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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엄마'가 좋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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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엄마'가 좋아졌어"

[민들레] '엄마'란 이름의 에너지

다 엄마 때문이라구!

한참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를 향해 맹비난이 쏟아졌다. 시작은 초등학교 1학년 막내 녀석이었다.

"받아쓰기 20점 맞았어. 엄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
"왜 선생님이 갑자기 시험을 보셨다니."

살짝 아이와 눈을 맞춘 뒤 알림장이 들어 있는 가방을 원망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애 알림장 좀 똑바로 봐주지. 망신스러웠겠다."

남편은 한술 더 뜬다. "내가 알림장에 있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갑자기 시험 본 거 아니란 말이야!" 아이는 볼멘소리로 곧 울음이 터질 기세다.

"그랬어? 그럼 네가 공부 좀 하지."

오이를 무치며 식초를 넣을까 말까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막내가 확인사살 하듯 가방에서 받아쓰기 공책을 꺼내 든다. "이거 봐, 이거. 20점이 뭐야.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내가 야단을 쳐야 하는 거 같은데 오히려 아이가 큰소리를 친다. 순전히 엄마가 준비를 안 시켜주었기 때문이니 자기는 당당하다는 뜻이다.

"엄마! 실내화도 바꿔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여기가 다 찢어졌다고. 계란판 가져가는 것도 금요일까지였는데…."

아주 날을 잡았다. 20점을 커버하려고 내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을 다 끄집어낸다. 애 아빠는 한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아이는 퉁퉁 부은 채 계속 원망 섞인 표정이다.

"아무리 바빠도 애 좀 신경 쓰면 안 되냐? 남의 자식 잘 키우겠다 하지 말고 제 자식부터 좀 챙겨."

자식은 나 혼자 챙기느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겨우 참으며 온화한 눈빛으로 오이 무침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미안한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화목한 저녁 식사 시간을 지키고자 아이 앞으로 좋아하는 화로구이 고기를 들이미는데, 이때 큰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 tvN <응답하라 1988> 화면 갈무리.


"뭐야? 너!"

다리 굵기만 다르지 전체적으로 성보라(tvN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 등장하는 까칠한 첫째 딸)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약간 무서운 내 자식이기도 하다.

"야, 너 어디 엄마한테 투정이야? 그리고, 아빠도 가만히 식탁에 앉아서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응원을 하고 있는데 큰아이는 계속 침을 튀기며 동생을 쥐 잡듯 잡았다.

"너, 엄마가 받아쓰기 볼 때마다 점수 물어보면서 왜 틀렸느냐고 야단치는 게 좋아?"
"아니."
"엄마가 물건 못 챙긴다고 화내면서 너 보고 잃어버린 거 당장 찾아오라고 하면 좋겠어?"
"아니."
"그럼, 너 스스로 해. 이게 다 엄마 작전이야. 엄마가 무심한 것처럼 해도 네 스스로 도를 깨닫게 하려는 거라고. 이 단계에서 조금 더 지나고 나면 살 길을 스스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거야. '내가 엄마를 믿어서는 이 험한 세상을 살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인생에 위협을 느끼게 될 거거든. 그리고 엄마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여도 다시 한 번 가방을 확인해보는 습관을 가져. 왜? 엉뚱한 것을 챙겨 넣는 일이 태반일 테니까. 괜히 계란판 챙겨준다면서 서른 개짜리 사 오고, 실내화는 사이즈 안 맞는 것 사와서 네가 도로 가서 바꿔야 하는 상황이 돼. 그냥 처음부터 네가 알아서 해. 알았지?"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누나 말 명심해. 네가 살려면 엄마한테 기대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정 급할 때만 엄마한테 가끔 물어봐. 그냥 급할 때가 아니라 '정' 급할 때다. 엄마도 그 정도를 외면할 사람은 아니야."

동생을 향하던 큰애의 훈계는 곧 제 아빠에게로 이어진다.

"아빠도 잘 생각해봐. 엄마가 주말이면 어디 못 나가게 하고 퇴근 시간 맞춰 빨리 오라고 독촉하고 돈 어디다 썼냐고 매번 카드 검사하고 그러면 좋겠어? 뭐 필요할 때마다 아빠 불러대고."

애 아빠는 나 때문인지 큰애 때문인지, 얼떨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눈치다.

"전등도 혼자 갈고, 자동차 체인도 알아서 채우고… 이런 남자 흔치 않아."
"엄마, 여자거든?"

막내가 얼른 누나의 말실수를 잡아내자 큰아이가 쏘아붙인다. 

