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주말 저녁이다. 저녁. 아내가 만들어 준 동치미 국수를 먹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꾸밈없이 소박한 시인 백석의 ‘국수’라는 시가 떠올랐다.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에 국수를 말아먹길 좋아했던 시인 백석. 시인은 차가운 냉기가 뿜어 나오는 겨울이 깊은 마을. 평안도 정주 사람이다.
이맘때 쯤, 그는 그의 어머니가 검정 솥단지에 물을 넣고 장작불로 국수물을 펄펄 끓여 차가운 물에 담갔다가 동치미에 넣어 훌훌 말아 먹었을 것 같다.
그의 시 ‘자작나무’에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라는 시 구절이 나온다.
아마도 시인은 자작나무가 빼곡한 마을에 살았나보다.
그런 백석의 시처럼 그리운 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보러 길을 나선 건 다음날 아침이다.
11월 5일. 일요일 오후. 나는 해발 1,100m 원대리 자작나무숲으로 가기 위해 동홍천 I.C를 빠져나와 속초 인제방면으로 가는 44번 국도를 들어섰다.
빨갛던 가을이 지고 겨울이 길 위에 있었다.
그리고 30여 분이 지났을까. 나는 인제 신남을 지나 44번국도 오른쪽 길가에 쓰인 ‘원대리 자자나무숲 가는 길’이라는 팻말을 따라 편도 1차선의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갔다.
주말 휴일이라 그런지 ‘나무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순백색의 자작나무를 보려는 사람들이 3km가 조금 넘는 산길을 걷고 있었다.
자작나무 숲이 있는 정상까지 천천히 걸어서 1시간이면 해발 1,100m의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겨울 문턱. 원대리는 마지막 가을이 아쉬운 듯 빨간 단풍이 아직 나무에 걸려 있었다.
자작나무숲 입구에 도착하자 우측 산 아래로 뿌연 안개가 자욱하다.
나는 원대리 자작나무숲으로 가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보는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보는 내 눈이 황홀했다. 노오란 낙엽이 떨어진 산등성 위에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자작나무들 보는 순간 가을 속의 겨울을 보는 듯한 착각을 했다.
눈만 쌓이지 않았지 지금 본 내 앞의 풍경은 함박눈이 내린 겨울옷을 입은 나무들의 숲 같기 때문이다.
웅장함을 자랑하는 웬만한 대학 캠퍼스 보다 더 넓은 41만평에 펼쳐진 69만 그루의 자작나무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20미터 이상 성장한다는 자작나무는 대나무처럼 곧고 강직해 보이는 나무이다.
입구에서부터 물흐르듯 ‘ㄹ’자로 만든 계단을 밟고 내려간 자작나무숲에는 사람들의 낙엽 밟는 소리가 자작나무가 불에 탈 때 낸다는 ‘자작자작’ 소리처럼 ‘사각사각’ 들렸다.
나무 아래에서는 이미 겨울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자작나무를 원형으로 세워 묶은 자작나무집을 원시인처럼 들락이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그 옆에 긴 자작나무를 나무의자 삼아 앉아서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나는 사다리처럼 쭉쭉 뻗은 나무숲 사이를 뚫고 내리는 오후의 태양이 순백의 나무들을 비출 때마다 마치 흰눈이 왔을 때 햇빛이 만나서 반짝이는 겨울을 걷는 착각을 하며 걸었다.
그러다 내가 밟고 가는 자작나무 낙엽들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이 내린 겨울나라가 아닌 마지막 떠나는 가을속의 겨울나무임을 깨닫곤 한다.
자작나무숲은 세 갈래 길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중 가운데 길을 따라 가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 갔다.
나무 숲 사이로 난 작은 골짜기에 이끼 낀 돌 틈으로 골짜기 물을 졸졸졸 흘려 내리고 있었다.
그 작은 골짜기로 난 나무들 사이로 작은 마당이 있었고, 벤치가 놓여 있었다. 자작나무 숲 가운데를 흐르는 골짜기 물은 돌틈 사이를 흘러 아래쪽에 옹달샘처럼 고여 있었다.
