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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이 모락모락, 동네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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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이 모락모락, 동네 육아

[민들레] 육아, 이 외롭고 고독한 길을 함께 걸어가자

모성은 타고나는 걸까?

어려서부터 엄마의 정을 모르고 자란 나는 가족에 대한 환상을 품으며 자라왔다. 학교에 써내는 자기소개서 장래희망 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현모양처'라고 적어내곤 했다. 저녁이면 모락모락 된장찌개를 끓이며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아이들이 공부할 때 과일을 깎아 공부방에 슬며시 가져다주는 따뜻한 엄마, 한겨울에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온돌처럼 편안한 휴식처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결혼을 빨리하면 아이도 셋, 넷은 가질 수 있겠다며 철없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덧 나이가 차서 남편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부모님 도움을 조금 받고 대출을 내서 시작한 결혼생활이었으니 몇 년은 아이 없이 열심히 살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뻔한 말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결혼 후 2년 만에 갑자기 아이가 생긴 것을 알았다. 아이 갖기 전에 돈도 더 모으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유럽여행도 가보자며 계획을 세웠는데 모두 신기루가 되어버렸다. 첫아이다 보니 몸이 어느 정도까지 버텨줄지, 혹시 아이가 힘들어하진 않을지 걱정이 되어 장거리 여행도 조심하고, 보고 듣는 것에 주의하면서 그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아이가 생기니 저절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아이에게 이런저런 사랑의 말을 건네며 감성적이고 포근해진 내 마음과 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모성이라는 것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학습의 결과일까. 혹은 조상들의 유산일지, 단순한 호르몬의 작용인 것인지, 어쩌면 이 모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가지고 나니 삶이 달라진 것은 물론 모든 에너지와 정신이 한곳에 모이는 것 같았다. 아이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정말 '엄마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를 낳고 보니 '어, 이건 아닌데?' 싶었다. '현모양처'라는 장래희망은 대통령 되고 싶다는 꿈보다 더 이루기 어려운 일 같았다. 하루 중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정말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방치하고, 무시하고, 거부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모유수유를 한다는 핑계로 아이보다 내 배를 먼저 채우고, 밤새 아이가 빽빽 울어도 무던한 나는 깨지 않고 잔 적도 많다.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잠드는 것도 예사였으니, 좋은 엄마 좋은 아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엔 온 정신이 아이한테 가 있어, 좋아하는 책 한 권 읽는 건 고사하고 인터넷 뉴스 보기도 힘들었다. 아이 키우는 일밖에 안 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그다지 잘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해졌다. 육아가 즐거울 순 없을까, 스스로를 멋진 사람으로 여기면서 다시 가치 있는 일을 할 순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이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으니 분명 전과 같이 지내지는 못할 거라고 우울해하기만 하다가, 조금 생각을 달리 먹어보기로 했다. '엄마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달았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더 늘어났을 거야, 이제 막 발을 디딘 새로운 이 세계에서 다시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을 만들어보자' 하고 말이다.

▲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무관합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유대'라는 놀라운 힘

그러나 친정도 시댁도 멀리 떨어져 있고 가까운 곳에 형제나 이웃사촌도 없이 혼자 아이와 고군분투하면서,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너무도 부족하고 초라한 나 자신을 만나게 되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개인적인 노력 이외에도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육아 정보에 대한 도움도 얻고 하루 종일 아기와 혼잣말하며 생긴 외로움도 달래고 싶어 온라인 자연출산 카페에서 알게 된 지역 소모임 '모락모락(母樂母樂)'을 찾았다.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책을 읽고 모여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었는데, 그 당시 읽었던 책이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라히마 볼드윈 댄시 지음, 강도은 옮김, 한국슈타이너교육예술협회 감수, 정인출판사 펴냄)였다. 발도르프 육아를 기본으로 아이 내면의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는 이론과 사례로 가득했다. 몇 장을 읽어보는데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이에게 적용해볼 생각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이런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 좋은 육아 친구가 될 수 있겠다 싶어 기대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나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나는 애나 키우는 쓸모없는 사람이야'인 것 같다. 주변에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우울해한다. 육아 자체가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 아이 낳기 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다는 상실감이 무엇보다도 큰 것 같다.