"니가 뭘 알아. 은유법이야!"
"아빠는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엄마랑 지냈으면서 아직도 엄마가 포기가 안 되냐…. 엄마는 일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남들은 다 힘들다고 지쳐 떨어져도 엄마는 저렇게 풀다 와야 더 좋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지금 엄마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참을 수 있는 모든 이유도 밖에서 쓰고 온 에너지 때문이야. 그러니 엄마에게 현모양처를 바라면 안 돼. 열정 넘치는 사람이 현모양처에 꽂히기라도 하면 우린 다 말라 죽을 거야."

▲ tvN <응답하라 1988> 화면 갈무리.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칭찬인 듯 아닌 듯, 비난인 듯 아닌 듯.


"너 지금 나를 디스하는 게냐?"

부아가 치밀어 올라 두부를 부치느라 뒤집개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뒤집개가 부침류만 뒤집으라고 있는 게 아닐 거다.

"아니? 나 정말 엄마 편드는 건데? 내가 좀 커보고 나니 적당한 엄마가 끼친 영향이 굉장히 크더라고."
"적당한 엄마?"
"응. 적당한 엄마. 많이 묻지도 않고, 공부로 숨통을 죄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물어보면 성의껏 답해주고, 그렇다고 나에게만 집중한다는 생각도 안 들게 하고. 그냥 엄마랑 이야기하면 많이 웃기고 좋아. 그 이상 좋은 엄마가 있을 수 있어? 내숭 떠는 엄마가 아니라 이야기하고 싶은 엄마라니까. 난 그게 적당한 엄마로서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내숭 떠는 엄마는 또 뭐야?"
"왜, 있잖아.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하고… 엄만 이런 예의 자체가 별로 없잖아. 곤란한 질문을 해도 항상 직접적으로 설명해서 사람 당황하게 만들고. 어쨌든 인간적으로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존경까지는 바라지 마세요."

"적당한 엄마가 좋아졌어"

적당한 엄마라…. 살다 살다 이런 소리는 또 처음 들어본다. 친구로 두기엔 좀 까칠하고, 자식으로 두기엔 좀 무서운… 야자하고 저녁 늦게 들어와 이야기 나누면 반가운 정도. 요즘 큰딸과 나의 관계다. 그런 아이는 알까. '적당한 엄마'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이가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이야"라고 욕심 없이 말하던 엄마들도 연령이 올라가면서 자식의 '공부' 앞에선 흔들리는 촛불이 될 때가 많다. 수시로 욕망을 더 부풀리려는 음모가 나도 모르게 내 속에서 마구 튀어나와도 이를 사랑으로 착각하며 아이를 다그치게 된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무조건적'인 거라 말하기 창피해질 때가 바로 이런 욕망들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다. 명품백이 무슨 필요냐며 평소 검소한 삶을 강조하던 이들도 '자식'만큼은 누구보다 잘 키워낸 부모 대열에 들고 싶어 한다. 알고 보면 그 성공 기준이 실은 '모두가 바라는 명품백'과 다를 바 없는데 말이다.

정말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은 헌신적이기만 할까? 욕심에 부푼 자신의 의지와 경험으로 자식의 삶을 디자인하고 계획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닐까? 한 인간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데 부모의 역할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그동안 드물게 만나본,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부모들에게선 ‘자기 삶을 다하는 데’서 은은한 빛이 비추어져 나왔다. 무엇을 만들어주고, 무엇을 알아보고, 무엇을 제도하는 길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기대하지 않고 보답 받지 않으려는 사랑에서 나오는 강하고 정직한 힘이었다.

부모로서 '기다린다는 것'은 얼마나 참기 힘든 일인지. 말 한마디라도 꺼낼라치면 생색이 될까 두렵다. 어정쩡하게 따라가며 흉내만 내는 것이라면 큰소리치는 것도 어렵지 않지만, 정말 내 것으로 만들고 나를 변화시키려는 과정에서는 어느 것 하나 쉽게 나오는 말들이 없다. 모든 상황을 견고히, 담담히 받아들여 나를 먼저 세워야만 할 수 있는 그런 말들이다.

오랜 시간 '엄마'란 이름의 에너지를 고갈시켰던 대부분의 힘든 일은 '기다려주는 것'이었고 그 어려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처음부터 그러한 능력을 갖췄던 사람인 마냥 태평한 얼굴을 하고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수련인지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뼛속 깊이 느낀다. 참지 않고 기다리기만 했다는 것은 다 거짓이다. 하루에도 불같이 얼음같이 마음속에서 요동치며 쥐불놀이했던 일들을 그 누구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긴 흔들림 끝에 작은 깨달음도 있다. 강황 갈아 먹이고, 스테이크에 초록색 깔아 먹인다고 좋은 엄마 되는 건 아닌 거 같다. 인스턴트 3분 카레로도 '적당한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평소 누나를 무서워하는 막내는 엄마에 대한 일장연설을 쭉 듣더니, 이내 순한 눈빛을 띠고 말한다.

"나도 '적당한 엄마'가 좋아졌어."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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