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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나 없다고 안 바뀔지 모르지만"…계엄의 밤, 국회 지킨 시민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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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나 없다고 안 바뀔지 모르지만"…계엄의 밤, 국회 지킨 시민들의 이야기

[12.3 비상계엄 1년] ② 소식 듣고 곧장 달려간 시민들의 마음

12월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45년 만에, 그리고 1972년 유신 이후 52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선포한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28일 갤럽에서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11명의 전직 대통령(윤보선, 최규하 제외) 중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비상계엄 사태는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여전히 내란 관련자들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국민의힘에서는 '윤 어게인'을 외치는 상황이다. <프레시안>에서는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비상계엄이 우리에게 준 의미, 그리고 청산해야 할 문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헌정질서를 뒤흔든 무도한 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에서 흘러나온 시각은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30분경이었다. 지인의 연락이나 방송을 통해 이 말을 접한 모두의 일상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 속에 흔들렸다.

어지러운 속에서도 몇몇 시민은 발 빠르게 용기를 냈다. 경찰 비공식 추산 4000여 명의 시민이 그날 밤 국회에 모였다. 장갑차를 막아서고, 총을 든 군인을 꾸짖고, 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막는 경찰에 항의했다.

훗날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 윤석열"의 탄핵을 선고하며 계엄 해제 의결의 가장 큰 공을 "시민들의 저항"에 돌렸다. 그날 시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국회 앞을 지켰을까. 무도한 계엄령에 맞서 시민들이 밤새 나눴던 말로 이를 복기했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계엄령 선포에 반대하는 시민 및 이를 저지하는 경찰 병력이 모여 혼잡스러운 상황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을 탄핵하라", "체포하라", "구속하라" 밤새 반복된 구호

계엄의 밤, 시민들의 각본 없는 자유발언이 시작된 때는 지난해 12월 4일 새벽 3시경이었다. 장소는 국회 정문 2문 앞.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지회가 국회 앞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고용승계 등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하던 앰프 4대가 그곳에 있었다.

지회 앰프를 통한 발언은 당일 0시 30분경 시작됐으나, 처음에는 정당인 등 정치 웅변이 익숙한 이들이 주로 마이크를 잡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지회 측은 정당인의 발언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에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러자 금세 긴 대기줄이 생겼다.

<프레시안>에 당일 발언 녹음을 제보한 김석현 씨도 그 즈음 녹음기를 켰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응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시민들은 "비상계엄 해제하라", "윤석열을 탄핵하라", "체포하라", "구속하라" 등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는 "이 도발은 일주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오늘 우리가 강고한 대오를 유지하고 싸우면 더 많은 국민이 모일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국회로 모여 달라고 호소해달라. 즉시 핸드폰을 들고 모두 이곳으로 모여달라고 호소해달라"고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그날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해제한 것은 국회가 윤 전 대통령과 국방부에 계엄해제 요구 통지를 보낸 때로부터 2시간 반, 시민들이 자유발언을 시작한 때로부터 1시간 반이 지난해 12월 4일 오전 4시 30분경이었다.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 밤 저 하나 없다고 바뀌는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당일 국회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었지만, 초반 발언자는 20대가 많았다. 학생운동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도 꽤 됐다. 이들은 먼저 국회 앞으로 나온 이유를 밝히고 시민들을 독려하는 발언이 주를 이뤘다.

대안학교를 졸업해 내년이면 스무 살이 된다고 밝힌 한 청년은 "오늘 밤에 저 하나 없다고 바뀌는 게 없을지도 모르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며 "아무리 절망하더라도 냉소적이 되지 말자. 저도 국가에 의한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움직이겠다"고 다짐했다.

한 대학생은 "친구들과 술 마시다 나왔다. 술 마시고 나라 욕하려다 나라가 진짜로 욕 먹을 짓을 해 바로 나왔다. 이 자리에 오니 시민들의 열망이 느껴져 너무나도 기뻤다"며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 이 자리를 절대 벗어나지 않겠다. 우리가 주인이다"라고 외쳤다.

그날 시민들이 총구 앞에 섰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발언도 있었다. 또 다른 대학생은 철수하지 않은 군을 향해 "불법적인 명령은 단호히 거부해 국민의 군대로서 흔들림 없이 임무를 수행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한 뒤 "우리에게는 양심이 있다. 군인들이 그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함성 한 번 보내자"고 시민들에게 제안했다.

▲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들에게 대통령은 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싶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직장인과 10대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전북 익산에서 온 크레인 기사는 "각지로 일하러 다니는데, 경상도든 전라도든 강릉이든, 어디를 가도 다 윤석열 욕 안 하는 데를 못 봤다"며 이미 망가져 있던 정권에 대한 민심을 전했다. 이어 "저녁에 자다 유튜브를 봤다. 가짜뉴스 같은데 진짜였다. 열 받아서, 잠이 안 와서 뛰어왔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에서 온 15년차 초등학교 교사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국회에 들어가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이 자리에 ㄴ나오게 됐다며 "두렵기도 했다. 교사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호 공무원인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하지 않는데 일개 공무원인 제가 징계를 두려워해서야 되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아이들에게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해야 하고 법을 지켜야 하고 무엇보다 최상위법인 헌법을 지켜야 된다고 가르치고 싶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경기 안산, 인천 영종도, 경기 남양주 등에서 온 각양각색의 시민이 발언대에 올랐다. "79년도에 계엄군이었다"고 밝힌 한 시민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나와 추운 겨울에 시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곧 출근해야 한다고 소개한 한 시민은 "윤석열 해고"를 외쳤다.

