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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외지 것" 소리, 안 들으려면…

[함께사는길] 귀농, 머리보다 가슴으로

강원도로 귀촌한 A씨가 있다. 땅을 사서 잡지에서 본 별장 같은 집을 짓고 꿈꾸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도시에 사는 지인들이 축하한다며 놀러 와서 주말마다 바비큐 파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맑은 공기와 텃밭에서 키운 신선한 먹을거리로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집이 마을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있어 외출했다 좀 늦을라치면, 아내가 혼자 있기 무섭다고 빨리 들어오라고 성화였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이동이 불편해지고, 하나둘 찾아오던 지인들도 뜸해졌다. 부부는 도시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고 곧 모든 걸 팔고 도시로 이주했다.

본디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일, 귀농

위 사례는 요새 늘어가는 귀촌인의 모습을 예를 들어 설명해본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2010년 귀농·귀촌한 가구 수는 4067가구이고, 2014년에는 4만 4566가구이다. 불과 4년 만에 10배 이상이 귀농·귀촌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중 3만 가구 이상은 귀촌자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농사를 지으면 귀농, 텃밭 농사 정도를 지으며 전원생활을 하면 귀촌이라고 편의상 구분 지을 수도 있지만, 사실 어디서도 귀농과 귀촌의 정의를 명확히 하는 곳이 없다. 통계청에서도 단지 행정적으로 농지원부의 취득이나 경작규모를 추산하여 귀농과 귀촌을 정의하였을 것이다. 각 지자체의 지원조례를 살펴보면 귀농과 귀촌의 정의가 전부 다르게 해석되어 있다.

▲ 귀농운동본부 소농학교의 손모내기 모습. ⓒ전국귀농운동본부


사실 '귀농(歸農)'이라는 단어도 1996년 귀농운동본부가 생기면서 만들어졌다. '귀(歸)'는 '본디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본디 있던 자리가 자연이며 사람들이 본디 하던 일이 '농(農)'인 것이다. 물론 지금 여기저기에서 쓰이는 귀농에는 그 뜻이 퇴색되었지만, 농으로 돌아가는 삶에서 귀농과 귀촌을 행정적 편의로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귀농자이든 귀촌자이든 이제 남은 인생을 우리가 본디 가지고 있었던 농적인 삶으로 돌아가 산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귀촌인 A씨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바로 본디 가장 중요한 농이 빠져 있는 것이다. 단순히 텃밭에 채소를 심어 우리 가족만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으면 되는 게 아니다. 농촌에 들어간다는 것은 구성원 모두가 농으로 연결된 거대한 가족 공동체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대를 이어오며 길 하나, 나무 하나에도 역사가 있고 마을 사람 하나하나의 모든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노동력을 서로 나눠야 하는 농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혼자 외로운 섬처럼 살면 마을 안에서 절대로 버틸 수 없는 공동체인 것이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골살이는 매우 힘들어진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다. 문경으로 귀농한 B씨는 어느 날 트럭에 농자재를 가득 싣고 마을에 진입하던 중 옆집 할아버지의 감나무 가지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귀농자 B씨는 길에 뻗은 나뭇가지라 다음에 죄송하다고 말하면 되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옆집 할아버지는 생각 외로 너무나 화를 내며 파출소에 신고까지 하셨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옆집 할아버지가 너무했다 싶다. 그 정도 일로 텃세를 부리는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농적인 삶을 이해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름 한낮 불볕더위를 이겨내며 풀을 메고 거름을 주며 애지중지 키운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다가 가지 하나가 부러져도 농부의 가슴은 덜컹한다. 하물며 10년 이상을 소중히 키운 감나무이다. 곶감을 만들어 소중한 부수입도 올릴 수 있는, 할아버지에게는 귀한 나무인 것이다. 부러진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귀농인 B씨의 태도에 더 화가 났을 수 있다. 아마 귀농인 B씨는 온 마을에 이 소식이 퍼져서 '저 몹쓸 외지 것'이라고 한동안 불리며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떤 고민을 해야 하나

