 받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재판에서의 의문점을 끌어내기도 했고요, 반대로 답을 찾기도 했어요.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 분과장이었던 박수현 학생 아버지인 박종대 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어떤 유가족들은 재판에 거의 출근하다시피 하시고 저보다도 더 열심히 기록하셨어요.
원래 세월호 재판을 기록하는 것을 여름까지만 하자고 생각했어요. 예정된 다른 작업들이 있어서인데요, 그 사이사이 나오는 세월호 관련 서적들을 보면서 제대로 된 기록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 재판을 다니면서 유가족들과도 많이 이야기 나누셨겠어요.
"가서 재판만 보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가지 않았지요. 유가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자식을 잃은 분들에게 쉽게 말을 걸기 힘들었어요. 4월 16일 사고가 일어나고 안산에 분향소가 생겼는데, 그 주변을 서성이다가 유가족들에게 ‘기록단’이라며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때마침 전국적으로 서명운동을 시작할 때여서 유가족들은 서명용지를 발송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말문을 텄지요."
진실을 찾아가는 재판의 기록
"선내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방송은 약 9시 50분까지 한시간동안이나 반복된다. 침몰하는 배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 방송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78쪽)
"이 증언을 보면, 일단 세월호 승무원들에게 비상시 방송 매뉴얼이 수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무장이 지시한 '안전 방송'은 그 의미가 불확실하며 강혜성은 그것을 선내 대기하라는 방송으로 짐작하여 방송한다. 물론 상황 파악도 안 되었는데 무작정 퇴선하라고 방송하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 상황에서 취해야 할 합리적인 매뉴얼은, 일단 승객을 진정시킨 다음 상황을 설명해주고 구명동의를 입게 하든지 소직하게 하여 퇴선이 가능한 곳으로 차분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배가 기우는 상황에서도 계속 "선내 대기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2장 침몰, 81쪽)
- 33차례의 재판 기록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을 것 같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머리가 멍한 날도 많았어요. 설령 세월호 사태에 어떤 배후 세력이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한 번에 배를 넘어가게 할 수는 없어요. 배가 뒤집어 지려면 수많은 요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재판에서 나오는 여러 전문적인 증언까지 이해하기 위해, 조선공학 책을 보면서 선체역학과 복원성 등을 공부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해도, 설명도 어려웠으니까요. 법정에서 상영된, 세월호에 화물이 실리는 CCTV 동영상 증거자료를 보면서 몇 시 몇 분에 어떠한 차량이 선적되는지도 꼼꼼히 확인해봤습니다. 세월호 침몰은 배의 복원성, 조타의 잘못, 화물의 과적 등 복잡한 상황이 결합해 만든 것이었어요."
-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차근히 읽다보면, 당시 상황이 어떠한지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픕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유가족의 마음을 공감하는 책이라면,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객관적 사실을 추적하는 작업이었는데요, 이 사태에 대해 폭발하는 감정으로부터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선원 등 피고인의 변호인은 유가족에게 지탄도 받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들이 선전해서 재판에서 더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이를 통해 진실에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랐죠.
가족들의 편에서 제가 어떤 악의 세력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면 책에 대한 관심을 더 끌지는 모르지만, 저는 복잡하게 얽힌 사실관계 그 자체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아시다시피 어떤 이들은 세월호를 흔한 '교통사고'라고 하고, 또 반대편에서는 '의도된 학살'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 사이에서 어떤 관점에서 사고를 바라봐야 할까, 그 위치를 찾는 게 힘들었고 자칫하면 이 책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 책'이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요."
-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의혹이 있잖아요. 세월호 재판을 기록하면서 의혹을 발견하셨나요?
"사람들은 세월호와 관련한 무수한 언론 정보를 바탕으로 이 사고를 바라보고, 일부의 정보들을 연결해서 여러 의혹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많은 증거, 증언을 접하고 기록을 살펴본 저는 어떤 악한 기획자가 배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고는 복잡한 요인에 의해 발생했고, 정부 관료, 기업, 자본의 복잡한 문제가 축적되었습니다. 어느 한 사람(개인)의 의도나 과실만으로 벌어진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그런 점이 이 사고의 더욱 무서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탈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시스템 그 자체가 우리를 갑자기 저 바다에 수장시킬 수 있다는 것, 불운한 일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더 넓고 근본적인 진실규명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구조 실패의 책임을 촐동한 대원들의 판단력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었다. 앞서도 보았지만 상황실과 현장 사이, 헬기와 구조 요원 사이, 헬기와 123정 사이에 유기적인 의사소통이 없었다. 각자가 눈이 보이는 대상만 구조하는 데 급급했지 최상의 결과를 위한 협력적 구조 활동도 진행하지 못했다. 거기에는 통신 장비와 시스템의 부실함도 큰 몫을 한다.
