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도 프리랜서, 특수고용,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이들을 '노동자'로 추정하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관련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노동계는 정부가 준비 중인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도 노동자 추정제는 담기지 않거나 의미없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 중이다. 또 차별을 조장하는 이상한 특별법 말고,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길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진지한 제도 논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노동자라는 이름을 빼앗겨 권리까지 박탈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싣는다. 편집자
노조법상 노동자로서 독립노조를 설립해서 지금까지 만 4년, 지긋지긋하게 듣는 말이 있다.
"웹툰작가는 노동자가 아니다."
플랫폼기업과 자본이 웹툰작가에게 던지는 가장 흔하고도 반복되는 말이다. 논거는 단 하나다.
"노동의 결과물이 본인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즉, 저작권을 가지고 있기에 노동자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저작권이 있기에 노동자가 아니라는 궤변
만약 내가 찐빵을 만들어 내가 혼자 다 먹는다면, 그 결과물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찐빵을 수많은 사람이 먹는데, 그 과정에서 찐빵 유통하는 가게 사장님이 수익을 많이 가져간다면, 그리고 찐빵을 언제 얼마만큼 만들어야 하는지 찐빵 가게 사장님이 결정한다면, 그 찐빵이 과연 '나에게 온전히 귀속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비유는 적절치 않다. 예술작품은 찐빵이 아니다. 사실 누구도 예술작품을 인류 전체에서 떼어내 온전히 가질 수 없다. 우리 창작 노동자는 인류 전체에 귀속될 '노동의 결과물'을 내어놓고, 그 노동을 할 수 있는 희귀한 능력을 발휘할 동기 부여를 위해, 또 지속하기 위해 잘 먹고 잘 살라고 일정 기간 동안 저작권을 가지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노동의 결과물을 완전히 생산자가 소유한다고 볼 수 없다. 저작권과 노동권은 서로 상관 없이 따로 따로 보장되어야 하는 두 권리다. 저작권은 누군가가 그 작품을 창작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지, 노동권을 대체하거나 대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노동권은 "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권리"이다. 둘 중 하나만 가질 필요도 없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으니 이 글에서는 맨 처음 찐빵의 비유로 돌아가자. 실제 현실은 자신의 머리에서 온전히 창작해 낸 작품도 위의 찐빵처럼 유통되고 팔린다. 곰은 재주를 넘고 돈은 주인이 벌 듯이. 웹툰작가는 작품을 창작하지만, 그 작품은 플랫폼의 정책과 알고리즘에 따라 노출되고 수익 구조는 플랫폼 중심으로 짜여 있다. 작품의 성과 중 상당 부분은 플랫폼 자본이 가져간다. 저작권을 가진 오리지널 작품의 작가들조차 그렇다는 이야기다. 찐빵을 언제 얼마나 생산할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진열하고 누구에게 팔 것인지도 플랫폼이 "단독으로" 결정한다.
그보다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더 끔찍하다. 아예 '저작권도 없고 노동권도 없는' 창작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원작 웹소설의 판권을 회사가 사 오고, 이를 바탕으로 2차 창작을 하는 소위 '노벨코믹스' 작가 대부분은 저작권을 당연한 듯 빼앗긴다. 남의 작품을 위해 선화만, 채색만, 배경만 작업해 주는 수많은 프리랜서 스탭(어시스턴트)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저작권이 확실히 없는데 왜 노동권도 없는가?
하루 평균 10시간을 일하는데 산재보험 의무가입도 되지 않아 아파도 자기 탓만 하다 그저 쓰러져 죽어간다. 플랫폼 자본이 요구하는 수정을 받고, 정해진 납기와 업로드 일정에 쫓기지만, 법은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교섭을 신청해도 회사는 말한다.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서 교섭할 의무가 없다."
자본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자본은 스스로 멈출 수 없다. 자본은 안 해도 되는 것을 절대 하지 않는다. 자본은 해도 괜찮은 것은 반드시 한다. 웹툰창작노동자들이 이토록 취약한 이유는 단순하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구조는 플랫폼 노동 전반에서 동일하다.
