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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에서 자란 아이, 어느덧 열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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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에서 자란 아이, 어느덧 열다섯

[귀농통문] 귀농과 자식농사

1998년, 나는 귀농과 결혼을, 남편은 졸업과 귀농과 결혼을 했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시골에 와서 뭐하러 이렇게 고생해요?" 궁금해서 묻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칭찬과 격려를 잊지 않는다. 아마도 동갑내기 어린 부부는 그 사랑을 받고 한 해 한 해 살아왔을 거다. 시골에서 사는 18년 동안 해온 포도 농사, 곶감 농사, 쌀 농사, 소소한 밭 농사와 동물들 그리고 자식 농사. 그중에 자식 농사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출산


2001년 겨울, 향유가 태어났다. 향유 덕분에 먹을거리를 고민하고 출산에 대해 공부하면서 산모가 환자로 불리는 병원보다는 조산원을 원하게 되고, 그런 인연으로 둘째 선린이는 집에서 낳는다.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최민희 지음, 한 권짜리 초판은 '다섯수레'(2001)에서 두 권짜리 개정판은 '21세기북스'(2007)에서 펴냄)를 읽어가며 입덧을 이겨내고 합장합척운동, 모관운동, 붕어운동, 등배운동 들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분만을 준비했다. 책의 가르침대로 100분 나체요법과 냉온욕을 원한다고 조산원의 아기 할매에게 부탁하고, 이후 향유와 선린이는 면역력이 좋아지도록 1년이 넘는 시간을 꾸준히 냉온욕을 했다.

가장 중요한 건 태어나서 하는 삼일단식(초유가 돌 때까지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지 않고 굶긴다)이다. 하늘이 허락한 자연스러운 단식 기간이기에 이틀을 꽉 채우고 돌기 시작하는 초유를 먹는 아기는 뱃속의 태변을 시원하게 내보내고, 드디어 황금빛 찬란한 똥을 누게 된다. 향유와 선린이 때 경험한 일이라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다가온다. 만약 칭얼댄다면 빈 젖을 물리면 된다. 황달이 있어도 놀라지 말고 모유 수유, 집에서는 천 기저귀, 오곡가루로 이유식, 구죽염은 필수품… 들로 영아기를 지냈다.

▲ 시골 침대차 외발수레에서 곤히 잠든 향유. ⓒ김현
향유 나이 세 살(16개월쯤), 이때부터 포도밭 생활이 시작된다. 업혀서, 침대차에서(유모차, 농가 컨테이너 상자 위, 외발수레) 잠자다가, 울다가, 놀다가, 먹다가를 되풀이하며 고된 하루를 지낸다. 새벽 시간. 이때는 잠든 향유를 홀로 남겨두고 나가야 한다. 그러니 포도밭에 나가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오매불망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며 일하다가 해가 기운만 비친다 싶으면 한달음에 집으로 뛰어와 눈도장을 찍곤 했다.

처음엔 울다 지쳐 동그마니 쳐다만 보더니, 잠들기 전 "엄마 아빠 포도밭에서 일하는 거야"라고 설명하고 "일어나면 집 전화 단축번호 1번 꾹 눌러. 그럼 엄마 아빠가 번개같이 달려올게" 했더니, 다음 날부턴 걱정 따위 훨훨 날아가 버렸다. 전화벨이 울림과 동시에 남편과 나는 순간이동 속도의 그것처럼 집으로 달려가다가, 잠옷 차림에 머리는 산발인 채로 웃으며 마중 나오던 향유와 마주치곤 했다. 강아지가 친구가 되고, 포도 전지가위가 장난감이 되고, 외발수레가 침대차가 되고, 우산 하나 꽂아주면 그늘이 되던 향유의 포도밭 학교. 동네 꼬마 녀석들이 "향유는 어느 유치원 다녀요?"라고 물으면, "향유는 '향유 포도원'에 다니지" 하고 답해준다.

