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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이제 겨우 오십인데…"

[작은책] 100세 인생, 잔인하다고 전해라

친구야, 잘 지내고 있지? 새해가 되었으니, 우리도 벌써 오십이구나. 나는 뭐 그럭저럭 백수 생활 3개월 차에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지. 애들 가르치는 건 이제 안 하냐고? 알다시피 생계형 사교육 강사로 먹고산 게 15년. 기껏해야 굶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였지만 적성에도 맞고 때로는 보람도 있었지. 그런데 이 직종도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곳인지라 나처럼 아무런 광고와 서비스도 없이 집 한 귀퉁이에서 그저 애들 몇 명 가르치는 형태로는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게 된 거지. 어쨌든 지난 수능 즈음해서 고3들이 졸업했어. 녀석들은 원하는 학교엘 갔는데 나는 백수 신세야. 별 수 있나? 학원 쪽 일자리를 찾아봤지. 급여를 좀 낮추면 되겠지 했는데, 웬걸! 국어 강사 자리는 아예 나오지를 않더라고. 놀라긴 했어. 몇 년 전 학원 풍경이 아닌 거야. 어쩌다 보이는 구인 광고도 대부분 40대 이상은 아예 대상에서 제외되고 급여도 월급이 아닌 시급이더라고. 상담 관리 쪽으로도 이력서를 내 봤는데, 그것도 탈락. 노련한 경력자보다는 부리기 좋은 젊은이들이 넘치는데, 원장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쓰기는 꺼려지겠지.

그때부터 아르바이트 순례(?)가 시작된 거야. 마침 알바를 찾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오라는 곳이 생겼네. 처음에는 정확하게 어떤 일인지도 모르고 그저 9시 출근 6시 퇴근에 일당 5만 원, 걸어서 30분 걸리는 곳이라는 것만 보고 지원을 했지. 13명, 20대부터 50대까지 대부분이 여성들이었어. 2인 1조가 되어 도서실 5단 책장에 있는 책을 꺼내서 태그를 붙이고 바코드 입력해 다시 책장에 꽂는 일이었지. 주로 법전이 많은 곳인지라 책 한 권 무게가 장난이 아니지만, 그래도 일은 할만 했어. 책에 쌓인 먼지는 무지 많았지만, 작업장이 양호했고(소위 이 사회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도서관이었으니까). 관리자가 꽤 매너가 좋은 사람이라서 매시간 50분은 일하고 꼬박꼬박 10분은 쉬었어. 점심시간 1시간은 당연한 거고.(이후 이런 환경을 더는 만날 수 없었지.)

그렇더라도 일의 성격상 계속 서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집에 돌아와서는 근육통 때문에 사나흘을 끙끙 앓게 되더라고. 일주일이 지나니 겨우 일이 몸에 붙고, 여기저기 안 쓰던 근육들을 쓰니 기분도 상쾌해졌어. 지금껏 안 해 본 일을 한다는 신선함과 잠깐하고 말 일이라는 다소는 가벼운 마음이어서 더 그랬을 거야. 마지막 이틀을 지하 서고에서 일하는 건 좀 끔찍했지. 그렇게 3주에 걸쳐 12일을 일하고, 일당 5만 원과 식대 5000원을 합한 66만 원을 받았어.(세금 공제를 안 했는데, 난 모든 알바는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는….)

지금까지 내가 번 돈 중에 가장 힘들게 번 돈이라서 이건 꼭 나를 위해 써야지 그런 생각을 했거든.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조건과 환경이 흔치 않다는 걸 몰랐던 거야. 처음 만난 일자리가 가장 양호한 환경이었던 거지.