청소년 심리센터 상담사, 독립영화 제작자,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직장인, 기말고사를 5일 앞두고 거리로 나온 고등학생,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장애인 아들로 이뤄진 부자 등도 마이크를 잡고 윤 전 대통령을 질타했다.

▲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한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국회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 광주와 박근혜 탄핵 기억한 시민들

그날 시민들의 마음 한 켠에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령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산화한 광주의 영령들이 자리했다는 점도 기억할 대목이다.

한 대학생은 "44년 전 제 고향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이 비상계엄에 분노하며 일어섰다. 어젯밤 비상계엄이라는 믿지 못할 소식을 듣고 무척 화가 났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이야기가 제 이야기가 될 줄 정말 몰랐다"며 "시민들이 죽음으로 만들어 낸 민주주의가 고작 한 사람의 어이없는 한순간 행동으로 무너져 내렸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엄 소식을 듣고 5명의 친구와 함께 광주에서 출발해 3시간여 만에 국회에 도착했다고 밝힌 시민이 "저는 80학번이다. 광주민주화운동도 함께 했다"고 소개하자 함성이 터져나 온 장면도 있었다. 그는 "윤석열이 자기가 내려갈 단초를 자기가 만들었다. 윤석열이 내려갈 때까지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전라도가 고향이라고 밝힌 대학생은 "한때 저는 전라도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인터넷에서는 전라도를 조롱하고 욕했다"며 "그에 대한 말을 하면 오히려 저를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지역차별로 인한 상처를 털어놨다.

그는 그러나 "이 자리에서 더는 제 고향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덕분에 지금도 5.18의 저항정신이 살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사의 뜻을 담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그러자 시민들 사이에서도 노래가 퍼져나갔다.

민주주의를 직접 지킨 경험도 시민들이 이날 국회 앞을 지킨 자양분이었다. 한 대학생은 중학교 3학년 때 교실에서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격을 떠올렸다. "민주시민의 힘은 잊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를 잊지 않고, 이태원을 잊지 않고, 박근혜 탄핵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 지금 다시 한 번 나왔다. 오늘을 잊지 말자"고 강조하는 시민도 있었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4일 날이 밝는 가운데에도 시민들이 국회 앞을 지키고 있다. ⓒ김석현

민주주의, 지역·이념 가리지 않는 보편적 가치…따뜻한 격려의 말도

민주주의와 이를 지켜온 시민들의 뜻이 지역과 이념을 가리지 않고 한국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말들도 있었다.

한 대학생은 "경북 경산에서 밤 12시에 차를 몰고 왔다. '오늘 이 국회 앞이 혹시나 광주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열심히 왔다"며 "비상식적인 권력에 맞서 싸우자. 권력을 남용한 윤석열을 무너뜨리자"고 호소했다.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여기 계신 분들과 저의 정치관념이 굉장히 다를 수 있다. 저는 자유주의자다"라면서도 "그런데 이건 너무 선을 넘었다. 제가 윤석열 뽑았는데 제가 뽑았으니 제가 탄핵해야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를 욕하던 시민도 발언 끝에는 "나와줘서 고맙다"고 외쳤다.

'보수의 뿌리' 대구 출신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다른 의원들은 그 긴박함을 감수하면서도 국회 담을 넘어 달려왔는데 비겁하게도 국회에 올 용기조차 없는 그런 집단은 당사로 도망가서 꽁꽁 숨었다"며 "이런 자들도 부역자 아닌가"라고 국민의힘을 질타했다.

따뜻한 격려도 그날 시민들이 밤새 국회를 지키게 한 힘이었다. 한 직장인은 "기억이 전승되는 한 우리는 지지 않을 것"이라며 "저는 이제 출근 준비하러 가봐야 되는데, 이 자리에 나와 밤을 지킨 우리 스스로를 위해 박수 한번 쳐주자"고 말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밝힌 한 시민은 "방금 전까지 침대에 누워 있다 여러분이 나와 계시는 모습을 보고 너무 부끄러운 마음에 늦게나마 달려왔다"며 "여러분이 이렇게 모여주신데 대해 한없이 존경하는 마음이라도 전하고자 올라왔다"고 했다.

그날 저녁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집회는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이어 12월 7일에는 국회 앞에만 100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남태령 대첩', '키세스단'으로 불리는 싸움도 있었다. 지난 4월 5일 "피청구인 윤석열"이 파면될 때까지 시민들은 끊임없이 거리로 나왔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 지난해 12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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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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