시골 농가의 살이가 다들 비슷하겠지만, 봄이 되면 들로 나가 쑥을 뜯고 여름이 되면 포도밭에 주저앉아 들꽃들로 반지, 팔찌를 만들고, 가을엔 포도 수확을 고사리손으로 거들다가, 곶감 철엔 땡감 하나를 집어 들어 감 껍질을 늘어뜨리며 제법 폼 나게 모양새를 만들고, 겨울엔 누구나 그렇듯 눈썰매, 얼음지치기, 눈사람…. 세 돌 무렵 어느 날엔 닭장에 들어가 닭 밥그릇에도 하얀 눈을 소복이 담아주던 향유의 1년 살이가 영화의 여느 장면처럼 눈앞을 스쳐 간다. 모종과 씨앗을 구분할 줄 알고, 파리는 물지 않아 좋고, 모기는 지저분하지 않아 좋다는 '대 긍정론자' 어린 향유의 말씀에 무릎을 탁 치며 크게 깨닫는 바도 있었다.

학교


향유에게 일부러 일찍 글자를 가르치지 않았다. 몸으로 세상을 만나고, 그렇게 천천히 몸이 깨어나자 그림으로 그 세상을 표현한다. 종이 한 장, 칠판 한가득, 방문 한쪽 면이 가득 채워지도록 그림을 그려 자신의 넓은 세상을 보여준다. 한글을 제대로 다 못 떼고 학교에 입학했는데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상관없다 하셨다.

선생님과의 인연이 참 좋았다.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끼리 합의하도록 동그랗게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주고, 받아쓰기 같은 과정은 필요 없는 과정이라 하셔서 아이들은 받아쓰기가 뭔지도 모르고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의 시간들은 학부모와 학생과 교사가 잘 어울려 신나고 재미있는 생활을 원 없이 할 수 있었다. '학교가 이렇게 학부모에게도 오고 싶고, 어렵지 않고, 유쾌한 곳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선물처럼 품게 되었다. 향유는 이렇게 좋기만 한 작은 시골학교에서 몸과 마음을 살찌워가며 무럭무럭 자랐다. 집에 돌아오면 시원한 효소를 타서 포도밭까지 배달한다거나, 정현이 언니 책을 보고 미숫가루 다식을 만들어서 새참으로 제공한다거나, 방과후수업 때 배우는 바이올린을 들고 와 연주를 하기도 한다. 실력은 상상에 맡긴다. 엄마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흡족했을 따름이고 덕분에 끝없이 이어지는 포도밭 일에 지쳐 있다가 새 힘을 얻곤 했으니까.

4학년 올라가면서 정들었던 선생님들이 떠나고 체벌을 선택하는 의욕 넘치는 담임을 만난 향유에게 "이제 학교를 그만 다니자"는 말을 몇 번 건넸지만, "무섭지만 재미있다"는 답으로 4학년 과정을 마쳤다. 초등학교 5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어느 날.

"엄마, 나 학교 그만둘래."
"응? 갑자기 왜?"
"재미가 없어서…."


일단 여름방학 때까지 한 학기만 더 다니면서 계속 생각을 해보자고 타일렀다. 한 달이 지나자 계속 조른다. 남편과 함께 학교를 갔다. 담임선생님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선생님은 향유의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하셨다. 그래서 별다른 갈등 없이 조용히 학교를 나왔다.

▲ 포도밭에 피어난 들꽃으로 목걸이 만드는 향유와 둘째 선린. ⓒ김현

열두 살


그렇게 시작된 향유의 집 생활. 다른 표현으론 '홈스쿨'. 무주의 김광화 씨는 '내학교(my school)'라고 표현하는 그런 생활의 시작이 향유 나이 열두 살 때부터다. 시골살이가 다 그렇듯, 하려고 하면 다양한 일들이 무한 제공된다. 동물을 좋아하는 향유는 자연스러운 듯 당연한 듯 동물 쪽을 맡아 일하게 되었다.