그런데 이 모임에 나와 보니 나는 '애나 키우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우리는 모두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닌 아이의 행복도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거다. 이곳 모락모락에는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를 위해 더 노력하는 엄마들이 있었다. 백일이 갓 지난 아이를 매달고 있는 나로선 이미 모임의 중심에서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있는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한 달에 한 번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모임이지만, 책만 읽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을 모시고 지역의 환경문제나 대안 에너지, 탈핵에 관한 강의를 듣고서 엄마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운동들에 대해 의논해보기도 했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전해줄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지켜내는 것에 엄마들은 관심이 많다.

또 모임 안에 발도르프 육아를 공부했던 엄마가 있어서 책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쉽게 설명해주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공부를 통해 아이에게 나무나 뜨개실로 장난감을 만들어주며 아이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고 귀 기울이는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되도록 독한 약을 먹이지 말고 아이 스스로의 면역력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동종요법 공부 모임을 만들고 선생님을 초빙해 공부해보기도 했다. 약에 의지하지 않는 건강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모든 엄마들의 바람일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우쿨렐레 연습 모임도 있었다. 악기 다루는 데 재주가 많은 엄마가 가르쳐주었다. 그전까지 한 번도 음악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내가 처음으로 코드를 잡고 노래 한 곡을 완주했을 때는 금방 연주회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얼마나 뿌듯하던지! 매주 공원이나 미술관을 다니며 아이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엄마들은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웠다. 어느 여름날 밤에는 아빠들까지 모여 '모락부락(母樂父樂)'이라는 이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여름밤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2013년 여름에 첫 모임을 가진 후 모락모락은 행복한 육아를 실현해보려고 많은 시도를 했다. 각자의 재능을 더욱 계발해보자며 자연스레 재능기부를 기반으로 한 육아 품앗이가 시작되었다. 일주일 중에 며칠을 정해진 곳에서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고 지난 독서모임에서 배웠던 지식이나 이론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실험해보았다. 아이 성장에 맞춰 율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인형극도 하고, 그렇게 모여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들은 서로 의지하며 이 모임을 정말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아이 키우는 일에만 전념하면서 그 외의 일에 쏟을 만한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멋진 사람들을 만나니 신기하게도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났다.

'유대'라는 건 정말 놀라운 힘이다. 우리는 '육아'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고, 배우려 하고, 위로받고, 다른 사람의 슬픔에 같이 눈물 흘렸다. 누군가의 일을 내 일 같이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유대감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람들에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진심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잠시 쉬었다 가자

엄마들의 즐거운 모임이 이어지는 동안 늘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이의 마음이었다. 연령대 비슷한 아이들이 한곳에 가만히 있기 힘들어지는 시기가 오자 사람들은 독서모임이나 육아 품앗이라는 그 어떤 형태로든 같이 모여 있는 것이 어려워졌다. 엄마들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그걸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장난감 하나를 놓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맘에 안 드는 것이 생기면 떼를 쓰고 기다려주지 않는 통에 공식적인 모임을 몇 달 동안 멈춘 적도 있었다. 남편의 발령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이별, 둘째 임신으로 정기적인 참여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생겼다. 사람들은 잠시 쉬어가길 원했다.

이렇게 공식 모임이 잠시 중지되었을 때도, 시간이 맞는 엄마들끼리는 모임을 계속 이어갔다. 누구라도 이 모임의 기본 형태는 유지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모락모락 초기에 느꼈던 가슴 벅참을 앞으로 우리가 만날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공식 모임을 잠시 쉬는 동안 우리가 더 단단해지기 위해, 전과 같은 공허함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몇 달이 흘렀다.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잠시 멈춰 있던 피가 오히려 더 원활히 돌게 되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니 또 새로운 일을 꾸미고 싶어졌다. 누구나 이 모임의 주인이었으므로 새로 온 사람도, 원래 있던 사람도 공평하게 자신이 애정을 보인 만큼 얻어갈 수 있었다. 잠시 쉼표를 찍었던 모락모락은 이 시간을 계기로 보다 단단해지고 있었다.

