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현지시각)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휴전이 발효되고, 이어서 13일 가자 평화정상회의에서는 당사국이 불참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평화선언문'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53%를 통제하고, 라파 등 주요 국경검문소를 봉쇄하여 식량과 의약품 등 구호물품 반입을 크게 제한하고 있으며, 최소 38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해했다. 현재 가자지구는 인터넷 등 인프라가 파괴되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철군 경계선을 잘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이스라엘군은 경계선을 넘었다며 팔레스타인 가족이 탄 민간차량에 발포하여 7명의 어린이를 포함하여 11명을 사살했다는 소식이 18일 전해졌다. 가자에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통해 현대전이 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 군사적∙비군사적 부문의 광범한 상승효과(synergy)로 치러진다는 것을 목도하였다. 보다 정확하게는 국가와 그에 공모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연합을 전쟁 주체라 봐도 무방할 듯 하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레바논, 시리아 등지를 공습하는 데 사용한 무기와 군사장비를 이스라엘군에 제공한 58개 기업들이 국제평화운동단체 AFSC가 만든 "가자 집단학살로 이익을 얻는 회사들"에 이름을 올렸다(☞관련자료). 여기에는 록히드 마틴, RTX,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같은 알려진 방산 무기∙군수물자 제조업체 뿐만 아니라, 아마존∙구글, 포드∙벤츠∙토요타, 캐터필러∙HD현대, 발레로와 같은 IT, 자동차, 중장비, 에너지 등 일반적으로 무기 산업으로 간주되지 않는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령 최신 군사용 무기는 전통적인 살상용 기능에 더하여 대규모 디지털 데이터를 활용한 첨단기술을 결합시키고 있다. 군사용 드론은 무분별하게 난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안면인식 기술로 축적한 정보에 따라 공격 대상자를 식별하여 추격한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2021년부터 아마존웹서비스(Amazon Web Service, AWS)와 계약하고, 서버에 가자지구의 거의 모든 사람에 대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저장했다. 아마존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2023년 전쟁이 시작되자 이런 정보에 대한 추가적인 기술지원과 컨설팅 서비스를 이스라엘군, 정보기관, 경찰, 교도소, 무기업체, 불법정착사업 담당 기관에 제공했다. 이스라엘군의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Azure) 이용량(2023.10~2024.3)은 집단학살 전보다 64배 증가했다는 사실은 이 전쟁을 "누가"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상시적 침략과 불법 점유, 자원 약탈을 위해서 비군사 부문에 해외기업들을 연루시키고 있다. HD현대의 중장비는 2013년부터 팔레스타인 토착민들 소유의 올리브나무를 뽑아내고 주택을 철거했으며, 불법유대인정착촌 건설을 위해 도로와 건물을 짓는데 이용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해양법을 위반하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해역의 가스전 탐사권을 해외업체들에게 매각했는데, 한국석유공사가 100% 지분을 소유한 다나 패트롤리엄도 탐사권을 매입했다.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지에서 HD현대나 한국석유공사가 한 일은 명백한 전쟁범죄이다.
그럼에도 전쟁 수행을 실제로 가능하게 만드는 이런 기업들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분쟁의 최종 책임이 개별 국가에 있다고 보고, 중재 노력이 주로 당사국 정부와 국정 최고책임자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들도 전쟁범죄에 가담하여 돈을 번다는 사실은 은폐하고 기술협력 등으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지켜보며 우리는 선진국 대기업들이 전쟁을 위해 어떤 기술과 물품을 제공했는지, 어떤 대가를 보상받았는지, 전쟁을 지속∙악화시키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 책임을 더 철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서 집단학살에 가담하는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소홀한 틈에, 팔란티어(Palantir) CEO의 방한과 성수동 팝업스토어는 '쿨한' 테크기업의 비즈니스 행보로만 보도되었다. 소위 '서학개미'가 많이 매입한다는 미국 3대 주식 중 하나라서 그런지, CEO 알렉스 카프의 극우정치적 행보나 서방과 미국중심의 이익에 철저하겠다는 기업방침, 소비자-비친화적 판매전략도 전혀 비판대상이 되지 않았다.
