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나무 심다가 죽은 일본인, 왜 조선 땅에 묻혔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나무 심다가 죽은 일본인, 왜 조선 땅에 묻혔나?

[인물로 본 세계사] 아사카와 다쿠미가 관료로 살고 죽는 법을 다시 쓰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공무원이라고 하면 대개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완장 차고 목에 힘주고, 조선사람 등쳐먹고, 해방 후에는 반민특위 앞에서 오리발 내밀던 부류. 그런데 여기 예외가 하나 있다. 산림과 말단 공무원 주제에 조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죽을 때 "조선식으로 장례 치러 조선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일본인이다. 이름은 아사카와 다쿠미(Asakawa Takumi, 1891~1931). 1891년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태어나 1931년 마흔 살 나이로 급성 폐렴으로 죽었다.

나무 심으러 왔다가 인생이 꼬인 남자

다쿠미는 원래 임업기술자였다. 1914년, 먼저 조선에 건너와 있던 형 아사카와 노리타카(1884~1964)를 따라 조선총독부 산림과에 취직했다. 업무는 소나무며 잣나무 묘목 키우는 일. 그런데 이 사람이 개발한 노천매장법이라는 게 잣나무 묘목 기르는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여버렸다. 지금으로 치면 생산성을 두 배로 끌어올린 셈인데, 문제는 이걸로 승진하고 훈장 받는 데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그의 관심은 딴 데 가 있었다.

조선어를 유창하게 익히고, 청량리 일대에서 조선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형과 함께 조선 도자기와 소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24년에는 야나기 무네요시(Yanagi Muneyoshi, 1889~1961)라는 일본인 미술평론가와 손잡고 경복궁 안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웠다. 총독부가 경복궁을 조선총독부 청사로 깔아뭉개던 바로 그 시절에, 그 옆에서 조선민예품을 지키겠다고 박물관을 차린 것이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아낀 죄

1929년에는 『조선의 소반』이라는 책을 냈다. 조선 사람이 밥상으로 매일 쓰던 물건을 학문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시도였다. 이 책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지친 조선이여, 남을 흉내 내기보다 스스로 가진 소중한 것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자신감을 되찾을 날이 올 것이다."

식민지 지배자 쪽 사람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어지간히 뼈아프다.

그러다 1931년 식목일 행사를 준비하던 중 과로가 겹쳐 급성폐렴으로 급사했다. 나이 마흔. 유언대로 처음엔 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묻혔다가, 훗날 망우리 공원묘지로 옮겨졌다. 방정환, 한용운, 이중섭 같은 인물들이 잠든 그 자리에 유일한 일본식 무덤 하나가 섞여 있는데, 그게 바로 다쿠미다.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지금도 해마다 4월 2일이면 한일 합동추모식이 망우리에서 열린다.

국적이 애국을 증명하지 않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다쿠미를 두고 "좋은 일본인도 있었다"는 식으로 훈훈하게 마무리하면 요점을 완전히 놓치는 거다. 진짜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다. 조선 땅을 실제로 아끼고 지킨 사람이, 정작 그 땅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니라 식민 지배국 출신 말단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기 조선인 중에는 자기 나라를 팔아넘기고 훈장 받은 자들이 수두룩했다. 해방 후에도 반민특위는 흐지부지 무산됐고, 나라 판 사람들은 떵떵거리며 살았다. 애국이란 말은 늘 가장 크게 외치는 자가 가장 먼저 배신한다는 법칙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통했다.

지금 한국을 봐도 이 구도는 낯설지 않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애국을 팔아 계엄까지 선포했던 자들과, 정작 묵묵히 이 나라의 숲과 문화와 사람을 지켜온 이름 없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2024년 12월 3일 밤, 국회에 총 든 군인을 보내놓고 그걸 애국이라 부른 자들의 논리와, 국적은 다르지만 조선 소반 하나하나를 사진 찍고 기록해 지켜낸 다쿠미의 태도를 나란히 놓고 보면 답은 뻔하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건 국기를 흔드는 게 아니라 그 땅의 사람과 물건과 역사를 실제로 아끼고 돌보는 일이다. 다쿠미는 국적으로 보면 지배자였고 행동으로 보면 지킴이였다. 반대로 지금 이 나라에는 국적은 확실한데 행동은 지배자, 아니 약탈자에 가까운 자들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백 년 전 죽은 일본인 하나가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들 중 죽어서 이 땅의 흙이 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아사카와 다쿠미 ⓒ필자 제공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