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부터 우리 삶의 패턴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아궁이부엌 한 개에 양쪽으로 방이 두 개인 일곱 평 흙집인데, 마루가 없어서 방문을 열면 바로 밖으로 이어집니다. 옷에 흙이나 숯 검댕이 잔뜩 묻은 채로 방 안팎을 다닐 때에는 다소 불편했습니다. 딱히 욕실이 없어 봄·여름·가을에는 냇가에서 달빛 목욕을 하고, 겨울에는 가마솥에 물을 끓여 마당에 있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 몸을 담그는 낭만적인 노천욕을 즐기던 삶이었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그것도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지난 여름 계속되는 장마로 꼼짝없이 한 평 방 안에만 갇혀 두 달 가까이 지내던 페달이 입덧 우울증을 호소하며 "이대로는 못 살겠어!"를 외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시골 사람, 특히나 출퇴근 없이 집 자체가 삶의 터전이자 작업 공간인 우리에게는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새해 2월 말이면 나올 비파(아기의 태명)를 위해서 겨울이 오기 전에 공사를 마감해야 한다는 시간 제약과 또 전기를 쓸 수 없고 차나 큰 장비가 들어오기 어려운 사정이라는 조건까지 더불어 꽤 힘든 처지임에도 집 짓기를 감행했습니다. 원래 있던 집 한 쪽을 벽 삼아 기존의 큰 방과 이어내어 거실을 만들고, 그 공간에 아궁이 욕조를 만들며, 내친김에 작은 다락방도 짓겠다는, 작지만 원대한 꿈을 꾸며 문구점에서 산 모눈종이에 밤을 새워가며 설계도를 그렸습니다. 그렸다가 지웠다가 다시 그리고, 손에 하도 들고 다녀서 너덜너덜해진 종이가 가방에 한가득이었어요.
초보인지라 망치질 하나 하는 데도 생각이 많았고, 손이 서툴고 실수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손수 집을 짓는다는 일은 실로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실수가 두렵고 혹시나 기울어진 집을 짓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들었지만, 내가 사는 공간인데 조금의 어설픔과 적당한 실수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이 용서해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위로가 됐어요.
'집을 짓는다'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큰 뜻이 있습니다. 입는 옷을 스스로 재단하고, 먹는 음식을 손수 지으며, 살 공간을 내 손으로 만든다. 입고(의) 먹고(식) 사는 것(주).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을 '짓는다'고 합니다. 짓는 행위를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저희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면서 참으로 고마운 일이기도 합니다. 늘 부족하지만, 옷도 지어 입고 농사도 지어 먹고 있었으니 문제는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건강하고 맑게 지어진 집에 들어와 살면서도 저는 늘 '스스로 지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삶을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숲에서 살고 있지만, 집을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지어진 집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늘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렇지만 귀농하고 이 공간에 편안하게 스며들기 전까지는 큰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집 짓기는 언젠가 한번 해볼 수 있겠지' 정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고 아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논의하니, 집을 짓고 싶었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진행됐습니다.
유혹이 넘쳐난다, 넘쳐나
또 하나 이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남 장흥 동백숲에 되도록이면 인위적인 환경 유해물질을 가지고 오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집 공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달과 저는 기초 공사를 위한 콘크리트나 시멘트, 벽 단열을 위한 스티로폼이나 비닐, 천장 방수를 위한 루핑 같은 화학 처리된 물질들 그리고 화학접착제, 페인트, 합판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집에 들어오는 재료는 "우리가 혹시 이곳 동백숲을 떠나게 될 때에 집에 들어간 모든 재료들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재료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보고 또 고민했습니다.
사실 '자연의 집'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로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지을 때 마치 그 집이나 그곳에 사는 주거인이 영원히 살 것처럼 집을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새로 짓는 행위보다 없어지는 행위가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오래전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지은 집들은 오래돼 그대로 주저앉아도 나무며 흙이며 돌이 그 자리에 그대로 돌아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 후손들이 새 집을 지을 수 있는 여지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요즘 집은 허물어지거나 해체될 때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많은 환경 유해물질로 뒤덮여 땅과 바다와 하늘을 오염시킵니다.
2층 다락에 누워 천장으로 밤하늘 별을 보고 싶다
재료 선택에서 스스로 많은 제약을 둔 뒤 설계 과정에서 욕심이 났습니다. 집 안에 누워서 천장에 달린 유리창으로 별을 보고 싶어졌어요. 천장 지붕은 서까래 위에 소나무 개판을 얹고 그 위에 흙 반죽과 톱밥을 올리고 함석을 덮기로 결정해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경사진 지붕 위에 유리를 달려면 어찌 됐든 실리콘 총으로 틈을 메우지 않으면 힘들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반드시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실리콘을 쓰지 않고 싶었던지라 페달과 저는 서로 얘기를 해보고 나름 단순하고 명료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별이 보고 싶다면 집 밖으로 걸어 나가 마당에서 보면 되지 않을까?"
우리는 그 뒤로 집 짓는 행위를 좀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페달과 저는 살면서 욕망을 억제하는 방향이 아니라, 욕망의 방향을 바꾼다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 짓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고 싶을 것을 하지 못하고, 쓰고 싶은 것을 못 쓰게 된다면 얼마나 힘든 삶일까?' 하고 서로에게 묻기도 했지요. 하지만 우리는 하지 못해서 아쉬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른 것을 하면 되니까요. 집 안에서 별을 못 본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집 밖에서 별을 볼 수 있는 것을 고마워하자면서 말이죠.