▲ 영화 <카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한민국 세대별 여성 노동자를 대변한다. 20대 88만 원 세대인 미진(천우희 역), 30·40대 중년 여성인 선희(염정아 역)와 혜민(문정희 역), 그리고 노년 세대 순례 여사(김영애 역)까지. 이들 모두, 비정규직 알바 인생이다. ⓒ명필름

이후로 날이면 날마다 일자리 애플리케이션(앱)을 들여다봤지만, 대부분의 일은 우선 나이에서 막혔어. 단순 사무직은 물론이고 상담, 판매, 식당 서빙조차도 내 나이는 안 받겠대. 막 화가 나더라고. 일단 얼굴을 보고 일을 시켜 보고 나서 판단하라고 따지고 싶은 거야. 그래도 내가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 정도 일은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력서도 못 내밀어 보다니 분한 마음이 들더라고. 형식적으로는 나이 제한이 없지만 막상 이력서를 내 보면 다 걸러지는 일도 부지기수. 내 나이에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야. 텔레마케팅, 식당 주방, 대형마트 판매, 청소, 물류 쪽 포장과 분류.

이력서를 보낸 곳은 100곳도 넘었을 걸? 그중에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본 곳은 빵집 판매, 은행 실내 청소, 단체 급식 주방보조, 병원 내시경실 보조였는데 모두 떨어졌어. 시급 5580원에서 6000원을 오가는 일자리에 점심시간도 잘 안 지켜지는 곳들인데, 그마저도 경력자를 원하더라고.(2016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6030원이다. 편집자) 떨어진 이유? 모르지. 다만 그 일들이 육체적 노동 강도가 센 일이라서 딱 보아 하니, 나 같은 비리비리한 체구로는 '가당찮다' 여긴 게 아닐까 싶어.

뷔페 주방에서 잠깐 일을 해 보긴 했어. 자신이 없어서 우선 4시간 근무부터 시작했는데 어찌나 바쁜지 퇴근할 때까지 물 한 모금, 화장실 한 번을 못 가고 일을 하게 되더라고. 퇴근하고 와서는 마치 10시간쯤 일한 것처럼 온 몸이 퉁퉁 붓고 손가락 하나 꼼짝을 못 하겠더라고. 결국 사흘을 일하고 그만둬 버렸는데, 일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그보다는 부당한 시스템과 기껏 해야 30대 초반이나 되었음직한 매니저가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 견디기가 힘들었어.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금껏 내 삶이 학생들 가르치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는 위치였지, 누군가 그것도 어린 사람이 함부로 대하면서 지시하는 것을 겪어 볼 일이 없었으니 더 그랬을 거야.

백화점 판매 일은 8시간을 꼼짝없이 서 있어야 하는데, 그것 자체를 버틸 체력이 안 되어서 하루만 일하고 그만뒀어. 손님도 없는데 왜 서 있느라 사지를 배배 틀며 견뎌야 하는지 정말 이상하지 않아? 화장은 필수고 고객님 어쩌고 하는 응대도 다 연습해서 그대로 해야 해. 과잉 서비스에 감정노동 등 모르고 갔던 것은 아닌데, 저녁이 되니까 힘들어서 어지럽고 구역질까지 나더라고. 옷 장사하는 사람들의 억척을 당해 낼 수도 없고 오히려 사람 뽑느라 공들인 자기들 손해라고 얼굴 붉히는 바람에 내 체력을 제대로 판단 못 한 내 탓이다 싶어 일당도 못 받고 그냥 나왔지만, 교육받느라 하루, 일하느라 하루, 면접 본다고 오간 시간까지 다 헛짓을 한 거지.

그 밖에 몇 가지 더 있기는 한데, 말하다 보니 지친다. 알바 구하러 전전하면서 '내가 이렇게도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나'라는 좌절을 맛봤지. 나름 전문성과 경력을 지닌 사람이라 여겼는데, 이 땅에서는 그게 별 소용이 없는 일인 것 같더라고. 최저임금으로 살 수 있을까도 의문인데, 그마저도 아들딸 나이의 20대와 일자리로 다퉈야 하는 사회. '100세 시대'라는 말이 참 잔인하게 느껴지더라. 우리 나이 이제 겨우 오십인데 말야.

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바로 가기 :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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