그런데 2013년 해양경찰 백서를 보면, 해양경찰은 현장 출동 세력과 지휘부 사이에 최첨단 통신 시스템을 구축해 현장 지휘 능력을 높였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 해경 지휘부의 자화자찬과 현장 구조의 부실함, 이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 (3장 구조)
- 재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어떤 장면이었을까요?
▲ 오준호 작가. ⓒ강서희
"'저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사람들이 대처하는 행위가 많은 의문을 품게 했어요.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직원은 선박의 하급 직원 중 한 명인데 배에 물이 들어찰 때까지도 그 방송을 했어요. 그는 아마도 승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 방송이 필요하다고 여겼을 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했고, 극히 상식적인 판단조차 못했던 것입니다. 자신도 죽을 뻔하면서도 왜 그렇게 방송을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해경도 마찬가지였는데, 신고를 받고 충실하게 최고 속력으로 출동까지 합니다. 그러나 도착해서는 퇴선 방송조차 않고 '어어' 하다가 나오는 사람만 구했다고 하죠. 하라는 건 열심히 하지만 어떤 적극적인 상황 판단조차 못하는 '성실한 관료주의'이지요. 해경 상황실에서조차 구조 세력들을 효율적이고 유기적으로 지휘하지 못하고 극히 무능력했습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구가 그토록 무능하고 소극적이었다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검사는 결국 기소 가능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월호의 진실 규명은 형사 재판을 통해 진행되었고, 검찰이 쳐 놓은 테두리 안에서만 진실 규명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사고가 일어나는데 큰 영향을 준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는 손대지 않습니다. 현행법의 한계에다 그 법의 보수적인 적용으로 소수만 처벌을 받았고 국가 시스템과 고위층의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았지요."
- 아직도 제대로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월호 재판은 100%의 진실규명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러나 진실규명으로 가는 출발점일 수 있지요. 어떤 분들은 '진실 규명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만, 미진하더라도 분명 밝혀진 것들이 있고 그것들을 가지고 당장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 만으로도 시작할 일들이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오래된 연안여객선에 대해 규제를 하거나 운항관리체계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월호 문제가, 정부 여당의 불투명하고 무례한 태도가 큰 이유이지만, 좌우 갈등처럼 바뀌어 버리면서 디테일한 개혁 과제들은 사라져버리고 있어요. 우리가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잊지 말자'고 말하지만 잊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요.
"세월호 사태는 이 사건에 연루된 노동자와 승객, 청소년들에게 권리가 하나도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기업의 탐욕스런 이윤추구를 제어할 제도가 있었다면, 청소년에게 발언권이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청해진 해운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회사가 과적할 때 선원들이 '배를 몰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안전을 소홀히 했다가 '기업이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기업이 안전에 보다 신경을 썼을 것이고, 청소년들이 유권자 집단으로서 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국회와 정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면 수학여행 같은 중요한 사업에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했을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민주주의가 더 강화될 때 세월호 사고와 같은 일을 막아낼 수 있어요."
"평화학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를 접하는 순간부터 우리가 느낀 것은 뼈저린 무력감, 바로 그것이다. (…) 우리가 이 무력감을 극복하는 것이, 더 이상 이런 무력감을 느끼게 만드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참된 민주주의를 세우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세금 내고, 자기 일만 신경 쓰고, 자기와 가족에만 관심을 두는 시민으로 남는다면 이런 무력감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리란 점이다. 구조적 부정의는 몇몇 악당의 음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행, 처세, 개인적 실리, 집단의 이익이라는 이유로 거기 동참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 일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애써 눈감거나 아예 따져보지 않는 다수에 의해 파국으로 향하는 길이 닦인다. 보수주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오로지 선한 자들의 무관심이다."라고 했다.
이 참사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의 책임을 묻고 그 경중에 따라 처별하는 것과 별개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강한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에필로그, 327~328쪽)
● 알바노조는 4월 11일 오후 7시, <세월호를 기록하다> 오준호 작가와 함께 저자와의 대화를 진행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알바노조 02-3144-0936,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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