팔란티어는 AFSC 명단뿐만 아니라, 7월에 발표된 유엔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세의 보고서에서도 '집단학살경제' 참여기업으로 지목되었다. 2024년 1월에 이스라엘 국방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군사 및 정보 목적의 다양한 AI기반 데이터분석 도구를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9월 1일자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팔란티어는 미국 내 팔레스타인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이주민과 난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대중 모니터링과 감시, 개인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가진 AI 도구를 미국 정부에 제공하고 있다(☞관련자료).
쇼샤나 주보프는 테크기업들이 이윤 추구를 위하여 정보를 집적하고 이를 행동예측과 시민통제에 상품화하는 방식을 "감시 자본주의"로 명명했다. 사람의 행동과 경험에 대한 지식의 집중이 곧 권력의 집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자본주의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구글의 계약에는 이스라엘 정부가 구글 제품을 어떤 방식과 용도로 사용할지에 대한 전적인 재량권을 갖도록 하였고, 구글과 그 모회사 알파벳은 이스라엘 전쟁에 공모하는 회사활동에 항의하는 직원을 해고하였으며 군사적 목적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없던 금지조항을 없앴다는 사실들은 상품화의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즉 기업은 기존의 공개된 시장 또는 평상시 시장에서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무제한적 상품화의 테스트 베드로서, 전쟁 중인 국가 또는 이민세관단속국 같은 기관과의 거래에 협력한 것이다. 또한 정부는 전쟁 국면이나 이민∙난민자 문제에 대해서 불충분한 보안조치로 발생하는 사고나 위험을 부수적 피해로 책임을 회피하면서 예외적인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과 이런 계약을 맺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국가와 기업들이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감시자본주의를 고도화하며 팔레스타인이라는 한 국가를 2년이 넘도록 절멸에 이르는 상태로 방치했다는 사실은 매우 분노스럽다.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실종되었으며, 집단학살의 현장에서 인간으로서 겪지 않았어야 할 모멸과 수치, 비인간화의 고통과 폭력을 경험한다는 것을 매일같이 보고 듣지 않았던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권위주의 정권의 부활이나 극우정치의 세력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기술과 정치의 연합에 대한 시민들의 민주적 심의와 통제권은 더욱 중요하다. 국가가 정치적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특정한 방향으로의 기술개발과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기술정치(technopolitics)'(Hecht, 2001)라는 개념으로 제시된 바 있다. 기술정치를 문제시 하는 것은 내가 이용하는 기술의 정의로운 생산과 활용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갖는 더 큰 의미의 자유이기도 하다(마크 코켈버그, 2022).
모든 기업이 감시받지 않는 기술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노르웨이 회사 스토어브랜드는 "팔란티어가 이스라엘을 위해 하는 일이 자사가 국제 인도법과 인권을 위반하는데 연루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소유 중이던 팔란티어 주식을 매각했다. 기업이 스스로 스토어브랜드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으려면, 기업이 정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바람직한 정치적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책임을 추궁하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전문가와 경제권력, 국가권력에 대해 시민사회권력이 균형적인 힘의 관계를 가질 때 가능하다.
국내 기업의 심각하고 반복적인 노동권 침해나 오너 일가의 부도덕한 행위, 경영권의 남용 사례가 발생하면 불매운동으로 시민들의 비판과 항의를 보여준 바 있다. 이런 시민감시와 저항행동들이 국경 밖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 불법점령, 집단학살 기업에 대하여 멈출 이유는 없다. 이렇게 자기이익만을 향해 달리는 양심없는 기술정치의 피해자는 결국 우리 모두이기 때문에 부정의하게 얻어진 기업들의 경제적 가치에는 환호할 수 없다. 더 늦어질 수 없는 평화를 위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 묻은 주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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