웹툰작가와 배달·대리운전 노동자의 닮은꼴 노동
웹툰작가의 현실은 배달라이더, 대리운전기사의 현실과 매우 비슷하다. 라이더에게는 사고의 위험과 등급제가 있다면 우리에게 악플이나 불법웹툰이라는 사고와 순위제, 프로모션 노출 조정이 있다. 둘 다 플랫폼의 정책에 흔들려야 하고, 둘 다 자영업자의 탈을 쓴 노동자이며, 둘 다 "네가 선택했다"며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된다.
라이더들이 겪는 '등급제 통제'를 보자. 대리기사나 배달라이더의 하루 노동은 알고리즘이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에 따라 얼마나 좋은 콜을 딸 수 있는지 결정된다. 피크타임 동안 두세 플랫폼에 동시에 로그인해야 하는 고강도 경쟁, "먼저 도착한 사람이 콜을 가져가고 늦으면 노쇼 패널티" 같은 룰은 노동시간과 출퇴근을 사실상 플랫폼이 통제하는 구조다.
웹툰창작노동자 역시 플랫폼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 장르를 바꿔라, 대사를 고쳐라, 심지어 캐릭터 옷의 줄무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둥 수정 지시가 난무한다. 유급 휴재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 무급 휴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마감시간에 대한 온갖 페널티는 사용자의 지휘·감독 그 자체다. 하지만 플랫폼은 이를 그저 '의견 제시'라고 포장한다.
배달 라이더·대리기사·웹툰작가 모두 사실상 사용자 통제를 받지만, 법적 보호는 받지 못하는 동일한 구조에 놓여 있다. 플랫폼이 위험을 떠넘기고, 노동자는 자기착취로 몰린다. 알고리즘이 노동자를 더 빨리 움직이게 만들고, 리스크를 노동자에게 떠넘긴다. 이 구조는 플랫폼의 효율을 위한 것이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출퇴근, 자유로운 선택을 말하지만, 알고리즘이 보수와 등급을 통제하는 현실 속에서 그 자유는 허상에 불과하다.
정답만은 피하고 싶은 정부! 근로기준법 전면적용만이 해답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이 아니라 '일터기본법' 혹은 '일하는사람법'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약자지원법'과 본질이 같다. 이름만 "권리 밖 노동자"라고 바꿔 붙였다. '미조직근로자지원과'가 '노무제공자지원과'가 되었을 뿐이다. 간판만 바꿨다. 정부가 바뀌었을 뿐, 노동정책의 실질은 변하지 않았다. 정책의 핵심은 여전히 "근로자성 밖에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정답은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인데 그것만은 애써 눈의 초점을 흐리고 안 보이는 척 피해 간다. 왜일까? 왜 우리에게만, 계속 2등 시민으로 살라고 하는 것일까? 온 세계가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ILO가 뭐라고 권고하건 말건, 눈 감고 귀 막으며 끝까지 비겁하게 외면한다.
웹툰작가⸳배달라이더⸳대리기사, 그리고 수많은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는 모두 사용자의 통제 아래 일하고 있다. 사용자의 지시를 받고, 알고리즘에 의해 노동시간과 수입이 결정되고, 등급제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전부 노동자다. 그리고 노동자라면 당연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법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법 제정에 반대한다. 우리를 다시 '중간지대'에 가두기 때문이다. 그 중간지대에서 우리는 결코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더 이상 2등 시민으로 남지 않겠다. 저작권은 노동권을 대체할 수 없고,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책임을 지워줄 수 없다. 모든 노동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모든 노동에 동일한 권리와 안전망이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다. 그래서 우리 플랫폼노동자들은 11월 25일 배달의민족 앞에 모여 이렇게 외칠 것이다.
"이미 있는 법, 근로기준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전면 적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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