집 짓기는 블랙홀이다
집 짓기는 모든 것을 빨아들였습니다. 먼저, 그렇게 큰 나무들을 높은 곳에 들어 올려 세운다는 것 자체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 자연스레 다른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요. 집 공사가 시작된 지난해 10월부터 다른 일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겨우내 부지런히 마련해둬야 하는 한 해살이 땔감들도, 만들기 모임을 코앞에 두고도 재료 채취를 못하고 있는 바구니들도, 모두 집 짓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가난한 살림 밑천도 빨려 들어가는 데는 예외가 없습니다. 더불어 집을 한 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데, 내 젊음도 빨려 들어갈까 봐 두렵기까지 하더군요.
집 짓기는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우리가 사는 공간에는 전기가 없으니, 전동기구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원형톱이면 2초에 잘리는 일을 손톱으로 모두 땀 흘려 일일이 잘라야 하며, 전동드릴이 없으니 드라이버로 피스못을 하나하나 돌리고, 짜구와 끌과 망치로만 일일이 나무 홈을 파야 했습니다. 옆에서 일하는 걸 지켜보던 사람들이 "드릴은 충전해서 쓰고 엔진톱은 기름 넣어 들고 다니니까 쓸 수 있을 테고 하루에 몇만 원 주면 디젤발전기를 임대해서 쓸 수 있는데, 일을 왜 이리 어렵게 하려고 하는가?"라고 묻더군요. 그러나 우리 삶의 방식을 상식과 효율성이라는 틀을 가지고 본다면, 그 틀에서 벗어나려는 행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석유와 전기를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집 짓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큰 공사고 어려운 일이라 유혹은 있었지만 그래도 굴착기같이 큰 중장비나 석유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고도 집 짓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보고 싶었나 봅니다. 그 증명을 하느라, 도와주러 온 친구들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전기를 아예 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열두 자(3미터 60센티미터)가 넘는 크고 굵은 나무 수십여 개를 일일이 손대패로 정리할 수 없어서, 전기가 들어오는 마을 아랫집에서 전기대패를 썼고 또 제재소에서 나무를 가져오고 실어 나르고 자재를 사러 돌아다니며 많은 화석 에너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일은 모두 손이나 인간 동력을 이용하려 노력했습니다. 삽과 곡괭이로 기초 공사를 하고, 산에서 굴려서 움반한 돌로 주춧돌을 삼았습니다. 계곡에서 물을 길러와 일일이 손 양동이로 옮겨 전달해 흙 반죽을 하고, 기둥이나 보 도리를 5미터 이상 들어 올릴 때도 숲에서 대나무를 잘라와 삼각대를 만들어 도르래를 단 후 밧줄에 나무를 묶어 오직 사람들 손으로만 잡아당겨 올렸습니다.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큰 나무가 줄에 매달려 하늘에 둥둥 떠올랐을 때는 환희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현장에서는 날카로운 기계음보다는 노랫소리와 계곡물소리, 그리고 바람소리가 들렸습니다. 간혹 장단을 맞추듯 망치소리도 들렸고요.
함께 짓기
마을 분께 "과거에는 집을 어떻게 지었느냐?"고 여쭤봤습니다. "뒷산에서 좋은 나무를 잘라다가 마을 사람들이 같이 도와주면서 잔치처럼 지었지”라고 답해준 분이 있었습니다.
저희도 많은 분이 도와주셨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집 짓는 일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 여기저기 소문을 내니, 한걸음에 달려와 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주, 강진, 구례, 완주, 부산, 제주도 심지어 일본에서 온 고마운 벗들은 두 달 동안 마을 아랫집과 동백숲 공사 현장을 밤낮으로 오가며 일을 도왔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자며 일했던 아랫집도 전기와 따뜻한 목욕시설이 없는 집이었기 때문에, 집 짓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안주인인 페달은 뱃속의 비파와 함께 날마다 동백숲과 마을 아랫집을 오가며 밥을 짓고 새참을 준비했으니, 오죽하면 "이러다 길에서 애 낳는 거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왔겠어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과정은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으니까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 정말이지 재밌고 신 나는 일입니다. 단순히 어떤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을 넘어 의식주(衣食住)와 관련된 일을 함께 짓는다고 할 때 행복감은 배가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빨리 지어야 한다며 시작했지만, 이 재미있는 일이 너무 빨리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마을 할매들도 나무를 지고 나르며 애쓰는 모습을 보고 손수 김치와 무시도 갖다주고, 집 짓기가 끝나면 숲으로 초대해달라며 집이 완성되기를 함께 기대해줬습니다. 이런저런 덕담과 관심 속에 우리가 이제는 마을 식구가 다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집 짓는 행위를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저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지붕 위에 있지 않았을까요? 꼭 같은 공간에서 함께 먹고 자고 사는 것이 공동체가 아니라, 큰일이 있을 때 서로 품앗이처럼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건강한 공동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집 짓는 일이 블랙홀이라, 모든 에너지가 빨려 들어가 허덕이고 가난한 살림 밑천이 구멍이 나고 꽃다운 젊음이 사그라질까 봐 아쉬워도 어쩌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에게 참 값진 인생 자체이자 추억이 될 테니까요.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5년 5월 현재 7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 바로가기 : 전국귀농운동본부)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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