남편은 학교 공부를 그만뒀으니,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는 뜻에서 경제 자립부터 시작해보자며 향유에게 달걀 장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고 향유는 흔쾌히 동의했다. 남편은 "닭장부터 같이 지어볼까?"라고 제안했고, 부녀지간에 열심을 내 드디어 우리 집 역사상 가장 커다란 닭장을 완성했다.

▲ 향유란. ⓒ김현
영주에서 재래 닭 병아리 200마리를 사서 전부터 키우던 토종닭 몇 마리와 함께 닭장에 넣었는데 병아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시나브로 죽고, 지난겨울에는 생닭으로 몇 마리 팔고, 지금은 60여 마리가 남았다. 사료를 먹이지 않고 청치를 먹이고 포도밭에 풀어 키우며 얻은 달걀에 '향유란'이라고 이름 붙여 판다. 달걀 집에 손수 그림을 그리고, 되도록 그날그날 낳은 달걀을 지역의 소비자에게 배달한다. 한 알에 600원. 고정적인 동네 할머니 소비자께서는 꾸준히 먹을 테니 400원으로 하자는 제안에 싱긋 웃으며 "예!" 한다. 택배로도 한 번 보냈는데, 달걀집에 뽁뽁이를 넣고 달걀을 담아 아이스박스에 다시 담아 보내는 과정에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든다. 이쯤 되면 달걀 장사가 제법 이윤이 있을 거라고 생각들 하겠다. 하루는 향유와 남편이 마주앉아 계산기를 두드려보더니, 남편은 허허 웃으며 "달걀 사업이 망했다"고 했다. 그러나 달걀 사장 향유는 이번에도 싱긋 웃기만 한다. 팔기도 했지만 나눠주고 선물하고 우리 네 식구 날마다 잘 먹고 두루두루 다 좋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따리학교와 공부 모임


학교를 그만두던 해 봄, 내 마음에 담아뒀던 '보따리학교'를 향유 또래 아이들과 꾸리게 됐다. 보따리학교의 시원은 2002년 '우리 쌀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이다. 길 위에서의 만남이 이어져 학교가 됐다. 건물도 없고 학비도 없다. 1년에 계절마다 한 번씩 일주일 동안 열리는데, 나흘은 농가보따리 사흘은 전체보따리로 연다. 농가에서는 농사일이나 계절놀이 들을 하며 삶을 나누고, 전체보따리는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의제를 정해 약속한 장소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모인다.

보따리학교를 꾸리는 빛살 님은 본인이 자라기 시작하는 열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가 보따리학교 학생이 되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모든 과정은 아이와 부모가 마음 내는 만큼 역동적으로 운영된다.

향유네들은 경북 영덕, 경남 밀양, 제주 강정마을을 다녀왔다. 그 길에서 향유는 탈핵을 마음에 담고 평화를 생각했을까? "해는 좋아, 핵은 싫어!", "송전탑 세우지 마세요!", "해군기지 결사반대!", "강정에 평화!"를 외치던 길 위의 아이들은 지금은 무얼하고 있을까.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고 한 걸음씩 성큼성큼 자기 앞의 생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겠지.

집에서 공부하는 지역의 다섯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협동조합 모임방에서 모인다. 지난해에는 부모들이 한 달에 한 번 아이들과 자유로운 수업을, 올해는 귀농한 이들에게 한 달에 두 번 미술 수업을 받고 있다. 공부 모임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검정고시에 대한 의견들이 공유돼 저마다의 역량대로 시험을 치르고 모두 합격했다. 향유는 현재 중학교 졸업 자격자다. 아이들은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꼬마들의 놀이방 도우미로 청탁받곤 한다. 자기들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느낌이랄까? 해가 바뀌면 각자의 선택에 따라 공부 모임이 지속될지, 아니면 새로운 세상에서 또 다른 경험을 쌓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여전히 아이들의 몫이다.

