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에 탄생한 두 편의 공포소설
지금부터 200년이 넘는 1816년 여름, 6명의 영국인이 휴가를 즐기려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했다. 당대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과 그의 주치의 폴리도리, 그리고 또 한 명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와 그의 파트너 메리 셸리, 그의 아들 윌리엄스, 마지막으로 메리의 여동생 클레어였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알프스는 이례적으로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연일 계속되는 폭풍우 등 궂은 날씨가 이어져 외출하거나 자연을 즐길 상황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숙소에 틀어박히게 된 바이런은 지루함을 이기고자 일행에게 '모든 사람이 유령 이야기'를 써서 우승자를 뽑자고 제안했다. 이 모임에서 훗날 너무도 유명하지만 공포스럽고 음울한 두 편의 소설이 만들어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편은 메리 셸리가 쓴 <프랑켄슈타인>이고, 다른 한편은 주치의 폴리도리가 쓴 <뱀파이어>다. 그런데 전설적인 두 편의 공포소설을 탄생시키게 만든 궂은 날씨는 사실 단순한 기상이변이 아니었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한 이래 기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례적인 해가 바로 1816년이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1815년 봄부터 발생한 인도네시아 탐보라산의 대규모 화산분출이었다. 화산 폭발음이 최소 2600킬로미터까지 들렸고, 1만 명이 넘는 직접 사망자와 대형 쓰나미를 초래했던 이 화산은, 지구 주위를 화산재로 덮어 태양을 차단한 탓에 1816년을 '여름이 없는 해'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수년 동안 지구의 온도를 떨어뜨렸다.
작가 살럿 고든은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대기 중에 흩어져 유럽, 아시아, 심지어 북미까지 정상적인 기후 패턴을 교란했다. 양쯔강이 범람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붉은 눈이 내렸고, 모스코바에서 뉴욕까지 기근이 휩쓸었다. 곡물이 얼어붙고 밀이 시들었다. 식량 가격이 치솟고 사망률이 두 배로 치솟았다"고 당시의 기후 영향을 요약했다. 그렇게 두 편의 공포소설은 바로 여름이 없는 해의 여름에 탄생한 것이다.
2025년 여름과 계절마다 심해지는 기후재난
이제 시계 바늘을 2025년 7월 현재로 돌려보자. 지난 수일 동안 미국 동부에 이어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이르는 유럽 광범위한 지역이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기온이 무려 46도까지 치솟았고 프랑스 파리는 더위 탓에 1900개 학교가 휴교했다. 심지어 파리 명소 에펠탑을 출입 제한하기도 했는데, 초고온으로 에펠탑에 약 20㎝가량의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는 소식도 덧붙여졌다. 반면 러시아는 60여 년 만에 가장 추운 여름을 맞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아직 초복이 한참이나 남은 한국 역시 남부지방부터 조기에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다. 무려 1조 8000억 원 이상의 피해와 3800여 채의 거주지가 파괴된 사상 최대의 산불재난을 겪은 영남지역의 엄청난 피해는 아직 제대로 수습되지도 못한 터다. 불과 1년 전에는 9월 추석까지 이어진 최장 더위와 열대야 기억도 여전히 생생하다. 이제 2025년 여름은 얼마나 가혹한 기후재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1816년 이례적 기후변동이 자연 활동인 거대 화산분출의 결과였다면 지금은 무엇 때문일까? 인류가 산업문명을 누린다고 석탄과 석유, 가스를 대량으로 태워 매년 500억 톤 이상의 온실가스를 대기 중으로 분출시킨 결과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연간 기준으로는 이미 지난해 지구 평균 기온이 1.52도가 올랐는데 이 가운데 인간이 유발한 상승분은 1.36도로 사실상 대부분이었다.
앞으로 2년 이내에 영원히 1.5도를 넘는 건 물론 9년 안에 1.7도를 넘을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현재 추가로 800억 톤을 더 배출하면 1.5도 경계선은 무너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1.5도 기후위기 경계선 붕괴는 새로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정부가 조만간 직면할 냉엄한 현실이다. 이재명 정부의 기후대처가 남달라야 하는 이유다.
기후복지 없이 견뎌야 할 기후재난
특히 지금부터는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그치지 말고, 동시에 이미 현실이 된 기후재난 앞에 시민의 안전과 복지를 어떻게 지킬지 고민해야 한다. 매년 4월과 11월이면 반복될 초대형 산불, 6월에서 9월까지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 이례적으로 긴 장마나 극심한 가뭄, 폭설을 동반한 변덕스런 겨울이 매년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기존의 주민 안전과 복지제도는 흔들리고 기후재난은 사회재난으로 전이된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기후복지'는 없다. 지난 3월 영남의 초대형 산불이 휩쓴 안동이나 청송 등 8개 지역은 노인 등 돌봄이 필요한 주민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재난 대응과 피해 복구 과정에서 복지부의 뚜렷한 개입은 없었다. 극심한 더위로 온열 환자가 늘어도,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거나 '휴게시설'을 설치하라는 미약한 규정 말고 제대로 된 보호 조치는 없다.
그나마 경기도가 올해부터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한파로 인한 한랭질환, 냉방병 등 진단시 10만 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기후보험'을 도입한 사례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아직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21대 대선을 앞두고 녹색전환연구소 등 민간 싱크 탱크가 제안한 기후 대응형 복지정책 제안은 주목할 만하다. 극한기후로 인한 일용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소득감소에 대비한 '기후소득보험'의 도입, 폭염이나 폭우, 한랭 등 극한기후에서의 산업 안전조치 의무의 구체적 명시, 그리고 '기후 유급휴가' 도입, '주택 에너지 복지' 신설 등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번엔 공포소설의 결말로 가지 않으려면?
1816년 기후재난과 2025년 지금은 중요한 두 가지 차이가 있다. 200여 년 전의 기후재난은 자연이 일으킨 천재지변이지만 지금은 인류가 자초했고 막을 수도 있었던 인재다. 그리고 1816년 기후변동은 예측할 수 없는 일회성 자연 사건이지만, 지금은 충분히 예견되었으며 한 두 해만 견디면 사라질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위기다.
두 세기 전 매리 셜리는 자신의 소설 주인공 프랑켄슈타인 괴물을 일시적인 기후변동과 연계할 이유가 없었다. 대신에 <여권의 옹호>라는 전설적인 책을 써 페미니즘의 개막을 알렸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이자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며 아이를 키워야 했던 메리는, 엄마와 자신 직면해야 했던 온갖 차별에 대한 분노에 집중해 프랑켄슈타인의 복수를 소설로 그려냈다.
하지만 지금은 명확히 예견되었고 대응 방법도 알고 있지만 위기를 피하기 위한 대책이나 재난에 대한 대처도 외면한다면, 기후재난의 피해를 고스란히 당할 시민들과 미래세대의 분노는 어디로 귀결될까? 19세기 공포소설의 결말을 재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희망의 가능성을 만들자면 당장 최소한의 기후복지를 기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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