▲ 한여름, 모락모락 식구들과 계곡에서 시원하게 보냈다. ⓒ이금비

지난 여름 내내, 모락모락 식구들은 계곡에서 놀았다. 비가 온 다음날이면 과천 계곡에 물이 불어난다. 깨끗한 물이 바위를 타고 굽이굽이 흘러내리다 보면 이끼가 씻기고, 흙탕물이 한 번 일고, 그 뒤에 계곡물이 아주 맑고 깊어진다. 누구랄 것도 없이 도시락을 싸들고 계곡으로 나선다. 겨우 걷기 시작한 돌쟁이도 나오고, 한창 떼가 늘어 집에서 돌보기 힘든 두 돌 안 된 아이도 나오고, 원하는 게 많아 이것저것 엄마 손을 타는 두 돌 지난 아이도 나온다. 남의 엄마 손을 잡고 물고기 구경도 하고, 지천으로 널린 돌멩이를 주워 물속에 하염없이 던지며 신나한다. 물을 바가지에 펐다 부었다 하며 놀기도 하고, 자연이 준 워터파크에서 튜브를 띄워놓고 세월아 네월아 놀기도 한다. 엄마들은 커피도 나눠 마시고, 수박도 잘라먹고, 집에서 챙겨온 나물들로 비빔밥도 해먹으며 그 계곡에서 한 계절을 보냈다. 아이들이 잘 따르는 엄마는 기꺼이 아이들의 놀이 친구가 되어주었고, 그런 날이면 다른 엄마들은 돗자리에 앉아 자유를 만끽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아이들끼리도 서로 기억하고 찾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서로의 손을 잡을 때, 사랑한다면서 꼭 안을 때, 먹을 것을 나눠 먹을 때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아직도 장난감을 놓고 전쟁을 하고, 악의없이 밀치고 상처 주는 일들이 많지만, 엄마들끼리 그런 경우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하자는 암묵적 규칙도 만들었다. 모임에서는 일관성 있는 규칙이 필요할 때가 있다. 먼저 상처받은 아이를 달래주고 상처를 주었던 아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이해해준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화해를 유도해본다. 하지만 어떨 때는 좀 의연히 바라보자고도 말해본다. 언젠가는 엄마가 나서지 않고 아이들끼리 서로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테니까. 매번 벌어지는 상황이 명확하지는 않아서, 감정이 뒤섞이고 서로 서운함을 느낄 때도 생기지만 그래도 조금씩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들이 생기고 엄마들도 그에 따라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젠 상상할 수도 없어, 우리 만나기 전을

가을이 되고 우리는 멈췄던 독서모임도 다시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초기에 함께했던 사람들도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예닐곱의 엄마들로 시작했던 모임이 서른 명 남짓한 모임으로 가지를 뻗어 나갔다.
정말 나무처럼 우리는 자라고 있다. 하나의 큰 나무에 여러 재능을 가진 엄마들이 가지를 뻗고 그 위에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이 꽃처럼 열매처럼 대롱대롱 달려 있다. 우리에게 매일매일은 처음 주어지는 날들이어서 능숙하게 잘해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 육아 품앗이를 해나갈지에 대해서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아이의 가장 행복한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함께 보내면 좋을지 같이 고민하고, 그 안에서 엄마들도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같은 공터에 모여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

해도 지금처럼 한곳에 모일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따뜻한 위로가 되는 이 연대는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더 추워지기 전에 모락부락 모임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아빠들이 함께하는 자리에는 더 큰 웃음소리가 들리겠지. 맛있는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아빠 골든벨을 하고, 보물찾기로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찾게 하고, 공도 차면서 추운 날씨에 몸을 덥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모여 언젠가 또 모임이 흔들릴 때,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리라.

무엇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쉽게 정의 내릴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 마음에도 있고 다른 사람들 마음에도 있어서 그 신비로운 힘이 우리를 한곳에 모이고 싶게 만든다. 육아, 이 외롭고 고독한 길을 함께 걸어가며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모락모락. 이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이젠 상상도 할 수 없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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