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도 자유롭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바로 경고장이 날아오거든요. 공장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저의 사소한 움직임부터 조합 활동에 이르기까지 회사 안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어요."
2011년 주간 2교대제 시행을 요구하며 정당한 쟁의행위를 하던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은 회사의 직장폐쇄를 경험한 이후, 지난 6년간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당시 지회가 복귀 의사를 밝혔는데도 회사는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해고·견책·정직 등 보복성 징계를 감행했다. 그 이후로도 회사는 끊임없이 조합원들을 괴롭혔다. 어용 노조원과의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감시와 부당한 업무 지시 및 임금 삭감 등. 조금이라도 항의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경고장을 받았으며,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6개월씩 징계를 당했다. 그뿐인가. 정당한 조합 활동에도 사측은 툭하면 민형사상의 고소 고발을 남발하고, 조합원들은 일주일 멀다 하고 경찰 조사를 받으며 법원에 출두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경고장은 하도 받아서 놀랍지도 않아요. 하지만 마음속에 분노는 점점 커지죠. '내가 죽으면 다 해결될까?'라는 생각도 자주 하고….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구체적 계획을 마음속으로 세우고 있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정말 내가 그 계획을 실행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조합원의 상태가 이 지경임에도 사측은 근무 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을 핑계 삼아 점점 더 금속노조 조합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며, 경고와 징계 남발·임금 삭감 등 조합원들을 정신적·물리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조합원들은 출근하는 것이 두렵고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힌다고 한다. 노동자는 힘들어도 일하면서 보람을 찾지만, 출근과 동시에 하루 종일 사측과 어용 노조원과 매일 싸워야 하는 공장이라면 그곳은 지옥과 다름없다.
지난 3월 17일 새벽 충북 영동의 양산에서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한광호 조합원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2년간 지회에서 대의원 활동을 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회사의 부당함에 맞서 투쟁해 왔다. 늘 조합원들과 함께 힘들지만 웃으며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성실하게 다하려 노력하는 친구였고, 후배였고, 맘 좋은 형이었다. 계속되는 사측의 괴롭힘, 그리고 6년 전 하루아침에 적으로 변한 어용 노조원과의 마찰로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회사에 나오는 것을 몹시 고통스러워하던 그였다. 2011년 이후 사측이 그를 고소·고발한 것만 11건이다. 그중 9건은 무혐의 처리됐고, 2건은 진행 중이었다. 그동안 두 번의 징계를 받았으며, 세 번째 징계를 위한 사실 조사 출석을 통보받은 상태였다.
"광호가 왜 죽었는지 아세요? 회사가 노조 파괴하려고 우리를 하도 괴롭혀서 그래요. 우리 조합원들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정신이 멀쩡한 사람 별로 없어요. 술 안 먹으면 잠도 못 자요. 그런데 저 회사의 태도를 보세요. 광호와 우리를 잠시도 편할 날이 없이 괴롭히면서 자기들과 상관이 없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지난 1월 유성기업과 금속노조 소송 과정에서 유성기업이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진행했으며, 이를 현대차에 수시로 보고했다는 사실이 검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 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유성기업이 민주노조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그 배후에는 현대자동차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한광호 열사를 죽음의 벼랑으로 내몬 주범이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라는 분명한 증거다.
그러나 사측은 한광호 열사의 죽음은 개인적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일 뿐이라며, 회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발뺌했다. 20년을 유성기업에서 일한 노동자가 금속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감시하며 고소·고발·경고·징계 등으로 괴롭혀 놓고,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니…. 도대체 유성기업은 최소한의 양심도 없단 말인가!
유성기업지회의 그 어떤 조합원도 회사의 의도적 괴롭힘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만큼 조합원들도 정신적으로 안전하지 않다. 사측의 노조 파괴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조합원이 최근 산재 판정을 받았다. 2012년 이후 여섯 번째다.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의 40% 이상이 우울 장애를 앓고 있다.
"2011년 이후에 매일같이 밖에서 농성하고 투쟁하는 동안 아이들이 훌쩍 커 버렸어요. 이제는 집에 있어도 저는 외톨이 같아요."
6년간 투쟁하면서 조합원들은 가족과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조합원들이 힘들고 지칠 때 위로받고, 웃고, 이를 통해 재충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회사는 조합원들로부터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은 것이다.
5월 27일 현재,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11일째 열사 투쟁 중이다. 지난 21일에는 경찰과 현대차 측이 동원한 용역 직원의 강경 진압으로 분향소가 훼손되고, 상주 국석호 씨 등 18명이 연행됐다. 조합원들은 사측이 한광호 열사의 영정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고 노조 탄압의 책임자가 처벌될 때까지 지난 6년간 그렇게 싸워 왔듯이 힘을 내어 싸우겠다고 한다. 지회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또 종교 단체를 포함한 많은 시민사회가 함께하고 있다.
서울 시청 광장에도 분향소를 어렵게 차렸다. 매일 저녁 열리는 추모 촛불문화제에 유성기업지회를 지키고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연대하겠다는 단체 또는 사람들이 함께한다. 조합원과 연대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 아마 한결같지 않을까? 더는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지키겠다는 절실함이며,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의 소중한 일상을 빼앗아 가는 자들을 반드시 단죄하겠다는 의지이다.
언젠가 그렇게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고 아픈데도 6년을 사측의 온갖 괴롭힘과 탄압을 버티며 여전히 싸우는 조합원들을 보며,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긴 시간 투쟁하게 하는지 궁금했다. 얼마 전 영동공장에서 있었던 촛불집회에서 한 조합원의 발언에서 나의 궁금함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답을 찾은 것 같다.
"저희가 이렇게 투쟁하는 이유, 별거 없어요. 그냥, 사람답게 살겠다는 거, 그거 하나예요."
부당한 것에 '부당하다'고 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하고, 당연한 권리를 찾으려 힘써 노력하는 것, 그것만 한 사람다움이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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