앞에서 든 사례들은 귀농인들이 흔히 하는 실수이다. 귀농운동본부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귀농상담 전화를 받다 보면 대부분은 '내가 귀농하는 데 어느 정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 '소득을 많이 올릴 수 있는 농사는 무엇인가?'를 궁금해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귀농에 대한 지원금은 기대 안 하는 것이 좋고, 소득을 많이 올릴 수 있는 농사도 없다고 생각하면 좋다. 예비 귀농인이 정말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땅이나 집이 아니라, 내가 왜 귀농을 결심했는지, 나는 어떤 부분에 대해 자급할 수 있고 어떻게 자립을 이루어 낼 것인지, 도시에서의 소비적인 삶에서 벗어나 생명을 생산하는 일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자기의 지나온 삶을 재조명 해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귀농은 이제 남녀노소 누구나 관심을 두는 주제가 되었고 이에 따라 교육기관도 서울·경기에만 40여 단체가 생겨났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을 바로 이야기하는 곳은 별로 없다. 교육소비자의 입맛에 맞추어서 농사와 경영을 접목하는 환상을 주입한다. 6차 산업, 융복합, 창업, 경영, 마케팅, 창조농업 등 실체가 없는 주제를 가지고 강의장에 앉아서 머리로 농사를 지으며 블루오션인 농촌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머리로 공부한 농사, 주식처럼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농사를 꿈꾼다면 그냥 도시에 남는 게 더 현명한 일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 귀농인들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 만화방. ⓒ전국귀농운동본부

그렇다면 우리가 참고할만한 귀농인의 사례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전북 부안의 한 가족 소농은 3000여 평의 농지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기본적으로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최소한의 자급을 목표로 삼는다. 아이들은 초여름 딸기를 시작으로 오디·앵두·보리수·참외·토마토·수박·복숭아·키위·포도·으름·무화과·배·감·대추·밤 등 1년 내내 제철 과일을 자급하여 먹는다. 무투입 자연재배 방식으로 농작물을 길러서 대부분 직거래로 유통한다. 씨앗은 자가 채종해 자급하고, 집과 창고도 손수 지으며 가족 구성원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다. 욕심 없이 그저 자신이 가는 길이 자연을 위해, 농촌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믿는 소농이다.

충남 홍성에서는 귀농인들이 모여 협동조합 형식으로 호프집과 만화방을 만들었다. 마지막 남았던 호프집이 없어지자 젊은 귀농자들이 힘을 합하여 마을 공동 출자 형식으로 호프집을 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쁜 농사철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 양질의 만화책을 갖춘 만화방도 만들었다. 만화방은 아이들이 안전한 시설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전남 영광의 귀농자들은 일터 공동체를 만들어 시골의 노인들을 위한 복지 사업을 벌인다. 구멍가게조차 없는 시골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트럭을 한 대 구매하여 생필품을 싣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물품을 공급하고, 할머니들과 함께 지역에서 농사지은 모싯잎으로 떡을 만들어 팔고 있다.

전북 순창에서 건축을 하는 귀농자는 젊은 청년들을 위한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 큰 창고 하나를 임대하여 5~6명의 청년들이 지역에서 봉사하거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안착할 수 있는 완충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전남에서는 지역별로 귀농인들이 모여 장터를 만들고 있다. 사라져 가는 재래시장을 다시 복원한다는 의미도 있으며 또한 귀농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문화적인 욕구도 충족시키는 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공연을 하거나 수공예품을 팔고 농산물도 서로 교환한다. 한 달에 한 번 장터를 통해 힘들었던 귀농살이에 대해 서로 격려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 젊은 귀농자들의 공동 출자로 문을 연 동네 술집. ⓒ전국귀농운동본부

가슴으로 꿈꾸라!


위 사례들은 자연에 해를 가하지 않고 소농으로서 자립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자 귀농 운동이다. 그러면서 점차 공동체가 회복돼가고 나만이 아닌 우리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일들이 진정한 시골살이의 기쁨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수많은 소농 농가들이 형편없는 농산물 가격에 시름에 잠기고 부족한 기반시설에 힘들어하고 있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자면 귀농은 머리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도시에서 머리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가슴으로 살 준비를 해야 한다. 논에서 풀을 매다 별안간 불어온 바람을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가슴으로 살 준비가 되었다면 도시를 하루빨리 탈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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