열다섯 살


열다섯 살 향유는 아침에 일어나는 걸 매우 힘들어한다. 거울을 자주 들여다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에 매우 관심이 많다. 어릴 땐 종이에 그리던 그림을 이젠 얼굴에 그린다. 아이쇼핑을 즐긴다. 노래 듣는 걸 즐기고 목청껏 부르기까지 한다. 흥겨울 땐 춤도 춘다. 매 순간 어깨와 팔다리를 들썩이니, 매순간 흥겨운 걸까? 만나는 사람들도 부쩍 성장한 향유에게 다들 놀란다. 이젠 제법 아가씨다운 면모다.

▲ 감 깎기의 달인 선린. ⓒ김현
외적 성장과 함께 내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에 사는 두 가족과 함께 글쓰기 모임을 꾸려서 석 달째 모이고 있다. 주제를 정해 글을 쓰고, 돌아가며 낭독한 뒤 느낌을 주고받는다. 선린이는 아직 글보다는 그림이 편해서 그림에 설명을 덧붙인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했으나, 이젠 아이들 목소리에 제법 자신감이 붙었다. 향유의 글은 분량이 길다. 할 말이 많다는 건데, 좋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엄마 마음엔 나쁘지 않아 보인다. 글을 통해 어른들의 마음을 볼 수 있어 새롭고, 아이들의 마음 또한 알 수 있으니 더욱 새롭다.

선린이는 향유에 비해 포시랍게(곱게) 자랐다. 집 둘레에 포도밭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둘레를 뛰어다니거나 포도밭에 들어와 맘껏 놀다가 집으로 뛰어간다. 아기 향유와 포도밭에서 지내면서 셀 수 없이 이런 생활을 꿈꾸었는데, 꿈꾸던 대로 되었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우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으로 산다면, 그 시간들이 모여 아름다운 과정이 되고 앞날에 좋은 기운을 실어주리라. 그것이 아마도 실수투성이에 부족한 게 많은, 엄마 나이로 열다섯 살인 내가 지금 이곳에서 사는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향유 포도농장의 첫째 딸 향유입니다.

제 꿈은 농부가 아닙니다. 아직 '이거다' 하고 정해진 꿈은 없지만,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늘 농사에 밀렸습니다. 부모님이 너무 고생하는 모습을 봐서 그럴까요? 힘든 농사를 짓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또 농부가 되기 싫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도 부모님이 고생하는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 걸까요? 열심히 일궈 만든 땅인데, 저와 선린이가 농부가 될 마음이 없으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팔리겠죠? 그건 또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농사도 가능한 선까지 하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 향유와 선린. ⓒ김현
올봄에 포도 묘목을 심다가 포도밭의 흙을 봤는데, 푹신푹신하고 촉촉한 게 정말 좋은 땅 같았습니다. '아빠가 정말 좋은 땅을 가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것을 보상받는 느낌? 물론 제가 고생한 건 아니지만요. 흙에 대해 설명하는 아빠의 모습이 굉장히 뿌듯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밭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아빠가 일본을 다녀온 뒤 '땅은 꼭 자식에게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생각을 가진 젊은이에게도 물려줄 수도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내가 농사를 안 지으면 다른 사람에게 팔겠지? 그럼 지금까지 노력이 헛수고가 되잖아. 그러니까 내가 농사를 지어야지'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나 선린이가 농사에 대해 별생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땅을 물려받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욕심이 많은가 봅니다. 다른 사람이 땅을 물려받는다고 생각하니, 배도 아프고 뭔가를 뺏긴 것 같은 위기의식이 들었습니다. '물려준다'는 것과 '판다'는 것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진지하게 장래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을 대략 말하자면, 10대에서 20대 후반까지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살다가 30대쯤에 멋진 신랑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려고 합니다.^^

늘 그랬지만, 올해도 역시 저희 가족이 열심히 농사지은 포도입니다. 저희 포도 맛있게 드셔주세요!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5년 12월 현재 75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바로가기 :
전국귀농운동본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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