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합니다."
개그맨 박명수의 '어록'으로 유명한 말이다. '어록' 소리까지 들으며 두고두고 회자되는 걸 보면, 많은 사람이 이 말이 재치 있고 통찰을 담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따끔하고도 현실적인 동기부여로 쓰이곤 하는 이 말을,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문제에 교육 시스템이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열쇳말로 읽어 보고자 한다.
이 말에 담긴 속뜻과 그 밑에 깔린 전제는 무엇일까. 첫째, 공부를 안 해서 도달하게 될 '사회 하층의 삶'이란 가혹한 날씨에 노출되는 삶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성공한 삶', '사회 상층의 삶'은 돈·에너지·자원을 써 가며 가혹한 날씨와 거리를 두고 쾌적함을 누리는 것이다. 기후 위기로 폭염을 비롯해 각종 날씨의 위협이 더해지는 상황에서는, 기후 위기의 피해는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입게 될 것이란 예고로 들린다.
둘째, 그런 사회 상층의 삶을 사는 게 곧 학교 공부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것은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서도, 똑똑하고 지혜로워지기 위해서도 아니다. 덥고 추운 날씨로부터 멀어져 편한 삶을 살기 위해서다. 이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자리한 위치 그리고 교육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더구나 이 말은 짐짓 열심히 공부하라는 충고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특정한 직업들이나 삶의 고됨이 '제때 공부를 안 한' 탓이라는 판단도 함께 담고 있다.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는 경쟁 교육
기후 위기는 모든 인류의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다. 다만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기후의 변화 속에서 그 피해와 고통은 다른 속도와 체감으로, 사회적 위치와 계층에 따라 불평등하게 다가오게 된다. 폭염이나 폭우 속에서도 일해야 하는 사람들, 기후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곳에 살지 못하고 대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일 것이다. 기후 위기가 심화될수록, 돈과 에너지를 소비해 가며 '날씨로부터 먼 삶'을 사는 것이 일종의 특권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기후 위기의 불평등함은 우리 사회의 오랜 이데올로기와 결합한다. 능력주의, 즉 잘사는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을 계발해서 보상받는 것이며, 못사는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 게으르고 무능하기 때문에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서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고통이나 위험은 청소년기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경쟁에서 패배했기에 감수해야 하는 마땅한 대우라고 여겨진다.
기후 위기의 피해를 패배자나 게으른 자가 치러야 할 대가로 받아들이면, 변화한 날씨와 빈발하는 재난에 대처하고 적응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에는 소홀해지기 쉽다. 기후 위기에도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어떤 권리가 필요한지, 기후 위기로 인한 고통을 어떻게 덜 불평등하게 분배할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낮아진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기후 위기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위기를 막기 위한 노력보다도 각자도생하여 위기를 겪지 않을 위치로 탈출하는 것이 우선시된다. 사회적 힘을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기후 위기를 덜 체감한다는 역설도 생긴다. 기후 위기가 너무나도 중대한 문제임에도 정치적·정책적으로 그만큼의 중요도를 갖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더욱더 문제로 볼 법한 점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돈 많이 벌고 날씨로부터 먼 삶을 사는 이들이 기후 위기의 주범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스톡홀름 환경연구소(SEI)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최상위 0.1%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하위 50%의 76.5배에 달했으며, 부유한 상위 5%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23%를 차지했다.(숫자로 보는 탄소 불평등… "한국 소득 0.1%, 하위 50%보다 탄소 76배 많이 배출", <프레시안>, 2026.4.22.)
부유한 이들은 기후 위기의 영향을 덜 받고 살기 위해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그럼으로써 기후 위기를 가속한다. 만약 당신이 대기업의 사장이나 그들과 함께 결정을 내리는 전문가라면,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고 기후 위기를 불러오는 결정이더라도 돈을 더 많이 벌 수만 있다면 더 이득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런 결정들이 쌓여서 일어날 기후 재난과 피해는 공부 열심히 안 하고 능력이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의 일이고, 당신은 그렇게 번 돈으로 기후 위기로부터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교육 시스템은 이러한 역설을 일으키며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는 체제를 이루는 중요한 한 부분이다. 특히 박명수의 말처럼, 지금 한국의 학교 교육은 입시 경쟁을 통해 개인이 계층 상승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제시한다. 열심히 공부하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약속하며 공부하지 않으면 낙오될 거라는 위협으로 학생들에게 교육에 순응하고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논리는 때로는 양육자, 학교 교사, 학원 강사에 의해 (혹은 박명수와 같은 유명인도 거들며) 직접적으로 언급되며, 때로는 시험 등수와 서열화된 대학, 직업과 소득에 대한 사회적 평판과 묘사 등에 의해 간접적으로 경험된다.
교육의 과정에서 학습되는 것은 외국어 지식이나 수학 공식 같은 것만이 아니다. 바로 성공한 삶, 좋은 삶이란 에너지를 낭비할 수 있는 삶, 날씨로부터 먼 삶이라는 가치관이다. 힘들고 위험하게 일하는 것은 개인의 탓이라는 가치판단이다. 그렇게,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쾌적하고 사치스럽게 사는 것이 마땅한 보상이라고 믿을 것이다. 기후 위기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고통은 우리 사회에서 더 작게 보이고 들리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교 교육은 분명 기후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인권의 문제다
기후 위기가 눈앞에 닥쳐오고 현실이 되어 갈수록, 우리는 기후 위기가 환경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인권의 문제임을 경험하고 실감하고 있다. 기후 위기가 인권 문제라는 것은 1차적으로 기후 위기가 사람들의 생명권과 안전권 등을 위협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서는 기후 위기가 불평등하게,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고통과 피해로 다가온다는 의미다. 기후 위기의 문제를 다룰 때 사회적 차별과 격차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후 위기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와 닿아 있다. 기후 위기를 가장 근본적으로 설명하면, 생태계를 착취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함으로써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구조가 초래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구조에서 발생하는 부와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가장 혜택을 얻는 소수의 사람들은 '날씨로부터 먼 삶', 곧 생태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을 살면서 생태계 착취를 심화시킨다. 그로 인한 피해는 사회적 약자들, 생태계에 더 가까이에서 일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입게 된다. 기후 위기는 이와 같은 사회 체제의 문제로 인해 더 심화되고,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후 위기 문제를,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것이 사회 체제의 목적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 체제 자체도 전환할 수 있다'는 인권의 원리로 바라보고 풀어 가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을 경쟁으로 몰아넣고 서열화와 차별, 불평등을 동력 삼아 운영되어 온 교육 시스템으로는 기후 위기를 오히려 더 심화시킬 것이다. 학교에서 기후 문제를 다루는 수업을 하거나 교과서에 기후 문제를 많이 넣는 정도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남들을 제치고 날씨로부터 먼 삶을 얻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라, 함께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기 위한 공부가 되어야 그나마 기후 위기를 해결할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공부 안 하면 모두 다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기후 재난에 고통받는 건 공부 안 한 탓이 아니라 공부 열심히 했던 사람들의 욕망과 각자도생 때문'이란 마음으로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교육에 기후 정의를 반영하는 길이자, 기후 위기 시대에 청소년들의 교육권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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