초등학교적 선생님과 부르던 동요,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처럼 토끼나 새가 와서 먹을 것 같은 자작나무 숲 속 옹달샘 같다.
다시 위쪽으로 걸어 올라가자, 그 옛날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장승처럼 키가 큰 나무를 파서 만든 엄마와 아이의 얼굴이 정겹다.
꼭 어릴 적 내가 읽은 ‘피노키오’ 의 주인공들을 같다.
나는 잠시 피노키오를 닮은 나무들 사이에 앉아 생각했다.
이 많은 자작나무들이 행복한 이유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곤충과 새들. 그리고 이 숲을 가꾸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생명>.
이 숲은 싱싱하고 순백한 생명이 있었다.
살아 있어도 싱싱하지 못하고 오염된 생명들은 이 숲의 자작나무들처럼 행복하게 자라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명을 내 앞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 폰으로 자작나무 풍경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행복하다. 어떤 포즈를 취해도 자작나무가 알아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배경을 만들어 준다.
그런 자작나무를 보며 나는 시인 백석이 자작나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꾸밀 것도 속일 것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를 내어 주면 된다. 백석은 이런 자작나무가 사는 마을에 살며 소박함과 구수함이 밴 맛깔스런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가 좋아하는 동치미 국수를 끓여내던 자작나무가 오늘은 이곳을 찾는 연인과 노년의 부부들에게까지 순백의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만들어 줄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기가 풍부해서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작자작 잘 타는 지도 모른다.
그런 기름기 많은 자작나무는 촛불마저 피울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촛불을 대신한 에디슨의 전등같은 착한 나무였다.
이제 겨울문턱에 들어 선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도 자작나무 껍질을 닮은 눈이 하얗게 덮일 것이다.
자작나무숲은 겨울이 오면 겨울이 오는대로 또 다른 시를 쓸 것이다. 지금의 낙엽풍경에 눈부신 하얀 살로 하늘높이 길게 뻗은 키다리 나무들과 어울리는 천사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고려시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해인사로 간 자작나무는 팔만대장경 글씨를 새길 만큼 단단한 자작나무 껍질이었다.
나는 선비의 지조처럼 곧게 뻗은 자작나무를 걸으며, 아름답고 단단한 자작나무숲에 가을의 시 한 편 쯤 낙엽에 숨겨 놓고 가고 싶었다.
손목시계의 초침이 빠르게 돌아가는 오후 무렵.
나는 아직 걷지 못한 마지막 한 길을 따라 걸었다. 그 길옆에는 또 다른 숲길을 새로이 만들고 있었다.
짙은 갈색으로 색깔을 입힌 인위적인 나무계단 길을 보며, 나는 자작나무에 어울리는 흰색의 나무 길을 상상하며 디자인했다. 그러나 이 역시 나의 상상일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낙엽이 수북이 쌓인 숲길을 걸을 때 자작나무를 닮아 이 숲과 너무 잘 어울리는 백발이 다 된 노년의 한 부부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생각했다.
추운 지방에서만 자라는 자작나무처럼 인고의 삶을 살아왔을 노부부의 흰 머리카락과 주름진 얼굴의 미소가 순백한 자작나무처럼 맑다.
오늘 나는 짧은 시간이지만 원대리 자작나무를 걸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이 노년의 부부만큼 이곳 자작나무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작나무 숲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나는 노부부가 내게 준 새끼 손가락만한 초콜릿 한 개를 입어 넣으며 집으로 가는 마지막 나무 계단을 걸었다.
자작나무숲에 오후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 나는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오늘 내게 준 순백의 마음과 싱싱한 산소를 마시게 해준 것에 감사했다.
그러면서 아주 오래전 읽은 노자의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과 사람의 아름다운 조화’가 왜 가장 아름다운생각인지를 원대리 자작나무들이 ‘자작자작’ 내게 들려주는지를 깨달으며 집으로 가는 44번 국도를 천천히 달렸다.
차 안에서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도 곧 하얀 눈이 내릴 것 같은 겨울 풍경을 상상하며 원대리를 떠났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